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팔아 '골프섬' 만들 건가?

[희망버스 - 제주 ②] 자본에 무너지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

등록 2006.07.11 09:02수정 2006.07.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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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16일간 전국일주] 공식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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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 평 대규모 개발이 시작될 묘산봉관광지구 전경 ⓒ 제주의 소리

제주의 허파이자 식물의 보고인 곶자왈이 수년 전부터 자본을 앞세운 개발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주범은 바로 골프장.

곶자왈은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생태 환경이다. 한라산과 해안의 중간을 둘러싼 중산간 지대에 있는 곶자왈은 토양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암괴들이 두껍게 쌓여 있어 비가 내려도 곧바로 지하로 스며든다. 때문에 물이 귀한 제주에서 지하수를 만들어 내는 '스펀지' 역할을 하는 지하수 함양 지대다.

제주의 허파, '곶자왈' 뚫고 들어선 골프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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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이 자본의 개발에 무너져 가고 있다. ⓒ 곶자왈 사람들 제공

현재 제주에는 38개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거나 공사 중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6개에 불과했으나 현재 16개 골프장이 영업 중이며, 제주도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는 과정에 있는 골프장이 16곳, 그리고 절차를 이행 중이거나 사업예정자로 지정된 골프장이 6곳이 있다.

육지의 골프장은 겨울철 운영이 어렵지만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해 겨울철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기에 '골프의 메카'를 꿈꾸는 제주도 당국의 개발 드라이브 정책까지 더해져 제주에는 골프장이 난립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골프장 대부분이 곶자왈이 있는 중산간 지대에 들어서 있다는 것. 2004년 문을 연 라온골프클럽, 올해 오픈한 블랙스톤, 그리고 지난 3월 제주 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던 한라산리조트와 묘산봉관광지구 모두 한결같이 곶자왈에 있다. 오션파크와 심지어는 건교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추진 중인 신화역사공원도 곶자왈에 들어서 있다.

언제는 제주의 자랑이라더니, 웬 막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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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곶자왈은 생명수인 지하수를 빨아 들이는 함양지대다. ⓒ 곶자왈사람들 제공

제주도는 환경정책 보고서에서 '곶자왈' 보전의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로 곶자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제주도는 곶자왈 보호에 손을 놓았을까? 사단법인 '곶자왈 사람들' 김효철 사무처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라산은 개발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고 해안변은 땅값이 비싸고 민원 때문에 개발업자들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곶자왈은 전혀 다릅니다. 제주도민들은 곶자왈을 개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땅값이 쌉니다. 그리고 대부분 국유지나 도유지 또는 마을목장 소유의 대단위로 면적으로 돼 있기 때문에 개발업자들이 손쉽게 땅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생태 환경이 너무나 좋아 골프장을 일단 만들어 놓으면 그 가치는 엄청나게 뛰게 됩니다. 이를 모를 리가 없죠. 너도나도 곶자왈에 달려드는 형국입니다."

열대와 한대의 공존지대, 곶자왈

곶자왈은 보온·보습 효과를 일으켜 북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과거 곶자왈은 자연림과 가시덩굴 때문에 경작할 수 없는 불모지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곶자왈은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자랑하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소비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제주에서 최초로 발견된 제주산 양치식물인 제주고사리삼, 한국미기록종인 창일엽과 제주암고사리(디플라지움 니포니쿰),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식물인 개가시나무, 미기록 목본식물인 천량금, 환경부 희귀식물인 붓순나무, 환경부 보호식물 지정이 필요한 개톱날고사리 등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식물의 보고'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자유도시를 발전 전략으로 내걸고 국내·외 자본 유치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제주도 입장에서는 골프장 개발업자들이야말로 구세주라는 것. 돈을 벌겠다는 개발업자와 자본을 유치하려는 제주도 당국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는 곳이 곶자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환경보호를 우선으로 생각하던 주민들까지도 서서히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환경 보호도 좋지만 환경이 밥을 먹여 주는 게 아니지 않으냐"는 상황론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주민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복잡한 상황만큼 제주 곶자왈을 지켜내려는 환경단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생태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개발은 막아야 한다'는 예전의 논리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는 것.

역발상, 곶자왈 보전하면서도 돈 벌 수 있다

이 와중에 곶자왈을 살리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월 '곶자왈사람들'은 제주 한경면 신창리에 있는 폐교에 '곶자왈 생태환경연구소'를 열었다. 곶자왈 생태환경연구소를 통해 제주 곶자왈의 특성과 생태학적인 문제를 연구하고 도민들에게 곶자왈의 중요성을 알릴 계획이다. 또 '어린이 곶자왈 학교'를 운영하고 곶자왈 전시관도 오픈했다.

