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의 얼을 찾아서 <2>

일본은 지꾸호에 묻힌 강제연행 조선인들의 신원을 밝혀내라!

등록 2006.08.14 15:05수정 2006.08.14 17:01
0
원고료로 응원
야하타 제철소 굴뚝에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

ⓒ 김종수

7월의 첫 날, 아힘나의 평화학교의 학생들이 조선인 강제연행 유적지를 찾아갔다. 일본은 이 때 장마철이었는데 밤에만 비가 오고 낮에는 비가 오지 않고 잔뜩 흐리기만 하였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공급했던 야하타 제철소가 보인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현해탄을 너머 이 곳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른 아침에 본 이 제철소의 굴뚝에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죽은 이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이누까이 목사님

a

ⓒ 김종수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힘나 아이들은 후꾸요시 전도소에서 사역하시는 이누까이 목사님을 찾아나섰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 이누까이 목사님 부부의 얼굴이 무척 밝다.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이었을까?

이누까이 목사님은 대학시절 탄광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그 지역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빠져 탄광지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점점 이 지역으로부터 선교과제를 찾게 되면서 지금까지 민중선교를 해오시는 목사님이셨다. 그러다가 이 지역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숨져간 조선노동자들의 넋과 만나게 되었고, 이 곳에서 죽은 이들의 인권을 생각하며 매일 이 곳을 찾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으며 강제연행 역사유적지들을 안내하고 있다.

a

ⓒ 김종수


70세 가까이 되시는 이누까이 목사님은 언제나처럼 앞장서서 석탄박물관으로 아이들을 인도하였다. 석탄박물관에는 지꾸호지역에 있던 탄광의 수와 규모, 그리고 당시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편, 현 일본 외상인 아소의 조부가 운영했었던 아소탄광도 이 지꾸호에 있었다. 그 곳에서도 역시 강제연행되었던 조선노동자들이 있었다.

석탄자료관에는 지꾸호에 있었던 대기업 탄광에서의 채탄과정과 운반과정이 매우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a

ⓒ 김종수


하지만 이누까이 목사님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이것은 눈속임이었다는 것이다.

a

ⓒ 김종수


명치유신 때의 탄광내부 모습이라고 설명하는 사진의 이 모습이 반세기가 지난 당시 실제 탄광내부 가장 아래층에는 여전히 존재하였다는 것이었으며, 그 열악한 작업환경에 바로 강제연행된 우리 조선노동자들이 혹독한 노동을 강요 당했고, 최소한의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휴우가 묘소 뒤 후미진 곳에 묻힌 강제연행 조선노동자들의 한

이렇게 혹독한 노동현장에서 견디다 못해 죽어나간 조선인들은 얼마였을까? 이누까이 목사님과 고꾸라 교회의 주문홍 목사님은 일본의 한 개인가족묘인 휴우가(日向)묘소로 아이들을 인도하였다. 휴우가 묘소 옆에는 묻힌 이들이 평소에 기르던 애완동물의 무덤까지 가지런하게 있었다.

a

ⓒ 김종수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자 뒤쪽 후미진 곳에 봉분도 묘비도 없고 그저 돌덩이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언제 어떻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조선노동자들의 무덤'이 있었다.

a 지꾸호 곳곳에는 이렇게 탄광에서 죽어간 조선인들의 무덤이 널려 있다.

지꾸호 곳곳에는 이렇게 탄광에서 죽어간 조선인들의 무덤이 널려 있다. ⓒ 김종수


필자가 이 곳을 찾아 온 것이 벌써 다섯 번째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곳을 다녀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곳에 묻혀 있는 조선인들의 수가 얼마인지, 누가 묻혀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 누구도 조사하겠다고 나선 이가 없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묻힌 이들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인권을 회복하는 길

아힘나의 아이들은 재일조선인도 아닌 일본인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하여 물었다. 이누까이 목사님은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방문하고는 심히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부끄러움 이란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의 사망자 명단은 있는데, 나는 이 곳에 조선인노동자들이 묻혀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찌 그 뿐인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강제연행 조선노동자들의 산재*사망기록을 숨겨버렸으며, 그리고 원자폭탄으로 숨졌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의 기록, 그리고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고간 조선여성들의 명단을 은폐하였고, 관동대지진 때 극심한 혼란을 안정시키려고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해 국민들의 분노를 조선인들에게 향하도록 하여 소위 마을 자경단들이 아무런 죄없는 조선인들을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6000여명 이상을 학살하도록 조장했던 그 기록 역시, 그 어디에도 남겨 놓지 않았다.

a 아힘나 임수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누까이 목사(오른쪽)

아힘나 임수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누까이 목사(오른쪽) ⓒ 김종수


그래서 이누까이 목사님은 휴우가묘소에 묻혀있는 조선인들의 신원을 밝혀내는 일이 남은 여생에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들이 억울하게 숨져간 조선노동자들의 인권이 회복되는 길이며, 또한 이 일이 바로 나의 인권이 회복되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어찌 한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랴? 반가운 것은 이 지꾸호의 양심적 일본인들도 지꾸호에 묻힌 수많은 조선인들의 인권을 위해 그들의 신원을 밝혀내는 일에 나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양쪽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역사를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강제연행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신원만이라도 밝혀 주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한국정부 역시 기민정책으로 일관했던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당해야만 했던 재일동포들의 서러움과 그 맺힌 恨을 풀어드리기 위해 지금이라도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는 일에 조금더 주저해서는 안될 일이다.

a 한국에서 가져간 흙을 무덤 주변에 뿌리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간 흙을 무덤 주변에 뿌리고 있다. ⓒ 김종수


a

ⓒ 김종수


아힘나의 아이들은 미리 준비해 간 고국의 흙을 무덤 주위에 뿌리고 한반도기와 태극기를 꽂고, 이 곳에 묻힌 우리 선조들의 恨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미래에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재 우리가 해야할 책임을 다하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미래의 역사를 스스로 써 나가기를 다짐하면서 아린 가슴을 안고 휴우가 묘소를 내려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재일코리안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얼을 찾아나선 아힘나 아이들의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의 기록 2편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재일코리안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얼을 찾아나선 아힘나 아이들의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의 기록 2편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