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석유농업의 미래가 있는가

[파르티잔의 농업 인터뷰①] 구례 현근종씨, "석유농업 결국 농민에게 빚으로 돌아올 뿐"

등록 2006.07.16 15:32수정 2006.07.2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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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600평당 1년 유류비가 1천만원 이라고 한다.
하우스 600평당 1년 유류비가 1천만원 이라고 한다.조태용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지난 13일 70달러를 넘어섰다.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역시 사상 최고치인 76달러를 넘나들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5차 중동전쟁이 일어난다면, 국제 유가는 80달러 이상으로 인상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석유시대는 모든 생활의 기본이 석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자동차, 전자제품, 전기, 의류에서 의약품까지 석유에 단 1%도 의존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그만큼 석유는 우리 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밥상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밥상 위에 있는 오이나 호박, 쌈 채소, 쌀, 고기 등 거의 모든 것이 석유가 아니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의 밥상도 석유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중 석유의존도가 가장 높은 것은 단연 ‘하우스 농사’다. 호박이나 오이를 겨울에 재배하기 위해서는 600평 기준 연 1천만원 이상의 기름값이 들어간다. 비닐 역시 석유 화합물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다시 농사를 지으라고 한다면 하우스 농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구례 토지면 현근종씨.
"다시 농사를 지으라고 한다면 하우스 농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구례 토지면 현근종씨.조태용
전남 구례에만도 약 180곳이 넘는 하우스 농가가 있다. 지난 13일 구례 토지면에서 비닐하우스에 호박 농사를 짓는 농부 현근종(57)씨를 찾았다.

그는 1200평 하우스 농사를 25년간 지은 하우스 전문 농부다. 하지만 지난 25년 농사를 통해 얻은 것은 2억3천만원의 빚이 전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빚을 지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석유'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유는 이렇다. 현씨는 25년 전 정부의 시설재배 장려 정책에 따라 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남는 것도 있어 아이들 교육을 시키면서 최대한 아끼고 살았다. 그렇게 밥은 먹고 살았는데, 10년 전부터 석유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면서 빚을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기기 시작한 빚은 IMF 직전에 3-4천만원에 다다른다. 그 빚은 IMF 초기 치솟은 이자 때문에 천정부지로 늘어났다. 또 기름값 역시 더욱 오른다. 더불어 이자도 오르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여기다가 비싼 기름값 때문에 주변 하우스 농가들이 하나 둘 망하게 되는데, 이때 보증을 서 그 채무까지 빚으로 떠안게 된다.


그는 결국 생전에 보지도 못한 돈 2억3천만원의 채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기름값이 치솟는데 오이나 호박 값은 예전보다 떨어지는 거여. 그러니 빚 안 지고 살 수 있어. 농민들이 부자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어. 예전처럼 그냥 하우스 농사 안 짓고, 돈 안 쓰고 소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 놈의 빚만 없으면 말이야!”

그나마 구례민생인권상담센터를 통해 알게 된 개인회생제도(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을 구제하는 일종의 개인 법정관리)를 이용해 남은 빚은 월 50만원씩 5년 동안 상환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빚 갚고 나며 63살이야. 결국 30년 농사를 져서, 15년은 빚만 갚다가 끝나는 것이야"라고 현씨가 말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시설재배 농가의 경우 치솟는 기름값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동화된 시설투자를 계속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비용은 늘어나는 데 비하여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한계가 있고, 농산물 가격 역시 춤을 추다가 한번 꺾여 버리고 나면 그 투자비용은 그대로 빚이 되어 농민의 숨통을 죄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주도한 석유 화학을 중심으로 한 상업농, 자본 투입형 농업 방식이 농민들을 빚쟁이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하우스 농사 지면서 빚 없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해!

그는 “아마 국내에서 하우스 같은 ‘시설재배’를 하면서 빚이 없는 농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찾아갔던 인근 장미농장 역시 1억이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구례에서만 약 2000여 가구에서 신용불량자가 생겼고, 이들의 평균 부채는 약 2억원에 이른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약 1000여 가구는 정든 땅을 떠났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시설재배에 투자한 농가다.

“내가 말이야, 다시 나보고 농사를 지으라고 한다면 하우스 농사는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지금은 하우스에 투자한 것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만 말이야. 언젠가는 이놈의 비닐하우스에서 떠날 날이 있것지….”

하우스에서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둑 너머가 바로 섬진강이다.
하우스에서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둑 너머가 바로 섬진강이다.조태용
그래서 그는 요즘 다른 농사를 꿈꾸고 있다. 그는 요즘 밭에 도라지나 더덕 같은 것을 키운다고 한다. 하우스에서는 자동화 장비 몇 개를 보여주던 그는 인근 섬진강 강변의 도라지 밭과 더덕 밭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함께 가보자고 한다.

장마철에 불어난 물 때문에 거친 숨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섬진강 인근 밭에는 3년 된 도라지가 보라색, 하얀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꽃이 참 예쁘다면 앞으로 2년쯤 더 키워서 약재로 팔 생각이라고 한다. 더덕 밭에서는 더덕 새순을 꺾어주며 먹어보라면 건데 준다.

"이게 말이여, 우리 어렸을 때 지리산에서 많이 꺾어 먹었거든. 한 번 먹어 봐…. 맛있지 이것 농약 한 번 안 준거야."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엔 하우스에서와는 다르게 어느새 환해지고 있었다.

그는 농산물 가격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당장이라도 석유농업에서 벗어나 오래된 전통 농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석유 농업은 투입하면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투입한 만큼 생산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생산량만 많을 뿐 소득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생산비용이 이미 투자된 상태에서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결국은 빚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농부가 빚에서 벗어나는 길은 석유농업이 아닌 오래된 농업

농업은 생명을 키우는 것인 만큼 하나의 생명의 순환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데, 오직 생산량과 소득이라는 상업적이 부분만 강조되면서 생산량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농약과 화학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하게 되어 소비자 역시 안전한 농산물을 먹지 못하게 된다.

오래된 우리의 전통 농업은 완벽한 유기농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작물을 먹은 사람과 가축의 똥이 다시 거름이 되고, 이것이 작물을 키워 사람과 가축이 먹게 되는 순환식 농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석유, 화학농업은 이 순환 고리를 단절시켜, 똥은 바다에 버려지거나 석유로 태워지고, 똥 대신 화학비료가 작물을 키워왔다. 또 화학비료로 약해진 작물들은 병충해에 약하게 되고, 농약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작물도 사람과 같아서 과잉보호, 즉 화학비료를 많이 주게 되면 약해진다.)

결국 한때 ‘금비’라고 추앙되면서 시작되었던 석유, 화학농업은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농정당국은 시설재배와 고비용, 고투입 농업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농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석유재벌들과 비료공장, 그리고 농약공장들뿐이다.

만약 정부가 권장한 농업이 효과가 있었다면, 하우스 농가에 빚이 없어야 된다. 농민들이 농가 부채를 정부에서 탕감하라고 요구하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배럴 당 70달러가 넘는 고유가 시대, 농민들은 과연 어떤 농업을 선택해야 하는가? 석유 농업인가. 아니면 자연과 더불어 농사짓고 살던 오래된 우리의 순환형 농업 방식인가? 답은 점점 명확해지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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