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카우보이 외교' 과연 끝나나

[분석] 미 언론-정계 "잇단 국제문제에 포위... 방향 바꿔야"

등록 2006.07.24 08:59수정 2006.07.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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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가 동시다발적인 국제문제로 총체적인 외교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토록 고수해오던 '부시 독트린'에도 일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공격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간의 전쟁,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전,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를 답습하고 있는 아프간 반군, 미국의 핵개발 중단 요구에도 아랑곳 없는 이란, 그리고 7월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등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현재 한꺼번에 밀려든 국제 문제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타임> "북한의 미사일 발사보다 더 놀라운 것은 부시의 반응"

a 조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 백악관 홈페이지

a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방향을 바꾸었다는 분석기사를 표지 기사로 게재한 <타임> 7월 17일자. 카우보이 모자와 함께 '카우보이 외교의 종말' (The End of Cowboy Diplomacy)이라는 타이틀이 이채롭다.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방향을 바꾸었다는 분석기사를 표지 기사로 게재한 <타임> 7월 17일자. 카우보이 모자와 함께 '카우보이 외교의 종말' (The End of Cowboy Diplomacy)이라는 타이틀이 이채롭다.

부시는 막 백악관에 들어왔을 당시 외교 문제보다는 국내 문제에 치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9·11 테러 사건 이후 부시 행정부는 힘에 기반한 강력하고 일방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해왔다. 부시는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려는 열망을 공언하는 한편,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불량국가들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을 펼치겠다고 단언해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부시 행정부는 모두가 예견했던 이 전략의 무모함이 드러나자 세계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7일자에서 "7월 4일 북한이 7기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때 미사일 발사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이에 대한 부시의 반응이었다"고 지적했다.

부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평양에 통일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하겠다"며 '협력외교'를 강조했는데, 이는 4년 전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하고 육군 사관학교 연설에서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은 행동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과 견주면 큰 차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부시독트린에 따른다면 김정일같은 독재자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의 처벌을 각오해야 하거나 적어도 심한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부시는 다자주의를 이야기하고 북한의 도발을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학자 게리 배스는 "부시 독트린의 좌절을 의미하며 다른 말로는 '카우보이 외교'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정말 카우보이 외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가장 확실한 대답은 미국이 부시 독트린을 적용하고자 했던 주요 지역인 이라크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부시가 처음 이라크전을 개시하고자 했을 때 백악관에 있던 그 누구도 공공연히 반대하지 않았지만, 이제 몇몇 보좌관들은 이라크전이 군사력, 대중적 지지, 세계적 신용도 등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도 미국의 우방이든 적국이든 미국의 강력한 힘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담 후세인의 축출이 미국 헤게모니의 최정점이었다면 이후 지난 3년간은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재편성하려는 미국의 힘이 계속해서 약화되어 갔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실험이 된 이라크 '선제공격 정책'

부시가 말한 대로 이라크전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지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이라크가 여전히 내전에 휩싸여 있고 이미 2500명 이상의 미군이 사망한 사실은 이라크전 개전 당시의 계산과 상당한 오차가 있다.

중동지역 심장부인 이라크에 뛰어들어가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것이 부시 독트린의 대표적인 성과였고, 이란이나 북한 등에게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경우 어떤 조치가 내려질 지에 대해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은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정책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실험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외교 분석가들의 전언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점령 궤적들은 이란이나 북한에 군사 조치를 취할 미국의 능력을 오히려 제한시켜왔을 뿐 아니라,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을 더욱 대담해지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1991년~1994년까지 플로리다 탬파의 미 중앙군사령부(USCENTCOM)를 지휘했던 조셉 호어 장군은 <타임>에 "미국은 이라크·이란·북한에 주목하고 그들 중 하나에 대해 선제공격을 했지만 헛짚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북한과 이란은 우리가 원했던 방향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a 부시 미 대통령의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 부근에서 1인 반전시위를 벌이던 당시의 신디 시핸 여사.

부시 미 대통령의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 부근에서 1인 반전시위를 벌이던 당시의 신디 시핸 여사. ⓒ 연합뉴스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에서 반군과의 지속된 전투는 부시 독트린의 효력에 대중적 회의를 불러왔다. 전쟁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도는 지난달 알 자르카위의 사망 이후 소폭 상승했으나 그후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절반 이상의 미국인이 이라크전에 대해 비판적이며, 미국의 전쟁 자원도 점차 고갈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라크전에 계속 쏟아 붇는 전비는 미군의 운영자금 부족을 가져와 브래그 기지는 사무용품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샘 휴스턴 기지는 전기와 수도물 공급 중단 통고를 받을 정도였다.

이라크전에 대한 또 다른 대가는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탈진 상태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 관리들은 이라크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습관적으로 이라크전 성과를 과장할 정도로 전쟁 경과와 관련해 방어적 업무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마디로 이라크전에서 어떻게 발을 빼느냐가 중요한 과제인 지금 더 이상 부시 독트린을 적용시키기는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부시가 아무 생각 없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당초 부시의 목표가 바뀌지 않았다고 애써 주장한다.

