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왜 풀을 키워요?

풀밭에서 부추를 가려내며

등록 2006.07.22 13:25수정 2006.07.22 15: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에 한 평도 되지 않는 부추밭에서 무려 네 시간이 넘게 쪼그려 앉아 일을 했습니다. 부추를 캐고 동시에 풀도 뽑으면서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죠. 겨우 한 평 밭에 풀을 매고는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라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백 마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열 마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일 년 동안 일을 하는 시간은 비슷하겠지요.

단지 기계를 많이 사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크겠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농약 가운데서 가장 해롭다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풀들이 제 세상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루한 장마를 틈타서 풀들이 자기네들 세상인 양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풀과 부추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심을 때는 부추만 심었는데...
풀과 부추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심을 때는 부추만 심었는데...배만호
부추를 많이 키우는 사람들은 부추를 베고 난 뒤에 제초제를 친다고 들었습니다. 뿌리 식물이기에 잎만 잠시 말랐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에 비료를 뿌려 주고, 비료가 녹으라고 물을 뿌리지요. 그렇게 하면 일주일만에 부쩍 자랍니다. 잎도 토실토실한 게 보기엔 아주 좋지요. 하지만 맛은 속일 수가 없지요. 튼튼한 뿌리에서 양분을 흡수한 것과 비료를 순식간에 흡수한 차이일 것입니다.

한 시간 일한 게 이 만큼입니다.
한 시간 일한 게 이 만큼입니다.배만호
풀 속에서 부추를 가려내며 일을 한다는 것이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네요. 긴 장마가 끝이 나려는지 오랜만에 더운 햇살이 내리쬐고, 그 아래서 일을 했습니다. 마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양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하나씩 풀을 뽑고, 부추를 캐고 하다 보니 시간은 흘러가는데, 부추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다른 건 안 먹어도 이놈 부추는 잘 요리해서 먹고 말테다’라는 생각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이 놀리듯이 한마디 합니다.


“아저씨, 풀을 왜 키워요?”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분명 키운 건 부추인데, 저 아이의 눈에는 풀만 보였나 봅니다. 하긴 제가 보기에도 풀만 보였으니까요.


겨우 다 끝냈네요. 부추보다 풀이 몇 곱절이 더 많습니다.
겨우 다 끝냈네요. 부추보다 풀이 몇 곱절이 더 많습니다.배만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땅 파보니 20여년 전 묻은 돼지들이... 주민들 경악 땅 파보니 20여년 전 묻은 돼지들이... 주민들 경악
  2. 2 단감 10개에 5천원, 싸게 샀는데 화가 납니다 단감 10개에 5천원, 싸게 샀는데 화가 납니다
  3. 3 산림청이 자랑한 명품숲, 처참함에 경악했습니다 산림청이 자랑한 명품숲, 처참함에 경악했습니다
  4. 4 대학가 시국선언 전국 확산 움직임...부산경남 교수들도 나선다 대학가 시국선언 전국 확산 움직임...부산경남 교수들도 나선다
  5. 5 해괴한 나라 꼴... 윤 정부의 낮은 지지율보다 심각한 것 해괴한 나라 꼴... 윤 정부의 낮은 지지율보다 심각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