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힘드시군요!"

40대 아줌마의 팔십 노인 체험기

등록 2006.07.19 16:24수정 2006.07.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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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춘천 한림대학교 고령사회교육센터 '생애 체험실'에 다녀왔다.
'생애 체험실'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고령자가 되기 이전의 세대가 고령자가 된 이후의 신체적, 감각적 상태를 가상 체험해 보는 시설'이다. 해마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즈음해서 개그맨 등 유명인들이 모델이 돼 노인 체험 장비를 온몸에 착용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진을 신문에서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현재 이런 노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은 그리 많지 않아서, 서울 인근에 있는 시설로 내가 알고 있는 곳은 경기도 안산 1대학의 '실버 유사 체험관', 춘천 한림대의 '생애 체험실', 서울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의 '어르신 체험실' 정도이다.

팔십 노인이 되어보다!

원래는 단체로 신청하는 경우에만 체험을 할 수 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하여 간곡히 청을 넣은 끝에 고맙게도 체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6년 동안 노인복지 현장에서 어르신들과 직접 만나 일상을 나누면서도 정작 노인의 몸이 되어보고 감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체험해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때가 온 것이다.

한림대의 노인 체험은 시각, 청각을 포함해 몸 여러 부분의 노화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가정한 팔십 노인의 몸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등보호대'를 착용했다. 등에 딱딱한 판을 대고 허리와 배를 조이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등과 허리를 도저히 꼿꼿이 세울 수가 없으니 자세가 저절로 구부정해졌다. 무릎을 중심으로 '다리 보호대'를 차니 무릎 관절마저도 마음대로 폈다 구부렸다 할 수 없게 되었다.

한 쪽의 무게가 1㎏씩이라는 '발목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차고 나니, 이번에는 '팔 보호대' 순서. 다리 보호대와 마찬가지로 팔꿈치를 중심으로 감싸는 형태인데 역시 팔꿈치의 관절을 자유롭게 폈다 구부렸다 할 수 없었다.

한 쪽의 무게가 0.5㎏인 '손목 모래주머니'는 양팔의 느낌을 비교하기 위해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오른쪽 손목에만 찼다. 그리고 손의 감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기 위한 것은 일반 면장갑과 '리스트럭터'라는 장비였다. 면장갑은 손의 촉감을 둔하게 만들고, 리스트럭터는 손을 자유자재로 폈다 구부렸다 할 수 없도록 하는 장비였다.

그 다음에는 '귀마개'를 했는데 양쪽 귀에 모두 귀마개를 하면 체험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안 들린다며 한 쪽만 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체험 안경'. 전체가 노란색이며 시야가 좁아 아무리 애를 써도 멀리 혹은 넓은 면적은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안경을 '황반 안경'이라 부르고 있었다.

사람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색깔 감지 능력이 변하게 되는데, 수정체의 색채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황화현상(黃化現象, yellowing)으로 인한 것이다. 이 황화현상으로 노랑, 주황, 빨간색 계통의 색깔은 더 잘 구별할 수 있게 되지만, 보라, 남색, 파란색 계통의 색깔은 잘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이 안경을 쓰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니 전혀 색깔 구별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접이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등 보호대로 인해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으니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이 힘들었고, 가만히 서있을 때도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버티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자연히 구부정한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체험복 착용을 마치고 드디어 체험실로! 먼저 '감각 및 근력 체험 공간'이다. 젊은 사람들과 어르신들의 시각, 청각, 촉각, 근력 등을 비교 체험해 보는 곳인데 장갑 낀 손으로 만지는 것과 맨 손으로 만지는 것의 차이는 물론, 젊은 사람들에게 들리는 수도꼭지의 물소리와 노인의 귀에 들리는 물소리, 기적 소리의 차이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옆에는 '생활 체험 공간'으로 현관과 주방, 욕실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내가 노인 체험복을 직접 입고 보니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벗을 때도 의지할 수 있는 손잡이 하나만 더 설치해 놓아도 얼마나 수월한지 알 수 있었다.

