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표지바람의 아이들
사랑을 하는 목적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자손을 얻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식은 안정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생물체가 영원히 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플라톤의 <향연>에서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에게
이 말에처럼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사랑과 성' 역시 다른 동물들처럼 안정된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도덕이나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성 정체성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글이다.
머언 옛날, 단순한 분열만으로도 개체를 늘리고 번식을 하던 간단한 방식을 버리고 몇몇 생물들이 유전자를 반으로 나누어 서로 절반씩을 섞어야 번식할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솟구치는 번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음 없이 제 짝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고생의 나날이 시작되었지만, 그로 인해 개체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번식을 거듭해서 결국 지구를 가득 메웠습니다.
분열을 버리고 성을 선택한 뒤, 이전 개체에게는 없었던 '죽음'이라는 업보를 짊어지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생명체는 훨씬 더 다양하고 훨씬 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115쪽
이 글에 따르면 '동성애'는 생물학적 계보를 극복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동성애야말로 번식을 위한 본능적 행위가 아니라,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선 사랑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글로 옮기기엔 아직 두려움이 앞선다. 이것이 나나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인식하는 경계선이다.
마치 동성애 찬양론자처럼 글을 풀어 가는 까닭은 우리 사회의 경직된 '성 정체성'에 대하여 환기시키자는 의도가 하나이고, 다른 이유는 책 <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현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 문제로 방황한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이 앞에 자신을 알아보는 눈빛이 나타난다. 현이는 그 눈빛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요에게 끌린다.
상요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로 인해 상요가 게이라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그날 이후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상요를 전염병 환자를 대하듯 멀리하고 혐오스럽게 바라본다.
어느 날 상요는 부모님에게도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상요의 아버지는 식칼을 상요 앞에 던진다. "차라리 죽어라."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상식적인 사고를 갖은 부모라면 자식에게 죽기를 권할 수 없다.
하지만 상요 아버지에게만 탓할 수는 없다. 상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있는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상요가 게이라는 사실은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요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가해를 한 일이 없는데도 마치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다만,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성적 성향을 가졌다는 게 상요의 죄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활양식을 문명화했다고 자랑한다.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문명이 인간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려면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에서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할 정당한 근거 없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사회구성원으로써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인종차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 소설로 동성애에 관한 책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 대한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특히 청소년기는 '성'에 관해 가장 민감할 때이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시기이다. 이 책 <나>는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나 그런 친구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동성애에 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삐뚤어진 시각을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가볍게 주고받는 유머용 멘트로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내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을 하나의 예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 스스로도 그런 멘트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아마 그들처럼 종종 동성애를 폄하하는 농담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현(동성애자)의 귀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들으니, 가슴이 움찔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야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를 일반인들이 알 수 있고 반성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작가의 칭찬한다면 청소년 소설이 지녀할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극으로 끝난 실존 인물을 그려낸 '상요',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숨겨진 게이 '현', 우리사회가 지녀야할 게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여진'. 이 인물 중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는 여진에게 있었다. 여진을 통해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희망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은 이제 고전문학만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사회문제를 현상 들어내기, 문제제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작가 나름대로 가치관을 갖고 문제해결 방안을 그려 내야한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청소년들이 막연히 시니컬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성세대의 문학과 청소년의 문학은 그 추구하는 바가 달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나>에서 이 점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나> / 이경화 지음 / 바람의 아이들 펴냄 / 215 쪽 / 값 8000원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