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겉표지보리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지은이 안건모는 20년 동안 시내버스 운전을 한 전직 시내버스 기사다. 1995년부터 월간 <작은책>에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고정 연재해오다가 얼마 전 <작은책>의 편집장으로 눌러 앉았다.
<작은책>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잡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손에서 잘 놓지 않는 나도 얼마 전에야 우연히 가판대에서 처음 발견했으니까.
어디를 갈 때 항상 책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데 그날따라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아 심란했었다. 지하철역의 가판대를 기웃거리며 무엇을 살까. 평소처럼 <좋은 사람>이나 <좋은 엄마>를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것이 <작은책>이었다.
<작은책>은 말 그대로 다른 잡지보다도 훨씬 작았고, 책의 내용도 사뭇 다른 잡지와 비교되었다. 귀농현장에서, 산업현장의 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이 쓴 진솔한 삶의 이야기는 비록 거친 글체였지만 생동감이 있었다.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있었구나.' 내심 신기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은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 '삶이란 싸움이다',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로 크게 4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로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서민계층이다.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사도 역시 서민이다. 같은 서민끼리 시내버스를 운행하고, 타고 다니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대부분 기사를 욕한다. 세간에 '기사들은 성질이 사납다'는 말이 돌기조차 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왜 기사들이 성질이 더러워지는지, 항상 요금은 올라도 서비스는 뒷전인지 궁금했던 것이 조금 풀리는 듯하다.
시내버스는 노선을 더욱 많이 뛰어야 수입이 늘기 때문에 배차간격이 짧아지고, 위반을 밥 먹듯이 해야 배차를 겨우 맞출 수 있는 상황인데다, 요금이 올라도 시내버스 기사의 처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명목상 임금 몇 %올리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마이너스 조항을 넣어 결국은 그게 그것이 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한다.
더욱이 만근을 채우려 배차를 받아 일을 해야 하는 기사로서는 회사 관리직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여야 상태가 좋은 차를 배정받을 수 있다. 운행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기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도록 되어 있고, 기사에게도 연월차가 있음에도 만근을 깨지 않기 위해 속이 터져도 꾹 참고 다니는 현실이라 한다. '시내버스가 적자'라는 말을 믿는 기사는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은이 안건모는 월차 적치를 해서 휴가를 사용하고,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과감히 따지는 당찬 사람이었던 거다. 지은이의 눈이 뜨인 계기는 20여 년 전 집 근처 주민독서실에서 보게 된 여러 가지 책 때문이라고 한다. <쿠바혁명와 카스트로>라는 만화책, <태백산맥>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찢겨진 산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노동의 새벽>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책을 차근차근 읽으면서였다고 한다.
3월10일 근로자의 날과 5월1일 노동자의 날이 따로 있는 이유에 대해 1886년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5월 투쟁을 일으켰고, 1946년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조선노동조힙전국평의회'에 대항해 1946년 이승만이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친선을 기한다"며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거짓으로 만들었다는 대한노총 역사를 알게 되고서 '아하!' 무릎을 쳤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기본급을 계산해보니 앞뒤 계산이 맞지 않아 보문동에 있다는 서울운수노동자협의회를 수소문하여 찾아가서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찾아서 공부를 하고, '버스일터'를 만들어 같은 처지의 기사들을 도와주려 애써왔다. <거꾸로 가는 버스>는 그 생생한 체험의 소중한 기록이다.
근로자의 날과 관련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1945년부터 1962년까지는 미국에서 전래된 5월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였고 1963년부터 1993년까지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창설기념일인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바꾸어 기념하였다가, 1994년부터 다시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노동자임에도 본인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 한다.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은 들어 보았지만 왜 비슷한 날이 두 개가 있는 건지, 기념일은 왜 옮겨졌던 것인지조차 모르고 지냈었다. 솔직히 아무 관심이 없었던 거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에서야 노동운동에 대해서, 노동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것이 지은이 안건모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제목 :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지은이 : 안건모
펴낸곳 : 보리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보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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