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북미대결 장기화되면 한미관계 악화 가능성 있다

현상유지적 평화 우선시하는 남측... 북미관계 불안기와 안정기에 미치는 효과 달라

등록 2006.07.15 18:23수정 2006.07.1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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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북미관계가 아슬아슬한 국면으로 지속되면, 이는 장기적으로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남측이 북측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국면이 장기화되면 결과적으로 남측이 북측을 지원하는 형세가 조성될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집권 엘리트 그룹의 기본 정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엘리트 그룹의 최대 관심사는 '한반도 평화'다. 한국 정부가 외형상으로는 민족통일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정부의 진정한 관심사는 통일보다는 평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꼭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한반도에 전쟁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한국 집권 엘리트의 속마음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통일을 말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통일의 당위성이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대적 대세가 통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간파한 '정치적 센스' 때문이기도 하다.

통일에 대한 남측 정부의 미온적 자세는 북측의 불만과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북측은 남측 정부가 전쟁 방지와 평화 조성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민족통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통일보다는 평화

그러나 북측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은 이러한 남측의 태도가 불러올 국제정치적 효과를 더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볼 때 남측의 태도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남측이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지금 당장 태도를 변경하기 힘들다면, 이러한 남측의 태도에서 민족적 이익을 최대한 도출하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럼, 남측의 평화지향적 태도가 동북아 판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자.

통일보다는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남측 정부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현상유지적인 입장이다. 이는 현상변경적인 입장의 반대 개념이다. 그런데 남측 정부의 현상유지적 태도는 북미관계 안정기와 북미관계 불안기에 각각 전혀 다른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 안정기에는 남측 정부의 현상유지적 태도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 왜냐하면 이 기간에는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안정 추구'라는 점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통일을 원치 않는다. 한국은 통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한국이 미국의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반면, 이 기간에는 남측과 북측의 이해관계가 대립한다. 왜냐하면, 북미관계 안정기에도 끊임없이 통일 사업을 전개하는 북측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에 집착하는 남측 정부의 태도가 한없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측은 남측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북미관계 안정기에는 남측 정부의 현상유지적 혹은 평화지향적 태도가 민족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북미관계 안정기에는 평화지향적 태도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

반면, 북미관계 불안기에는 남측 정부의 현상유지적 태도가 미국의 국익과 어긋난다. 지금처럼 한쪽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제적 제재를 추진하는 상황이야말로 전형적인 북미관계 불안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북미관계 불안기에 미국은 한국이 대북 압박 연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바란다. 이 시기에 미국은 현상 변경적인 태도를 취한다. 북측을 더 압박함으로써 북측에 한층 더 불리한 상태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도 한국은 여전히 현상유지적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미국이 북측을 상대로 혹 전쟁이라도 벌이면 한반도 평화가 파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미·일의 주도 아래 한반도의 현상이 변경돼봤자 한국의 국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현상변경적인 미국과 현상유지적인 한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한국 집권 엘리트들은 한마디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어느 정도 미국의 말을 듣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한반도 현상유지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면, 한국 정부는 이에 제동을 걸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는 결정적인 대북 압박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한국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한국은 막판에는 중국이라는 심리적 버팀목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나라다.

물론 한미관계의 종속성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지못해 미국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만, 미국의 지나친 요구는 한국 집권 엘리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원인이 될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가 일본의 대북 제재 추진에 제동을 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와 관련 있다.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일본을 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북미관계 불안기에는 남측의 현상유지적 태도가 결국 북측을 돕는 형세가 된다. 북측 입장에서는 남측이 드러내놓고 자신들을 돕지 않더라도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겨 미국의 대북 압박이 약화되기만 해도 상당한 전략적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 미국에 대들수록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이는 여러 모로 북측에 이익이 된다.

북미관계 불안기에는 평화지향적 태도가 미국의 국익에 배치

이처럼 한국 집권 엘리트들의 현상유지적 혹은 평화지향적 태도는 북미관계 안정기에는 북측의 불만과 불신을 초래하고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북미관계 불안기에는 도리어 미국의 대북 압박 전선에 흠집을 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측 정부가 군사·정치적 요인 때문에 지금 당장 미국에 대해 "No!"라고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이런 입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상처를 입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통일에 그다지 도움 되지는 않는 남측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민족의 두 국가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미국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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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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