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법무장관.오마이뉴스 이종호
천정배 법무장관은 지난 3일, 전환사채 헐값발행사건으로 고발된 사람이 33명이었는데 검찰은 허태학·박노빈씨 두 명만 기소했다는 점을 환기시킨 뒤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삼성 회장 등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는데도 3년 동안 수사를 하지 않고 질질 끌다가 업무상 배임죄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하루 전인 2003년 12월에야 허태학·박노빈씨만 따로 떼어내 기소한 처사를 비판한 것이었다.
천정배 장관의 이 비판을 받아 항소심 재판부의 입증 요구에 대입하면 어떤 말이 나올까? 고발과 동시에 사건 관련자들을 불러 공모관계를 수사했다면 항소심 재판부의 입증요구는 애당초 나올 여지조차 없었을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입증 요구에 대해 검찰은 "사실상 수사가 어려운 부분"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사가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 "수사가 안 된 부분"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누가 지시했는지를 입증하라고 했지만 검찰은 이건희 회장 부자나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이나 중앙일보 등 실권을 선택한 과정을 밝히라고 항소심 재판부가 요구했지만 검찰은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더 있다. 검찰은 조만간 이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대법원 상고는 필연적이고 그러면 공소시효 정지상태는 유지되니까 나중에 이들을 불러 조사하겠다고 한다.
벼락치기 조사, 할테면 하라지만...
고발 즉시 조사하기는커녕 질질 끌다가 공소시효 정지상태에 기대 벼락치기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묻지 말자. 정말 궁금한 건 이들을 불러 조사한다고 뭐가 나오겠느냐는 점이다. 검찰 스스로 "수사가 어려운 부분"이라고 밝혔다면 소환조사는 통과의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항소심 재판부가 공모관계 입증을 위해 검찰에 부여한 기간은 한 달이다. 다음달 24일 재판이 속개된다.
이때까지 검찰이 입증을 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법정 다툼은 전환사채 헐값발행 지시·공모자 전체가 아니라 실행자 허태학·박노빈씨의 유죄 여부로 국한된다. 그 걸로 끝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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