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서 50대까지, 손잡고 '청춘' 열광

[김작가 칼럼] '아니 벌써' 산울림 30주년... 세대차 없는 객석

등록 2006.07.13 09:21수정 2006.07.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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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7월 5일과 6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김창완을, 산울림을 30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모였다.

7월 5일과 6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김창완을, 산울림을 30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모였다. ⓒ 개구장이


벌써 작년 일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김창완을 만날 수 있었다. 후배가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같이 동석하겠냐고 제의해서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제발 같이 가게 해달라고 졸라도 부족할 판이었다. 산울림, 또는 김창완의 열혈 팬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냥, 살면서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산울림의 음악을 평생,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자랐고 선한 소시민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김창완의 웃음을 드라마와 CF에서 보면서 살았다. 어쩌다가 가끔 인터뷰 기사라도 접할라치면 말이 곧 시가 되고 철학이 되는 그의 화술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3시간 정도 진행된 그 인터뷰는 내게 구름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인사를 건네자마자 "요즘은 이게 좋더라고요"라는 말과 함께 소주와 맥주를 섞은 잔을 권했다. 끝까지 그렇게 폭탄주를 마셔대며 대화를 나눴으니 자세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취했어도 그의 선한 눈빛은, 어눌하지만 귀에 감기고 뇌가 녹아드는 말은 흔들리지 않았다. 50줄의 나이에도 인생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의 철학적 화법에 취객의 주정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요다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다이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을 마련해줬던 20대 중반의 후배는 말했다. "저 분이 남자로 느껴져." 그녀도 나만큼 감동했다는 의미였으리라. 그동안 그를 만난 누구라도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음악으로 만났든, 눈빛으로 만났든, 대화를 통해 만났든 간에….

지난 7월 5일과 6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김창완을, 산울림을 30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모였다. 산울림 결성 30주년 기념공연이었다. 둘째날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로비에서 객석까지, 여느 콘서트 현장과는 달랐다. 스탠딩 콘서트에 익숙할 20대 초반의 청춘들부터 디너쇼에 다닐 법한 50대의 중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려 있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꼬마들까지도 그랬다. 어느 뮤지션이 이런 풍경을 자아낼 수 있을까.

20대 초반의 청춘들부터 50대 중년까지 '어울림'

a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산울림이지만 그들이 만든 노래들은 어느 하나 예외없이 듣는 이의 감정에 비수를 찔러왔다.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산울림이지만 그들이 만든 노래들은 어느 하나 예외없이 듣는 이의 감정에 비수를 찔러왔다. ⓒ 개구장이


공연이 시작됐다. 김창완, 창훈, 창익 삼형제가 무대에 올랐다. 펑크 스타일로 차려입은 그들이 처음으로 연주한 노래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울림의 음반이 서양의 콜렉터들에게 수십만원의 가격에 거래되게 했던 문제의 곡이다. 이어지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아니 벌써'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청춘' '가지마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순서만 열거해도 숨이 가빠오는 30년간의 노래들이 2시간 반 가까이 연주됐다.


어떤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객석 앞의 팬클럽 회원들이 벌떡 일어서서 열광했다. 어떤 노래들은 중년 여성들로 하여금 살짝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어떤 노래들은 객석의 꼬마들이 따라 부르는 소리가 언뜻 언뜻 들렸다. '어떤 노래들'의 제목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세종문화회관을 1층부터 3층까지 가득 채운 사람들 중 어쩌다가 공짜 표가 생겨서 온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다양한 감성을 만족시키는 뮤지션이 바로 산울림이었다. 청춘을 달아오르게 하는 록부터 오후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스탠다드 팝, 그리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흐를 동요까지, 굳이 '장르'라는 말을 쓰기 민망할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산울림이지만 그들이 만든 노래들은 어느 하나 예외없이 듣는 이의 감정에 비수를 찔러왔다.


그저 팔아먹기 위한 음악이 난무하는 지금, 그 노래들은 더욱 가치를 높인다. 동네 음악사로 달려가 산울림의 새 앨범을 샀을 세대와 뒤늦게 그들의 음악을 알고 빠져들었을 세대가 모두 알고 있듯이. 산울림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천공에 떠 있는 라퓨타와 같다. 트렌드와 시대로 재단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도 여느 유행가와 달랐고 그 유행가들이 세상으로부터 잊혀져도 여전히 들려지고 불려졌다.

그런 산울림의 음악을 김창완은 무대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라 표현했다. 자신의 노래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다는 건, 그것도 팬들 앞에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산울림의 음악을 얘기하는 김창완의 모습에는 멋쩍음도, 그렇다고 오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리라.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충분히 검증된 노래들 아닌가.

"산울림의 음악은 글로벌 스탠다드"

a 지난 6월 2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울림 30주년 기념 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산울림의 멤버들이 기자회견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창훈, 김창완, 김창익.

지난 6월 2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울림 30주년 기념 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산울림의 멤버들이 기자회견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창훈, 김창완, 김창익. ⓒ 연합뉴스


'안녕'을 마지막으로 산울림의 30년을 돌아보는 시간은 끝났다. 무대를 뒤로 하고 나오면서 문득 놀랐다. 그 동안 수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지만 이렇게 아는 노래밖에 없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산울림의 팬이기 때문에 당연한 건가? 그렇지 않다. 고백하건데 나는 감히 산울림의 팬을 자처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앨범을 모두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아본 적도 없다. 말하자면 음악 애호가로서 나의 삶에서 산울림은 좀 예외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그들이 내 삶에 머물렀던 공간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서른두살 남자의 그곳이었을 뿐이다.

주택복권 추첨 프로그램에 나와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르던 모습. 화실 선생님이 틀어놓던 '가요산책'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에 '회상'이 흐르던 기억. 어느 비 오던 날 동네 음악사에 스피커를 적시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를 들으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던 조바심. 90년대 중반 갑자기 몰아닥친 대중문화 담론과 함께 산울림이 재평가되더니 트리뷰트 음반까지 출시되던 놀라움. 그런 평범한 30년의 기억들에 산울림의 노래는 늘 OST처럼 머물렀다.

지금도 세상에는 별처럼 많은 노래들이 쏟아진다. 그 중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 곁에 맴돌 노래들은 얼마나 될까. 한두 곡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누가 30년 동안 우리 곁에 머물수 있을까. 한두 곡의 히트곡이 아니라 30년 내내 보석 같은 음악을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산울림은 그만큼 위대한 밴드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니 왠지 멋쩍어진다. 위대함 같은 거창한 단어는 왠지 그들과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다.

줄곧 마시며 살아온 산소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산소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산울림 없는 우리 대중음악계는 지금보다 꽤 많이 허전했을 것이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아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끼게 했던 30년이다. 그 세월을 그저 숫자로 끝나지 않게 한 건 잊혀지지 않았고, 잊혀지지 않을 노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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