들어나봤나, 별 4개짜리 학교 급식

[희망버스 - 제주①] 급식 파문, '제주'에 물어보라

등록 2006.07.11 08:59수정 2006.07.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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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는 밥을 다른 데다 맡기는 곳도 있네?"

얼마 전 수도권 학생 1700여 명이 식중독에 걸리는 사상 최대의 학교 급식 파동이 일어났을 때 제주 지역 학부모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에서는 이미 직영 급식은 물론이고 친환경급식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초등학교는 1994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996년부터 완전 학교급식을 했으며 도내의 모든 학교가 직영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다 2005년에는 도내 학교의 10%, 올해 2006년에는 30%가 친환경농산물로 만들어진 급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제주가 학교급식 모범 도시가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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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도우미들이 친환경우리농산물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 이재홍

전국 최초 학교급식시설 완비, 전국 최초 학교급식 직영, 전국 최초 친환경급식 조례 제정, 전국 최초 친환경급식 실시

제주도의 학교 급식에는 '전국 최초'라는 별이 4개나 달렸다. 급식 파동이 일어났을 때 언론의 눈길이 제주로 쏠린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제주는 어떻게 해서 학교 급식 모범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직영 급식을 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급식은 2004년 말을 기준으로 48.9%가 외부에 위탁하고 있는데 이는 둘 중 한 곳만 직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영 급식을 하는 제주의 학교들은 돈이 많은 걸까? 단적으로 2006년 서울시 예산은 15조 1600억 원이고 제주도는 1조 1100억 원으로 서울의 1/1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와 제주도의 급식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돈이 절대 변수는 아니란 말이다.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시설을 완비하고 직영 급식을 시작했다. 이는 해당 교육청뿐만 아니라 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관광복권을 발행한 제주도는 복권 발행 수익금의 상당액을 학교 급식소 시설에 투자했다. 또 제주도청 예산 69억 원 이상을 교육청에 전출시켜, 학교 급식소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바로 제주의 학교 급식의 첫 번째 변화였다.

애들 급식상태 보니 맘 바뀌더라

그리고 2003년 제주시 아라중학교에서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두 번째 시도를 시작했다. 직영 급식에 이어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친환경유기농급식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

"그때만 해도 급식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점심 한 끼를 먹이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지 않아서 좋다' 정도일 뿐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했죠."

당시 친환경유기농급식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진희종 운영위원의 말이다. 그가 친환경급식을 고민하게 된 것은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었다.

"주변에 농사짓는 선후배들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정부 말을 따라 무슨 작물, 무슨 농법을 하면서 빚을 지게 됐고, 이어 친환경농업에까지 손을 댔는데 판로가 없어 빚더미에 앉아 버린 거죠. 학교 급식에서 엄청난 물량의 농산물을 소비하는데 학교와 농가들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아이들이 먹는 학교급식을 직접 봤을 때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진희종씨는 술회했다. 예산이 부족하다가 보니 값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었고 수입산 식품을 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것. 그때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먹이고 농민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학교급식이라는 생각이 진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최고의 식품을 부자가 독점하는 건 우리나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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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중학교 초록농장에서 학생들이 친환경농산물을 수확하고 있다. ⓒ 제주의 소리

이후 진씨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어렵게 설득해 친환경유기농급식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전교조와 함께 '학교와 1차 산업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학교운영위원회 연수회를 갖기도 했다.

"우선 친환경 급식을 위한 '초록학교'를 출범해 학부모와 교사·학생들에게 친환경급식의 필요성을 강조했죠. 예산이 없어서 친환경 식재료를 구입할 수 없었는데 학교 주변의 땅 700평을 빌어 학부모와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초록빛 농장'도 운영했고요. 그리고 마침내 초록빛 농장에서 생산된 친환경 야채로 2003년 11월 3일 아라중학교가 전국 최초로 친환경급식을 시작했죠."

이러한 시도에 발맞춰 전교조와 종교계, 시민단체가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 확대대표자회의를 열어 2003년 6월 55개 제주 지역의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한 '친환경우리농산물 학교급식연대(이하 친환경급식연대) 준비위'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정말 생뚱맞게만 들렸던 친환경 급식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다시 진희종씨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우수한 먹을거리를 받을 권리가 있고, 어른은 그것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미국은 가장 우수한 식품을 먼저 군인에게 먹인다고 하더군요. 미군에게 군납하는 식품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고의 식품을 아이들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가장 우수한 식재료는 부자가 먹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정부미를 먹이고 어른들은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우리 사회가 야만적인 거죠."

