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50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28 18:01수정 2006.07.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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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 영상을 응시하던 아누는 계속되는 에아의 얘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놀랍게도 가이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도 모르는 일을 어떠한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간 행방불명된 탐사선들이 정보를 전해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 어떤 탐사선도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전해 온 바가 없었습니다.


홀로그램이 잠시 흔들렸지만 에아의 음성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가이다에 불시착한 이후 보더아가 지시한 일은 선장님을 체포 후 동면실에 감금하는 일이었습니다. 환경주의자인 선장님은 탐사선이 가진 진짜 목적을 가리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보더아가 장악한 탐사대가 가진 첫 번째 목적은 우선 가이다에 하쉬행성의 축소된 생태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여기저기에 흩어진 탐사선에게 가이다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모여들게 할 것이고 가이다의 생명체들을 ‘청소’할 것입니다.

홀로그램 영상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말을 마친 아누는 짐리림앞에서 홀로그램 영상을 다시 작동시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짐리림은 영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음성만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보더아가 지금 이 상황을 만들었다고 믿는가? 자네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보더아는 아누 자네보다 한 술 더 뜨던 원칙론적인 환경론자 정치가야. 그런 그가 이런 일을 꾸몄다고 믿는 겐가?


아누는 홀로그램 영상기를 배낭에 집어넣으며 짐리림의 물음에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았다.

-이 일은 오래전부터 계획해온 일이 아니었겠나? 보더아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성이 있었겠지.
-그 홀로그램 영상기 말일세


짐리림은 허공에 손을 내밀며 더듬어 보었다.

-지금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의 음성을 에아로 들리게끔 조작한 것은 아니겠지?

아누는 짐리림의 의심에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야 모르지. 예전의 일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고.

짐리림이 말한 일은 오래전 아누가 하쉬의 위성인 아다이호를 파괴하는 논쟁에 대해 아다이호의 궤적과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조작해 자신의 입장을 유리한 쪽으로 밀고 나갔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

-그건 자네가 잘 못 이해한 것이야. 그리고 자네가 제시한 데이터가 맞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하쉬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 말인가? 모든 상황을 그렇게 밖에는 이해 못 하는 게 환경론자들의 한계지!

-여기서 더 이상 논쟁을 벌일 까닭이 없네. 자네는 다쳤고 나 역시 이제 탐사선에 모습을 나타낼 수 없어. 이제 모든 일은 내 몸 하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네.

아누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누의 호흡기에 매캐하게 느껴지는 가이다의 공기가 가득히 들어왔다.

-가이다의 환경은 가이다의 생물들에게 돌려주어야 해. 그 속에서 우리의 몫을 찾아야 하는 거야.
-자네 얘기대로라면 이제 난 탐사선에 돌아가더라도 별 문제가 없겠군. 보더아가 진실로 추구하는 바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으니 말이야.

-그건 안 되지. 자네는 내가 이렇게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그 사실을 알면 당장 저들이 나를 잡아들이려 할 텐데 어떻게 순순히 탐사선으로 보내겠나. 그게 아니라도 자네 역시 앞을 보지 못하니 내 도움 없이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 아닌가.
-훗...... 결국 그렇군. 그런데 왜 날 살려준 것인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을 텐데?

-그런 저급한 감정은 정상적인 하쉬인이라면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아니야, 이렇게 극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동도 할 수 있지. 자네가 날 도운 것은 사실은 혼자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겠나?

짐리림이 아누의 동의를 구한다는 듯 잠시 말 사이에 뜸을 들였지만 아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짐리림의 말은 계속 되었다.

-이러지 말고 나와 한번 협상을 해보는 것이 어떤가?

아누는 대답대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누운 짐리림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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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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