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만년 세월을 온전히 견디며 서 있는 태백산 주목. 그 나무에서도 범상치 않는 기개가 느껴진다.한석종
태백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왔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초입의 단군사당과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천제단이 그 것이다. 나는 그리 힘들다는 느낌이 채 들기도 전에 우리 민족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태백산 표석을 앞에 두고 어떤 기운에 일순 압도당한 나머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힘차고 기백이 넘치는 태백산 표석에 몰입된 나머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간신히 천제단으로 옮겼다. 천제단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간절히 간구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발보고 있자니 나 또한 숙연해지면서 따라서 두 손을 모았다.
이런 숙연함을 단번에 깨버리는 굉음이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천제단, 아니 태백산 전체를 흔들어댔다. 나는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군 전투기 한대가 천제단 위를 날고 있었고 곧이어 태백산 줄기에 조성해 놓은 포탄 사격장으로 곤두박질치며 포격하는 굉음이 이어졌다.
전투기 한대가 굉음을 내며 목표물을 향하여 폭격하고 사라지자 또 다시 전투기 날아오기를 끝없이 반복되면서 태백산 천제단에는 전투기 행렬과 굉음뿐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숨죽여야만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마음속에 갖고 있던 태백산에 대한 신성한 이미지가 이내 사라져 버렸고, 조금 전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태백의 기개를 다시 느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