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동북아 외교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2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중국에 대해서는 온건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일본인들이 중국은 어려워하면서도 북한은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에 대한 일본 정계의 태도를 각각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중국에 대한 일본 정계의 태도는 온건한 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열적'인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일본은 한편으로는 중국 등을 겨냥하여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추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중·일관계의 '뜨거운 감자'인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일본 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온건파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이 아시아 외교 중시를 주장하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압박하는 것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엔 '온건'하고 북한엔 '강경'한 일본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중·일관계와 관련하여 온건론이 강경론을 억누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고이즈미 총리가 지금은 한풀 꺾인 것도, 그가 아시아 외교(주로 중·일관계)에 실패했다는 반대파들의 비판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제동이 걸리는 것도 그것이 중·일관계를 해친다는 비판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일본 내부적으로 중국에 대한 입장 차이가 현저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으로는 온건 기류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북한에 대한 일본 정계의 태도는 강경한 편이다. 그리고 북한과 관련하여서는 뚜렷한 내부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일본 내부의 태도는 '통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온건론을 펴는 인사들도 있지만, 그러한 온건론은 강경론 앞에서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외교와 관련하여서는 온건론이 강경론에 대해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23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바와 같이,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경우에도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론 통일을 위해 자신의 입장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일본이 북한보다 중국을 더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럼, 이처럼 일본인들이 북한보다 중국을 더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국이 북한보다 더 위협적이기 때문일까? 물론 중국의 국력이 북한의 국력을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에 위협을 주고 있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북한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코 앞'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북한보다 더 위협적이기 때문에 일본이 중국은 무서워하고 북한은 무서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중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일까? 세계경제 속에서 중국이 북한보다 훨씬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도 분명 중국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일본이 중국을 무서워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야스쿠니 문제 때문에 중일관계가 악화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양국 간의 경제교류가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일본이 중국에 대해 할 말을 한다고 하여, 중국이 양국 간의 경제관계를 단절시킬 수는 없다. 경제교류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외교가 중국은 무서워하고 북한은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려면, 중·일관계나 북·일관계 그 자체보다도 다른 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일관계나 북·일관계를 좌우하는 최대의 변수가 일본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북아에서 일본은 미국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중·일관계나 북·일관계 같은 일본의 대외관계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역내(域內) 외교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시하는 나라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미국이 경시하는 나라를 경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있기 때문
9·11 이후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구도 하에서 북한은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반면, 중국은 내심 미국을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당장의 필요 때문에 미국의 파트너 역할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북-미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은 중재자의 입장에 서서 북한이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6자회담 구도를 지지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대단한 '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자국의 동북아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으로 인해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 연대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상전'인 미국이 중국을 어려워하는데, 그 '노비'인 일본이 중국을 어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이 내심으로는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상전'인 미국이 중국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상전'이 귀빈으로 대우하는 사람의 비위를 건드린다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 역시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일본 외교가 중국을 상당히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반면, 일본이 북에 대해서만큼은 속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또 소위 '납치문제'에서 '억지'도 부릴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상전'이 대북 압박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상전'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본인들의 '코앞'에 미사일을 떨어뜨리는데도 일본이 북한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북한의 신경을 더욱 더 자극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태도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위와 같은 점들을 본다면, 일본이 중국에 대해서는 온건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행동에 '안테나'를 맞추는 일본인들의 '생존 방식'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는 일본이 중국을 무서워하고 북한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이러한 태도는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왜냐하면, 미·중관계가 앞으로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는데다가 북미관계 역시 향후 극적으로 반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중관계는 '깨지기 쉬운 관계'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해리 하딩은 1992년 미국에서 발행된 <깨지기 쉬운 관계 : 1972년 이후의 미국과 중국>이라는 책에서,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20년간의 양국관계를 분석하면서 이 관계의 특성을 '깨지기 쉬운 관계'(a fragile relationship)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이것은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본질적으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훗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깨지게 되면, 일본 정치인들은 더 이상 중국을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야스쿠니 문제나 동지나해 천연가스 문제 등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속마음을 여과 없이 표출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온건론이 힘을 발휘하기도 힘들 것이다.
미국의 태도에 따라 자국의 태도 결정하는 일본
다음으로, 북·미관계는 앞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평화관계로 바뀔 수 있는 관계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평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를 원한다는 점은,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데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 미국 역시 엄밀히 말하면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국들 중에는 핵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미국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혹은 미사일을 갖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북한이 미국에게 어떤 나라가 되는가이다. 북한이 자국의 동맹국이 될 수 있다는 판단만 들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일본 정치인들은 더 이상 북한을 만만하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일본 정계가 지금 중국을 어려워하듯이 그때는 북한을 어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동북아 역내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일본의 주체적인 입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일본은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북한·중국 등에 대한 자국의 태도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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