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요즘은 부시와 전화 안 하나요?"

[정욱식 칼럼] 미국에게 할 말은 미국에게 직접 해야

등록 2006.07.20 12:08수정 2006.07.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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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5월 15일 한미 정상회담 뒤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지난 2003년 5월 15일 한미 정상회담 뒤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청와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북한의 반발 및 미국에 직접 대화 요구→미국의 북미 직접 대화 거부 및 이란과의 직접 대화 시사→북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평양 초청→미국 거부→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 유보 및 미일 주도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 시사 및 이산가족 상봉 중단 통보→미일 양국의 대북 제재 강화 및 남한에 대한 압박 가중….

이같은 일련의 상황 전개는 작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오히려 한반도 문제가 전형적인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의 무모함, 그리고 한국의 무능함이 중첩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마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 주민

이러한 '악순환의 늪'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한반도 주민들이다. 미국과 일본의 강경책에 대해 북한 정부가 '벼랑 끝 외교' 및 '군사적 억제력' 강화 노선을 취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하는데 사용돼야 할 소중한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또한 자체적인 식량 사정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미국에 이어 남한마저 인도적 지원을 중단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또 다시 '고난의 행군'에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남북한 정부의 '박약한' 인도주의 정신이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남한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분단체제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은 또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을 강요받고 있다. 어렵게 진전을 이룬 납북자 문제 역시 남북관계의 악화 속에 희망의 근거가 위축되고 있다.

이미 북한의 GDP(국내총생산)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면서도 정부가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며 대규모의 군비 증액을 추진하면서 양극화 해소 등 남한 주민들의 '인간안보'를 개선하는데 사용돼야 할 예산은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책무이다. 특히 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미국에 직접대화 요구하지 않는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6월 중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6월 하순 워싱턴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 역시 부시에게 북미간의 고위급 대화를 권유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에도 북미 직접대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고집스러운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요구를 잇따라 거부했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당사자이자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온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게 북미 직접대화를 요구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황당하게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5자회담을 열자는 제안을 먼저 내놓았다. 도대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가중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타개해보겠다는 진정성과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정부에게 가장 요구되는 지혜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절묘한 실 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얽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인도적 지원 중단으로 제재를 가한 것이 그렇고, 5자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그렇다.

절묘한 실 고르기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도 부시 행정부에게 북미간의 직접대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면서 이같은 대미외교를 한다면 더욱 좋다.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이자 부시 행정부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는 정신이다(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방침을 어기고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북미간의 직접대화는 6자회담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다.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조금이라도 불신을 덜어내지 못한다면, 6자회담은 아무리 열려봐야 소용이 없다. 6자회담의 재개와 성공을 위해서라도 북미간의 직접대화는 '필수품'인 것이다. 정부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요구도 뿌리친 부시 행정부가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회의론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북미간의 직접대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미국 안팎에서 점증하는 북미 직접대화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제어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뢰의 위기에 빠진 남북관계에도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제5차 북핵6자회담 사흘째인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이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우다웨이 중국측 수석대표가 의장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제5차 북핵6자회담 사흘째인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이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우다웨이 중국측 수석대표가 의장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옥현

할 말은 미국에게 직접 해야

안타까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미국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이나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토로'하는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닫힌 외교'이자, '국내용'이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미간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듣는이는 미국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나 여당 의원, 그리고 국민과 언론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외교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반성해야 한다. 미국에게 할 말이 있다면 미국에게 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야 노 정부가 국내용으로 외교적 발언을 하고 있다는 비판과 "한미관계를 정치화 하고 있다"는 미국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고이즈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부시에게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권유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미국에게 할 말을 했다고 해서 미일관계가 악화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부시는 고이즈미의 솔직함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보도다.

비록 '쇠귀에 경읽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노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우려를 정확히 전달하고 북미간의 직접대화를 촉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국·일본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공조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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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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