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해 두는 것이 문화재 관리?

훼손되기 전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등록 2006.07.26 10:13수정 2006.07.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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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풀로 뒤덮힌 택지돈대(위쪽 사진들). ②시멘트로 복원됐으나 다시 깨지고 부서지는 택지돈대(아래쪽 사진들)
① 풀로 뒤덮힌 택지돈대(위쪽 사진들). ②시멘트로 복원됐으나 다시 깨지고 부서지는 택지돈대(아래쪽 사진들)이수앙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인 택지돈대(宅只墩臺).

택지돈대는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고,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였으며, 조선시대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의 격전지이기도 했던 강화도 국방유적 중 하나다. 1995년 인천시도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취재진이 찾았을 때 택지돈대는 무성히 자란 수풀과 담쟁이 넝쿨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문화재 관리인가. 의문이 일었다. 최소한 관광객들이 '뱀이 나올까봐' 못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어야 되지 않겠는가.

돈대의 입구와 포를 설치하는 입구에는 거미줄이 쳐져있다. 복원되었던 성곽의 시멘트가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우리의 선조들이 흙과 돌로 쌓았을 성곽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깨지고 부서진 시멘트 파편들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올 뿐이다.

눈에 띄게 훼손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이곳을 관리하는 데 조금 더 힘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강화도 내의 돈대, 일명 '강화돈대'라고 불리는 돈대의 수는 모두 53개. 조선 숙종 5년인 1676년 청성부원군 김석주(金錫胄:1634~1684)의 건의를 받아들여, 당시 강화유수(江華留守)였던 윤이제(尹以濟)의 지휘로 축조되었다고 전해진다.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이다. 밖은 성곽으로 높게 쌓고 그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택지돈대는 정사각모양으로 화강암을 이용해 쌓아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4개의 받침대를 가지고 있다. 강화돈대에서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택지돈대는 1998년에 완전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

덧붙이는 글 |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입니다. 이 기사는 iMBC에도 동시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입니다. 이 기사는 iMBC에도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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