백악관 고문 댄 바틀렛은 <타임>에 "이라크는 역사적으로 독특한 상황이었으며 부시 행정부 1기 외교정책은 9·11에 기인한 것이었다"면서 "대통령은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반응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해왔다, 선제공격 독트린이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의 유일한 옵션이라는 인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카우보이 외교'가 애당초 부시의 외교 독트린이 아니었다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변화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북한이나 이란 문제 해결에 있어 다자주의적 접근을 강조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지 강화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스는 외교적 현실주의자이며 부시 행정부 1기를 장악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도덕주의적 접근법에는 덜 경도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녀의 실용주의 외교정책은 딕 체니 부통령과 같은 매파들의 이상주의적 외교정책을 제어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타임> 칼럼니스트 마이크 알렌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변화가 세계적으로는 다행한 일이지만, 알카에다와 이라크전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쏟아 부은 나머지 중동지역 분쟁, 수단의 인종학살, 중국의 성장 등 새로운 세계적 도전에 일일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부시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부르킹스 연구소의 중동 문제 전문가 켄 폴락도 이같은 총체적 외교정책의 문제점들이 이제는 부시 행정부가 중동지역에서 추진해왔던 자유의 확산 운동을 제한하고 있으며, 결국 대외정책의 진로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로렌스 콥은 최근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모든 적들과 마구 예방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부시 독트린이 현실과 만나 무너졌다"고 단언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에서 일했던 웬디 셔먼은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 지금처럼 한꺼번에 위험스런 상황이 몰아닥친 예가 없었다"면서 "부시가 아무 생각없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황혼 맞이한 '민주주의 확장' 이상주의

a 2003년 4월 미 해병대가 포로로 잡은 이라크 군들을 끌고 가고 있다.

2003년 4월 미 해병대가 포로로 잡은 이라크 군들을 끌고 가고 있다. ⓒ 미 국방부

이라크전이 부시 독트린의 한 쪽을 허물었다면 국제정치의 복잡성은 미국이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려는 계획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부시가 중동지역에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전개되고 있다. 한때 성공적으로 여겨졌던 이집트나 레바논에서의 민주주의도 지금 모두 후퇴하거나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부시가 인권을 개선하라고 촉구해온 러시아와 중국 조차도 나아지고 있다는 징후는 별로 없다.

이라크전에서의 희생, 알카에다에 대한 과도한 작전 전개, 아부 그라이브와 관타나모 베이 교도소에서의 인권유린 등은 평범한 이슬람 교도들마저 서구에 대한 반감을 갖도록 만들고 있으며, 그 결과 하마스와 같이 서구에 대해 더욱 적대적인 세력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는 자화자찬과 이상주의로 점철된 부시의 '자유의 확장' 독트린을 퇴색시키고 있음을 입증시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독재국가로 여기는 다른 나라에서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 구성을 조건으로 원조 여부를 결정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설령 어느 나라가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구성했다 하더라도 이를 지탱할 여타 제도가 개혁되지 않는 한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선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 부시 행정부의 위로부터의 접근방식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라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교육제도와 경제발전 등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다른 시스템들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방외교-테러전 집중,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 감소 불러

부시 행정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잘못된 환상은 국제적 정당성 확보나 다른 국가들의 협력 없이도 미국이 중동을 재편성하고 독재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나토군이 미군과 더불어 탈레반에 대항해 싸우고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미군만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에 대한 구체적 제재 문제를 다루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하려 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할 정도로 미국과 다른 주요 강국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간극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테러와의 전쟁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합당한 이념적 틀을 제공해 주었지만, 이에 집중한 나머지 아시아, 러시아와 동유럽, 남미 등의 여러 지역 사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 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당장의 삶에 영향을 주는 보건정책, 직업 보장, 교육, 환경 문제 등이 자살폭탄 위협보다 중요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이슬람 테러리스트 박멸에만 계속 주의를 기울인다면 다른 지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감소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타임> 칼럼니스트 마이크 알렌의 다음과 같은 조언은 부시 행정부가 남은 30여개월동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부시가 지금이라도 보편적이고 덜 논쟁적인 외교적 전통으로 회귀하려 한다면 이제 그만 이라크 족쇄에서 벗어나 이란과의 전략적 화해, 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마샬플랜 등의 문제에 주목하고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대부분의 레임덕 대통령들이 자신이 세운 대외정책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으나 종국에는 실망만 안겨주고 말았다. 부시에게는 이같은 과오를 피할 기회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일부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이라크 내전이나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 등에서 여전히 미국의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시의 전통적 외교로의 뒤늦은 정책변화는 산적한 현안 문제들에 대해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냐는 오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외교정책담당 부소장인 다니엘르 플렉카는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옴짝 달싹 못하고 있으며, 이라크 문제로 분열되고 지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미국은 부시 대통령 재임 1기 때보다 지금이 더 강력한 외교적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능동적이고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시 행정부가 너무 많은 복잡한 외교적 현안들에 휩싸여 있고, 이미 효능이 다한 부시 독트린으로는 이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부시 독트린의 후퇴를 목도하고 있으며, 과연 부시가 물밀 듯 밀려들고 있는 외교적 현안들을 해결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지에 이목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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