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 47]

등록 2006.07.27 10:09수정 2006.07.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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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미시간 호로 산책을 나가 호수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호수 쪽으로 툭 튀어나온 기다란 '네이비 피어(Navy Pier)'가 저 멀리 보입니다. 다운타운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3200블락을 온 곳이 이쯤이니 차로 내리 달리면 20여 분 지나 도착할 수 있지요.

언제부터 아이랑 가자던 곳이었습니다. 밤낚시를 가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며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놀이기구도 타고 보트도 탔던 옛 기억이 아이에게 아직 남아있던 모양입니다.

"박물관도 갈 거지요?"

네이비 피어에 있는 어린이박물관은 목요일 저녁마다 무료로 개방을 하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하는 가족 프로그램을 신청해놓은 터라 길이 쉽지 않았다가, 오늘 마침 강좌가 없는 날이었네요.

시카고 강이 미시간 호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있는 네이비 피어는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선착장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훈련 기지였다던 이 곳이 지금은 사람들이 밀려드는 유원지로 더 분주하지요. 거리의 악사들, 낚시꾼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관광객들…. 부두를 따라 길게 지어진 건물은 음식점과 쇼핑가게로 다 채워져 있습니다. '인천의 월미도가 시카고에 가다'라는 누군가의 표현이 꼭 맞다 싶네요.

그 건물의 긴 중앙통로에 막 들어서면 작은 무대가 먼저 사람들을 맞습니다. 이들의 소박함을 예서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기예단을 기대하면 정말이지 실망하지요. 하지만 열정적으로 등장인물이 나오고 사람들은 또 엄청 박수를 보냅니다. 그 관객들, 대답도 잘하지요. 나오라면 나가고 노래하라면 또 다들 합니다.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 서로 교통하는 재미가 더 큰 무대지요.

건물 밖에선 미시간을 도는 유람선을 탈수도 있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일주할 수 있는 자전거(1인용에서부터 열댓 가족이 다 탈 수 있는 것까지)를 빌릴 수도 있습니다. 이곳까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무료 트롤리는 별스러울 것도 없는 듯한데 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설레며 기다리게 하지요. 무엇보다 건축의 도시 시카고의 73개 빌딩이 그려내는 스카이라인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는 점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랍니다.

시카고 어린이 박물관. 어쩜 네이비 피어에 가족단위 관광객의 방문이 유달리 많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겠습니다. 네이비 피어 중앙건물의 들머리에 있는 이 박물관은 14개의 전시관을 가지고 있지요. 재활용품들이 얼마나 적절하고 근사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지에 곳곳에서 감탄합니다. 예를 들면 고고학자처럼 공룡탐험을 경험해보는 방에서 공룡화석이 덮고 있는 퇴적층은 폐타이어를 잘게 잘라놓은 것들이지요.

아이들이 비닐앞치마나 비옷을 입고 들어서는 '물의 여행'방에서는 물이 지구에서 하는 역할들을 살피고 겪어볼 수 있으며, 사물이 내는 갖은 소리에 귀기울여보는 '안전과 소리'의 방은 대상인 아주 어린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머물러 봄직 합니다.

아이들 줄이 가장 긴 곳은 '클라이밍 스쿠너'지요. 범선의 위 아래를 오가는 그물망은 해적 흉내를 내고픈 아이들의 소망을 이뤄줍니다. 다른 방에서 아이들은 차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기도 하고, 911 소방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어느 공간에서는 온 가족이 집짓기를 경험해보기도 하며, 역할극처럼 카터에 물건을 실어 계산도 하는 식료품점도 있습니다. 과학실험실, 톱니의 원리, 비행기의 원리, 나무집 탐험 같은 이 상설 전시장 외에도 여러 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따로 꾸리고도 있다지요.

미시간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아이랑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한 아이의 성장사에 고스란히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요. 흔히 그것을 '기른 정'이라 부르겠습니다. 많은 아이들 틈에서 지내는 방학 아니어도 늘 여러 아이들 속에 있다가 온전히 이 아이 앞에만 있는 두 달이 퍽이나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맞을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곳이네" 이렇게 중얼거려놓고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지요. "아이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읽는 것,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사물에 다가가도록 격려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정 밀도가 아닐까 싶데요. 그래서 관객이 넘쳐서 서로를 불편케 하는 일이 없도록 이 박물관은 잘 조절해주고 있었지요.

(2006년 7월 13일 나무날, 맑음)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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