그들은 이 계획을 '죽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는 곶자왈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곶자왈을 지켜냄으로써 생태계 보전은 물론이고 곶자왈을 통해 돈을 벌 수도 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 송시태 곶자왈 사람들 상임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우선 현장으로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삶이 떨어져 있으니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또 주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곶자왈 보호는 환경단체 혼자 힘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주민들과 상생의 길의 찾아나가자는 것입니다."

제주가 제주다워야 제주도지 '곶자왈 한 평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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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의 새로운 꿈을 키워나갈 생태문화연구소 어린이 곶자왈에 참가한 학생들 ⓒ 곶자왈사람들 제공

곶자왈 사람들은 지금 생태환경연구소에서 야생화를 재배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도움으로 비닐하우스를 지어 곶자왈에서 자라는 특이한 야생화의 씨를 파종해 현재 3만 본을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야생화 차 사업도 벌이고 있으며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과 손을 잡고 저소득층에서 야생화 재배 방법을 교육 시켜 자립 여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땅 2200여 평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딸기도 재배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땅을 넓혀 곶자왈에 자생하는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곶자왈 고유의 자원을 이용해 지역 소득사업으로 만들겠다는 것. 소비처는 당연히 제주의 도시민들. 이제는 삭막해진 제주의 도심을 곶자왈의 푸름으로 뒤덮을 계획이다.

얼마 후면 제주 도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곶자왈 땅 한 평 사기' 운동도 선을 보인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하나로, 처음 목표액은 1억 원. 그 돈으로 도유지나 사유지인 곶자왈을 매입해 곶자왈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생태 학습장을 넘어 새로운 관광대안산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곶자왈이 물 귀한 제주에서 지하수를 만드는 스펀지였던 것처럼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골프장과 개발 붐에 죽어가고 있는 곶자왈을 복원하고 있다. 곶자왈, 그곳은 제주의 새로운 허파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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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적인 식물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교래 곶자왈. ⓒ 곶자왈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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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만 보전하고 곶자왈은 개발하자?"
[인터뷰] '곶자왈 사람들' 김효철 사무처장

▲ 김효철 사무처장
ⓒ이재홍
김효철 곶자왈 사람들 사무처장. 2년 전만 해도 그는 <제민일보> 기자였다.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곶자왈 보전 필요성이 제기되던 그 때 그는 1년 6개월에 걸친 '곶자왈 탐사'를 기획 연재, 제주 사회에 곶자왈 보전 필요성을 부각 시켰다. 그리고 연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문사를 떠났던 그는 이제 곶자왈 지킴이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한라산이 제주를 품어주는 어머니라면 곶자왈은 제주인들의 삶을 지탱해 온 '버팀목'이었다고 말한다.

"해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한라산은 너무 멀었습니다. 그러나 중산간에 있는 곶자왈은 조금만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곶자왈에서 땔감이나 목재를 조달할 정도로 중요한 산림자원이었죠. 조선 시대 문헌을 보면 목사들이 곶자왈에서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김녕해녀 노래에도 '교래곶자왈'이 나옵니다. 제주 4·3 당시에는 군경의 학살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은신처 역할도 했습니다. 1970~80년대 들어 쓸모없는 불모지로 전락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곶자왈은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생태적 가치는 물론 생활문화환경적 가치가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 곶자왈은 어느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는 제주의 공동 소유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골프장을 앞세운 개발 열풍에 휩싸이면서 공적 개념에서 사적 개념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

"제주민들에게 곶자왈은 삶의 버팀목"

"개발론자들이나 행정가들은 보전할 곳은 보전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조금씩 개발하자고 말합니다. 그들은 한라산을 개발하겠다고는 감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곶자왈은 그렇지 않죠. 곶자왈과 한라산이 다르지 않은데도 말이죠. 조금만, 조금만 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자본의 행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행정은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지금은 행정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할 때 생겨나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충돌에는 여지없이 행정이 개입돼 있습니다. 주민을 앞세워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토지비축제에 대해서도 그는 비판적이다. 토지비축제는 개발 가능성이 있는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 국공유지 형태로 비축했다 토지 수요에 따라 팔거나 대여하는 제도이다.

"토지비축제가 뭡니까? 결국은 개발사업자들을 위해 자치단체가 세금으로 개발 예정지를 먼저 사 두고 나중에 그들에게 팔겠다는 것 아닙니까. 왜 보전이 필요한 곳은 사지 않습니까? 지금의 개발 드라이브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곶자왈 파괴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습니다."

김 처장은 대규모 관광지 개발이 제주의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개발은 제주를 관광지로서 차별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관광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 널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곶자왈은 제주에만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곳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곶자왈의 복원력으로 우리의 도심을 복원해야 합니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역발상을 해야 합니다. 파괴하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복원하면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조금은 느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가능합니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재홍 기자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재홍 기자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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