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휴가보내기' 어떨까요

"하추리 주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21세기형 유민' 수재민의 고달픈 여름나기

등록 2006.07.28 16:47수정 2006.07.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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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얀집 민박 주인 아주머니, 안녕하십니까?"

"하얀집 민박 주인 아주머니, 안녕하십니까?" ⓒ 유성호

2006년 7월 중순 강원도. 하늘에서 쏟아 낸 물폭탄에 도내 여러 마을을 처참하게 박살냈다. 27명의 고귀한 목숨이 스러졌고 17명이 생사가 불명이다. 재산피해는 복구비까지 셈하면 3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인 인제군. 무엇보다 주민들은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각오로 강한 복구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래서 손을 보탤 수 있다면 모두가 복구현장을 나와 자원봉사자들과 어울려 재기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하늘이 내린 인제'라고 감사하며 살았는데, 하늘도 무심했다.

7월 27일부터 또다시 비가 쏟아지면서 주민 대피령이 내렸다. 다잡았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힘겹게 복구한 길 또한 물살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복구'가 다시금 '생존'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지난 7월 14일 첫 물폭탄이 계곡을 치고 내려와 마을이 풍비박살 난 하추리 마을. 윗동네 가리산리에 볼일이 있어 찾았던 이 마을 김군호씨가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급히 차를 몰고 내려와 알린 덕에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가 없었다.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맞는 물난리다. 마을 어르신들도 조차 물난리가 났다는 선대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족히 수백 년 동안 물난리가 없었던 셈이다. 험악한 난리 없이 살아온 터라 주민들이 마음 씀씀이가 곱다. 외지인이 50%에 달하지만 서로 융화돼 잘 살고 있었다.

a "박씨ㆍ김씨 아저씨 모두 안녕하시지요?"

"박씨ㆍ김씨 아저씨 모두 안녕하시지요?" ⓒ 유성호

물난리가 나자 마을 이장인 박재균씨가 주민대책본부장을 맡아 피해상황 집계, 복구, 구호 등을 일사분란하게 챙겼다. 가장 먼저 마을 입구 하추리 식당에 대책본무를 마련하고 주민들을 다독였다. 휘발유와 식수를 사들여 필요로 하는 마을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구호품은 고립지역에 먼저 날라다 줬고 나머지는 피해정도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분배할 계획으로 모아 뒀다. 복구에 있어서 관과 군의 지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들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도 이장 몫이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고 잠도 부족하다. 그러나 그의 어깨에는 200여명의 삶이 놓여 있다. 그래서 한참도 쉴 수가 없다. 대책본부, 읍사무소, 이재민 대피소 등지를 오가며 주민을 다독이고 향후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난다.


조금 높은 지대에 있어서 물난리를 피한 고씨네 민박집 김점순씨. 마을 부녀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이 아니라도 남 돕는 일에는 발 벗고 나선다. 지난 18일 구호활동에서도 왕복 20리 길을 무거운 짐을 이고 서너 번씩 오가며 품앗이를 했다. 또 구호인력에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려고 했지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구호팀의 원칙 때문에 마음만 전하기도 했다.

하추리 식당 아주머니 역시 주민들과 구호요원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값을 깎아주면서 아픔을 치유하는데 마음을 보탰다. 서울 삶을 정리하고 노후를 위해 하추리 계곡에 자리를 잡은 하얀집 민박 아주머니도 팔을 걷어 부치고 구호에 동참했다.

a 하추리 주민들의 얼굴에 '쌍무지개'가 피었으면...

하추리 주민들의 얼굴에 '쌍무지개'가 피었으면... ⓒ 유성호

물적 피해 못지않게 마음의 빚을 진 이들의 손길이 없다면 구호는 지지부진했을 것이다. 악재는 마을공동체의 잠재된 결속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박 이장은 마을주민 100%가 복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감사해했다.

이런 주민들이 또다시 황망하게 집을 떠나 대피를 하다니. 간밤의 비소식이 야속하고 걱정스러워 전전반측했다. 하추리 주민들은 어떨까. 안녕하실까. 과학문명이 발달한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삶의 터전을 찾아 이리저리 부유하는 유민들이 되어버린 그들이 애처롭다.

아침부터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쉽게 닿질 않았다. 이장님, 청년회장님 전화가 모두 통화중이거나 신호음만 가고 받질 않는다. 하추리 깊숙한 곳은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 이유거나 아니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고 민박이며 래프팅을 준비하던 주민들이었는데, 기대가 또다시 빗물에 떠내려 가버렸다. 강원도청이 ‘3-1-2 휴가보내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지 불과 하루 만의 일이다. 3-1-2는 강원도로 휴가를 와서 3일 중에서 하루는 봉사하고 이틀은 휴가를 만끽하자는 캠페인이다.

수해와 더불어 한해 가계수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름 성수기를 시름으로 보내야하는 하추리 주민들과 지역 이재민들. 다시 한 번 안녕하신지 멀리서 안부 전한다. 3-1-2도 좋고 3-2-1도 좋다. 3-3(봉사)이면 더 좋을 것이다. 고달픈 그들을 위해 가족이 모여 계획을 세워봄이 어떨까 싶다.

a "동네 아주머님들 모두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아주머님들 모두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 ☞ [기사공모] "내가 겪은 '물난리'"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 "내가 겪은 '물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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