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연하 제자에게 깍듯했던 스승 퇴계

[서평] 황광우의 <철학 콘서트>를 읽고

등록 2006.07.14 18:02수정 2006.07.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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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지식하우스

황광우의 <철학 콘서트>에 대한 인상을 간략히 말한다면? 한마디로 '감각적'이다. 그리고 쉽고 재미있는 철학서에 꼭 맞아떨어지는 책이다.

철학 해설서로 나오는 책들은 더러 있지만, 막상 그 중에 몇 권을 읽어보면 '역시 철학책이군!'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이러한 책들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철학 콘서트>는 열 명의 철학자들(소크라테스, 플라톤, 석가, 공자, 예수, 퇴계, 토머스 모어,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노자)의 면면을 철학자들의 주요 저서를 바탕으로 비교적 잘 간추려 놓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철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독특한 장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다. '유학'이니 '성리학'이니 하면, '권위', '위계', '엄격' 등의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통하여 퇴계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참된 사제관계의 일면을 보는 듯도 싶다.

조선 선비의 사부인 퇴계는 26년 연하인 고봉에게 깍듯이 존대한다. 나이 60, 이순을 바라보는 당대의 대학자가 이제 나이 이립을 갓 넘어선 젊은 후학에게 깍듯한 예를 다하여 존대하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충격적이다.(171쪽)

이러한 스승에게 고봉이 부탁하는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승의 글씨였다. "한가하실 때 중용의 큰 글자를 베껴 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평생 동안 두고 보고자 합니다."(172쪽)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퇴계는 혹여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맹자의 '교우(交友)'란 그 사람의 덕을 벗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학문'으로 사귀는 그런 경지가 아니었을까? '학문' 앞의 '겸손'을 생각해 보게 된다.


혹여 '지나친 겸손'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학문만을 고집하지 않았던 그의 삶의 태도는 그것이 실로 진심이었음을 보여준다. 퇴계는 죽기 직전 고봉에게 이런 편지를 전했단다.

"지금까지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와 '무극이면서 태극이다'에 대한 저의 견해는 모두 잘못되었습니다."(173쪽)


어떻게 자신이 평생 일군 학문적 업적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을까? 대학자가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가 말한 '태허(太虛)'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러한 그의 삶의 모습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사단칠정 논변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비유의 한계가 분명하게 있기는 하지만, 비유만큼 빠르게 이해시키는 방법도 드물 것이다.

퇴계의 "이가 움직이면 기가 이를 따르고(理發而氣隨之) 기가 움직이면 이가 기를 탄다(氣發而理昇之)"는 '가마 타는 선비'에 비유하고, 율곡의 "움직이는 것은 기요, 기가 움직이면 이는 기를 타는 것(氣發理乘一途說)"은 기를 '무등 태운 자'에, 이를 '무등 탄 자'에 비유한다.

모쪼록 이 책이 철학에 대한 지적 욕구를 자극하여 또 다른 철학서들에도 관심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전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뒤쪽에 나와 있는 참고문헌(284쪽)을 먼저 찾아보는 이가 있다면 두서를 아는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 황광우 / 펴낸날: 2006년 6월 28일 / 펴낸곳: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 홈페이지: www.wjthinkbig.com

덧붙이는 글 지은이: 황광우 / 펴낸날: 2006년 6월 28일 / 펴낸곳: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 홈페이지: www.wjthinkbig.com

철학 콘서트 1 -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황광우 지음, 김동연 그림,
생각정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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