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세상으로 가볼까요?

[서평] 어린이 미술책 <민화나라에 온걸 환영해!>

등록 2006.07.28 16:30수정 2006.07.28 16:30
0
원고료로 응원
개발독재시대에 학교를 다닌 우리세대에게 민화는 신년초 어른들의 손에 왔다갔다 하다가 마루나 안방에 걸리는 달력에서, 혹은 오래된 병풍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아니면 가끔 미술 교과서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거나 우표의 소재로도 쓰였던 것 같다.

기말고사 때 미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민화에 대한 지식을 그냥 줄줄 외웠을 뿐이었다. 좀더 나중에 민화는 작가를 알기 어려우며 기층 민중들이 자신들의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내용들을 책에서 읽은 정도가 민화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산업화시대의 주입식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의 교육은 이런 방식이었다. 교과서를 달달 암기하여 아는 것은 많았지만 자칭 안다는 것의 기본 원리나 이치에 대해 물으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었고 나중에 그 원리를 깨치게 되면 무릎을 치면서 "아, 그게 그런 거였구나"라고 감탄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요즘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외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교육의 미래에 대해 한탄한다. 마치 우리는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급속도의 경제성장이 절실했던 산업화 시대에 주입식 교육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는 많이 아는 것보다 어떻게 아는가가, 그리고 그 아는 것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내는가가 더 중요한 학습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과거 학력고사 문제와 현재의 수능 문제를 한번 비교해보라, 그 차이가 무엇인지. 학력고사 문제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들은 수능 문제를 거의 풀지도 못할 것이다.

체험학습과 수행평가가 강조되고 있다. 박물관과 도서관이 중요한 학습기관이 되어가고 있고, 탐구여행이 새로운 사교육 방식으로 점차 각광받고 있다. 당연히 교재도 달라져야 한다. 여러지식을 그냥 학생들이 암기하는 방식이 아닌 기본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의 교재들이 등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많은 교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미술인들이 민화에 대한 미술책을 냈다. 두께도 얇고 그림이 많아 처음 나는 어린 아이들이 그냥 슬슬 보는 그림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쭉 읽어보니 그림책 수준을 넘어 어린 아이들이 민화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민화와 친근해지도록 하는 어린이 미술책이었다.

아니 어른인 내가 봐도 민화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항상 어디서나 편견과 선입견은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우리의 생각 속으로 튀어나오는 법인가 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김연수, 이한나, 최유경 세 사람의 젊은 미술학도들로 구성된 이미지 놀이터가 만들어낸 "민화나라에 온걸 환영해!"는 민화에 등장하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해체하여 가상의 주인공 '보리'가 이 민화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짤막한 상상의 이야기로 아이들의 관심을 민화로 유도한다. 이야기와 곁들여지는 그림은 크기도 큼지막하고 색채도 강렬하여 깊은 인상을 준다.

호랑이와 표범의 생동감 있는 무늬와 민화에 비추어진 여러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민화에 표현된 호랑이와 표범의 다양한 묘사 방식도 볼 수 있게 된다. 읽다가 보면 또 느낄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물고기를 이렇게 다양하게 그렸구나, 새가 취하고 있는 자세도 여러 각도에서 그렸구나, 민화에 나비가 이렇게 많이 등장했나… 등등.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민화 속 주인공들이 상징하는 의미를 알기 쉽게 그림과 곁들였다. 마지막의 '민화는 어떤 그림일까요'는 민화의 개념과 특징, 미술사에서의 의의를 설명해 놓은 정리글이자 보너스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추천도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서양그림들을 아는 것이 그 사람의 교양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라는 인식이 아직도 적지않게 남아있는 요즘 시대에 아이들이 민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민화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도록 "민화나라에 온걸 환영해!"를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자.

그리고 바가지요금과 교통체증이 극성을 부리는 유원지들보다는 아이들 손을 잡고 시원한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서 민화의 나라를 체험해보고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상상력 그리고 그 표현방식을 알아보자. 진정한 그리고 뜻깊은 피서와 휴가가 아닐까?

민화나라에 온 걸 환영해! - 어린이 세계 미술관 1, 한국만화

이미지 놀이터 글 그림,
꼬마심포니(다빈치기프트),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