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와 지갑 분실사건

어머니는 어떤 상황이든 자식을 위하신다

등록 2006.07.27 13:55수정 2006.07.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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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관호

우리 집은 분실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값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사람이다. 바로 우리 어머니.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어머니의 입 모양이 이상했다. 인중이 쪼글거리고 주름져 있었다. 틀니 분실사고를 일으키신 것이 분명했다. 틀니는 매제와 여동생의 선물이기도 했다. 아침에 세수하시고 틀니를 뽑아 세척한 후 또 어딘가에 감추신 것이다. 허긴 어머니에게는 귀중한 물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제 형사 같은 직감이 생겨 대충 감춰진 곳을 알아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리 둘러봐도 틀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럴 때의 또 다른 방법은 집 안에 현상금을 거는 것이다. 그래도 틀니를 찾을 수 없으면 피해자요 가해자인 어머니를 편안하게 만들고 '래드 썬'하고 최면술사 같은 대화를 해야 한다. 어쩌면 가해자 신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틀니 씻으시고 어디에 두셨어요?"
"내가 잘 둔다고 뒀는데."
"어디에다 두셨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러시더니 본인이 이 방 저 방 찾으러 다니신다. 나는 어머니를 미행하며 또 다른 추적을 해본다. 기존에는 가방이나 서랍에 넣어 두셨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철저히 숨기신 모양이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가능성을 역추적 해봤다. 증거나 흔적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욕실 앞에 휴지 조각이 보였다. 순간 휴지에 싸 놓으셨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어머니, 휴지에 싸서 틀니 어디에 두셨어요?"
"잠깐만 내가 생각해 보고."


결국 내가 찾아낸 곳은 옷장 깊숙한 곳이었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중요한 물건을 옷장에 숨기시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추정해 본 것인데 들어맞았다. 휴지로 범벅이 된 틀니를 깨끗이 세척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 이거 하세요?"
"그것 봐라. 내가 잘 뒀다고 했잖니."


그럴 때면 그냥 서로 웃고 만다. 어머니 같은 어르신들에게 '교훈(?)과 몰아붙이기'는 안 좋은 방법이다. 그냥 그 순간, 몇 분전의 과거라도 깜박하시게 놔두면 좋다.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니까. 그런 날이면 식어버린 국과 물기 마른 반찬만이 반겨준다.

어느 날은 내 지갑 분실 사건이 발생했다. 밖에서 분실한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려고 카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갑이 없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머릿속 지우개가 활동 한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있는 내 지갑을 보시면 가끔 잘 두신다고 꽁꽁 숨기시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말씀드리면 신세 한탄도 가끔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지갑 냄새를 맡으며 이곳저곳, 이 방 저 방을 다녔다. 옷장, 서랍, 어머니 가방 그리고 소파 밑, 어머니 겨울 옷 주머니, 책장의 책 사이 등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다. 어머니에게 여쭤봐야 했다.

"어머니, 이만한 검은 색 내 지갑 어디에 두셨어요?"
"글쎄. 내가 잘 둔다고 둔 것 같은데. 가만 있어봐."

어머니는 자신이 가방과 옷장을 뒤지신다. 이번에는 너무 꽁꽁 숨기신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치료 요법이 있다. 이것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들딸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그것은 책 읽기와 쓰기 그리고 퍼즐 요법이다. 퍼즐은 너무 복잡한 것 말고 60개 조각 정도의 퍼즐을 맞추시게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저녁 날 내가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였다. 팔운동을 하다가 근육을 만들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반복적인 운동이니 어머니의 뇌도 운동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힘들지만 뇌를 운동시키는 방법으로 책 읽기와 쓰기, 퍼즐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날도 퍼즐을 하도록 해드렸다. 끙끙거리시며 하신다. "오늘은 잘 안되는데"하시며 그래도 끝까지 하신다. 몇 개만 맞추셔도 나는 칭찬을 한다.
"어머니, 팔십 넘은 노인 중에 어머니 같이 잘 맞추는 사람은 없어요. 최고예요."

그러면 어린아이 같이 웃으신다. 그리고 열심을 내신다. 힘들다는 불평도 사라지고 진지해 지신다. 한두 시간 걸리던 것이 점차로 시간이 줄어들고 어떤 때는 40분이면 다 맞추신다. 나는 어머니의 퍼즐 맞추기 시간에 따라 어머니 상태를 짐작한다. 그래도 지갑은 찾아야 했기에 어머니가 퍼즐을 다 맞추실 때를 기다렸다. 오늘도 한 개가 틀렸다. 사람 얼굴이 두 개가 겹쳤다. 내가 마지막 한 개를 바르게 맞춰 놓고 말했다.

"어머니, 최곱니다. 다 잘 맞추셨어요."
"아이고, 오늘은 잘 안 된다."
나는 어머니 양손을 꼭 잡고 눈을 보며 말한다.
"아닙니다. 잘하셨어요.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세요. 아셨죠?"
"알았어."
"어머니 내 지갑 생각나세요? 어디 두셨어요?"
"잘 생각이 안 나네?"

나는 '지갑은 집 안 어디엔가 있으니'라고 생각하고 강아지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다. 산책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후배에게 선물 받은 조그만 다기세트를 차 에 놔둔 것이 생각나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마침 조수석 의자에 놓았기에 그것을 꺼내려고 하는데 내 지갑이 핸드 브레이크 사이에 있었다. 아뿔싸. 지갑 분실 사건의 범인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였다. 어찌나 어머니에게 미안하던지.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지갑 찾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그것 봐라, 내가 잘 뒀다고 했잖니."
"맞아요. 어머니가 잘 두셔서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차 안에서 찾았다고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배려에 대한 기쁨을 간직하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무슨 일이든지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어떤 상황이든 자식에게 유익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머니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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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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