현재 각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둥그런 모양의 문손잡이는 장갑을 끼고 리스트럭터를 착용한 손으로 열려니까 어찌나 불편한지 저절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손잡이를 조금만 길쭉하고 가늘게 해 놓아도 훨씬 문을 열기가 쉬웠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주방 싱크대와 열기 쉬운 서랍들을 비롯해 휠체어에 앉아서도 사용하도록 싱크대 밑의 공간을 비워놓은 것이라든가, 팔걸이가 없는 의자와 있는 의자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직접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려니 양 옆에 팔걸이 있는 의자가 얼마나 편한지 내 몸이 팔십 노인의 몸이었으므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노인대학과 노인복지관의 팔걸이 없는 의자들이 사실은 어르신들의 앉고 일어섬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는 데에도 생각이 미쳤다.

이어서 '보행 체험 공간'. 팔십 세의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경사로를 걸어 내려가고 계단을 오르려니 겁부터 났다. 체험 안경을 써서 시야가 좁고 흐려진데다가, 몸은 구부정하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다리는 천근만근이니 계단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일반적인 계단과 노인을 고려해 높이와 각도를 조절한 계단 체험을 해보니 (이제까지는 비록 말로만 부르짖었지만) 내가 늘 주장하던 것이 맞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약자가 편하면 보통 사람도 편하다! 약자를 위한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 약자를 생각하지 않은 계단은 약자에게 어려움을 주지만, 약자를 고려한 계단은 보통 사람들에게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도 약자들에게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노인 체험, 그 후...

체험 안경을 가장 먼저 벗고, 귀마개를 뺀 후, 차례로 체험복을 벗어 정리해 놓는다. 그리 길지 않은 체험 시간 동안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다. 체험을 소개하고 안내해 준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앞서 체험실을 다녀간 학생들의 반응을 물어보니 대체로 두 종류라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왜 그렇게 천천히 걷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며 앞으로 잘 도와드려야겠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한 편에서는 "이렇게 힘드니까 늙기 싫어요!"하며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일까?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은 79세 친정 어머니였다. '아, 엄마가 이렇게 걷기 힘드시겠구나. 몸도 눈도 그러니 천천히 조심조심 걸을 수밖에 없으셨구나. 이렇게 잘 안 들리신단 말이지. 밖에 나가 육교나 지하도 계단을 만나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당연 하시겠구나…' 친정어머니에 대한 이해 다음은 내가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사시도록 도와드릴 수 있을까. 무엇이든 젊고 팔팔한 사람들끼리 만들고 자기네들 편한 대로만 하면 지금 당장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젊고 팔팔한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노년이 되어도 괜찮을 거라고, 무슨 걱정이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지 말고 우리 한 번 노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너도 나도 노인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분들의 구부정한 몸이 되어 보고, 한 때는 초롱초롱했으나 이제는 흐려진 눈, 작은 소리 하나 놓치지 않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잘 들리지 않는 귀를 한 번 경험해 보자. 분명 달라질 것이다. 늙은 다음에 바꾸려면 힘들다. 지금의 노년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준비이다. 지금의 노년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면 저절로 지금 젊은 사람들의 노년 기반은 다져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나이 듦을, 늙음을 나쁜 꿈처럼 생각할 것인가. 늙음은 아무도,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다. 중년은 물론 청년, 아이들까지 한 번 나서서 노인 체험을 해보자. 우리가 아직 겪지 않아 모르는 노년을 실제 몸으로 느끼면서 지금의 어르신들을 어떻게 도와드리면서 함께 어울려 살 것인지, 나는 또 어떻게 나이 듦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지 고민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a 노인 체험복과 장비를 착용한 모습.

노인 체험복과 장비를 착용한 모습. ⓒ 유경


덧붙이는 글 | <생활 성서> 2006년 8월호 '유 경의 4050 행복 프로젝트'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 ‘노인 체험’ 안내! 세 곳 모두 단체에 한해 사전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 관악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 체험실 02-888-6144 
* 안산1대학 실버 유사 체험관 031-400-7066 
* 한림대학교 생애 체험실 033-248-3092

덧붙이는 글 <생활 성서> 2006년 8월호 '유 경의 4050 행복 프로젝트'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 ‘노인 체험’ 안내! 세 곳 모두 단체에 한해 사전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 관악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 체험실 02-888-6144 
* 안산1대학 실버 유사 체험관 031-400-7066 
* 한림대학교 생애 체험실 033-248-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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