1만여 도민의 이름으로 지자체에 예산을 요구하다

의지는 충천했지만 친환경급식을 하려면 돈이 들었다. 친환경급식연대는 한두 해 자치단체장에게 구걸해 예산을 받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제도적으로 정착화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 조례 제정 운동에 들어갔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친환경급식을 한단 말입니까? 배부른 소립니다."
"친환경급식 좋습니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마다 수십억 원씩을 내놓습니까.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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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친환경급식조례 제정에 나선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 제주의 소리

자치단체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도민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먼저 여론조사로 분위기를 잡았다. "만일 학부모의 추가 부담 없이 친환경급식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당연한 결과로 90% 이상의 학부모들이 '찬성'했다.

여기에 힘을 받은 친환경급식연대는 2003년 11월 21일 친환경급식조례제정을 위한 도민발의를 선포하고, 도 전역에서 조례제정 청구 서명에 돌입했다. 각급 학교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에서 받기 시작한 조례제정 청구는 2개월 만에 법적 요건인 7800명을 훌쩍 뛰어넘어 1만 1천여 명의 도민이 서명, 2004년 1월 제주도에 친환경급식조례를 제정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5월 제주도의회에서 의결해, 전국 최초의 친환경급식조례가 만들어졌다.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례 문구가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위반이라며 행정자치부가 수정을 지시한 것. 제주도가 도의회에 '우리 농산물' 문구를 뺄 것을 요구했지만 도의회는 이를 거부했고, 조례는 원안대로 공포됐다. 대법원에 조례제정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겠다던 행정자치부도 방침을 철회했고 2005년부터 제주도에는 친환경급식조례가 시행됐다.

계란으로 바위를 뚫어 만든 친환경급식 조례

도민이 만든 조례의 힘은 대단했다. 조례에 따라 학교급식지원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친환경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지원계획'을 수립했다. 제주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2005년에는 10%, 2006년에는 30%로 점차 넓혀간 후 2007년부터 모든 학교의 전 학생들에게 우리 농산물로 만든 친환경급식을 제공한다는 청사진을 확정했다. 그리고 2005년 10억 원, 2006년 2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2006년 현재 제주 지역에서는 초등학생 1500원, 중학생 1800원, 고등학생은 2000원을 하루 급식비로 내고 있다. 친환경급식비로는 초등학생 340원, 중학생 390원, 고등학생에게는 430원이 지원되고 있다. 2005년에 학생 1인당 500원이 지원되던 것이 2006년에는 인원이 확대되면서 다소 낮아졌다.

곡류와 서류, 채소류, 과일류, 육류와 란류, 수산물을 도내산 또는 국내산으로 사용할 경우에 친환경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1인당 340~430원어치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기존 음식재료 비에 추가분을 보태 대부분의 음식재료를 친환경 우리 농산물로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급식의 모태가 된 아라중학교에서는 70%가량을 친환경 우리 농산물로 쓰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 초·중·고등학교 전체 급식 예산은 410억 원. 이중 시설운영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식재료비는 250억 원가량인데 이중 절반가량이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는 데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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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중학교의 친환경급식 식단. 식단표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마크가 부착돼 있다. ⓒ 제주의 소리

친환경급식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던 제주의 농업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판로가 마땅치 않아 섣불리 친환경농업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농민들에게 친환경급식은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제주도 김충의 친환경농업담당은 "친환경급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농업을 부강하게 할 수도 있다. 아직 시범 단계여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민들 소득이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친환경농산물 공급체계가 확실하지 않아 친환경농민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급 유통망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아 급한 대로 농협을 유통망으로 선정한 결과, 농협의 친환경농업작목반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농가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 최근 국회를 통과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따라 만들어지게 될 급식센터가 모든 농가에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학생들의 점심 한 끼, 제주도를 바꾸다

2003년 제주시 아라중학교에서 조용히 시작된 친환경급식은 제주도 전략 산업을 바꾸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02년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발전 전략으로 채택하자 제주의 농업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국제자유도시는 모든 시장을 활짝 열겠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농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정서가 형성됐던 것. 또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 준비 과정에서 수립한 제주 핵심산업 발전전략에서도 관광과 교육, 의료산업만이 대상이 되었을 뿐 농업은 제외돼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급식으로 친환경농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농축수산인들과 도민들은 '친환경농업'을 제주의 핵심 산업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2005년 정부와 제주도도 이를 수용, 친환경농업육성을 제주의 핵심산업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단순한 점심밥 한 끼가 조용히, 그러나 도도하게 제주 사회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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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재홍 기자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재홍 기자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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