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든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살려내라!"

[현장] 조합원 2천여명, '뇌사상태' 조합원 쾌유 기원 촛불집회

등록 2006.07.29 11:59수정 2006.07.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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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중근 조합원 쾌유 기원 문화제'가 28일 오후 6시부터 포항 형산강 둔치서 열리고 있다.

'하중근 조합원 쾌유 기원 문화제'가 28일 오후 6시부터 포항 형산강 둔치서 열리고 있다. ⓒ 최찬문

a 촛불 든 2천여명의 포항건설노조원들이 뇌사상태인 하중근씨의 쾌유를 기원했다.

촛불 든 2천여명의 포항건설노조원들이 뇌사상태인 하중근씨의 쾌유를 기원했다. ⓒ 최찬문

"이 촛불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하중근 동지의 쾌유를 빈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중근아! 중근아! 빨리 돌아오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하중근을 살려내라!"

뇌사상태에 놓인 하중근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서 포항건설노조 제관분회 소속 동료인 유영국 조합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절규하듯 외쳤다. 이어 촛불 든 2000여명도 눈시울을 붉히며 "하중근을 살려내라"고 연거푸 '팔뚝질'을 해댔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하중근 조합원 쾌유 기원 문화제'가 28일 오후 6시부터 포항 형산강 둔치서 열렸다. 포항제철소와 강을 사이에 둔 이곳은 18년 역사를 지닌 포항건설노조의 단골 집회 장소다. 그래서일까? 노조원들은 이곳을 '해방광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물놀이로 막을 연 문화제는 갑자기 내린 소낙비 탓에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노래패와 민중가수들의 열창에 힘입은 듯 분위기는 곧 뜨겁게 달아 올랐다.

구속된 이지경 위원장의 메시지가 스피커를 타고 흐렀다. 이 위원장은 "9일간의 포스코 본사 농성투쟁을 피눈물을 삼키며 내려왔지만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건설업계의 불법 다단계 하청은 폐지돼야 하고 임금 삭감 없는 주5일 근무도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위원장 직무대행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당부했다.

a 소낙비가 내린 땅바닥에 앉은 채, 촛불 든 단병호 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

소낙비가 내린 땅바닥에 앉은 채, 촛불 든 단병호 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 ⓒ 최찬문

건설산업노조연맹 남궁현 의장은 "포스코의 불법 대체근로를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이 이렇게 큰 죄가 되느냐"며 "자본으로 언론을 매수하고 공권력을 투입한 이 정권은 포스코 공화국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도 비를 흠뻑 맞은 채 맨 앞자리에 앉았다. 무대에 오른 그는 "여러분의 투쟁은 정당하다"고 강조하면서 "58명 구속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도 불구하고 단결된 모습으로 투쟁하면 승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화제 중간 무렵 구속자 아내가 남편에게 쓴 편지글을 직접 낭독했다. 노조 철근 분회장(김종우)의 아내는 "(경찰서 면회에서) 남편은 걱정하는 나에게 오히려 밥 잘 먹고 있다며 웃는 얼굴로 당당히 맞이했다"며 "자기가 없는 동안 늙은 어머님을 잘 부탁한다"는 말도 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남편은 아침에 10분만 더 잠자고 싶어했으나 남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힘든 생활을 반복했다"며 "비록 월급봉투는 얇았으나 쪼개고 또 쪼개며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a 구속자 부인의 편지글 낭독

구속자 부인의 편지글 낭독 ⓒ 최찬문

그녀는 또 "어제는 딸(하영)의 첫 돌이었는데, 축복받아야 할 날에 남편이 없어 가슴이 너무 아팠다"면서도 "(남편이)'딸에게 좋은 날이 오도록 더 열심히 투쟁하여 빼앗긴 일터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혀,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어 뇌사상태에 놓인 하중근(45) 조합원의 쾌유를 기원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하씨는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가 한창이던 지난 16일 형산로터리 집회 도중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았으나 현재 뇌사상태로 포항 동국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인도주의의사협의회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으로 구성된 '하중근 조합원 사고원인 진상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 발표문이 문화제 참석자들에게 공개됐다.

진상조사단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경찰 방패에 의한 것이란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발표문에는 "7월 16일, 경찰은 아무런 경고 방송 없이 느닷없이 방패를 수평으로 치켜 들고 집회 대오를 공격했다, 집회 대오 오른쪽 앞에 서 있던 하중근 조합원도 방패로 치고 들어오는 경찰에 상체를 맞고 뒤이어 방패의 모서리에 머리 후두부를 찍혀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하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던 이영철(전 노조수석부위원장)씨도 당일 민주노총 포항시협의회 게시판을 통해 "하중근 조합원은 시위대열 선두에서 4번째에 서 있었고 경찰이 치는 순간 선두 쪽 대열에서 약간 옆으로 물러서 인도 블럭 근처에 서 있는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하중근씨는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이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알린 바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중근씨와 같은 분회 소속 동료인 유영국 조합원이 무대에 나와 "경찰은 집회 도중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면서 "가슴속에 하중근 동지는 살아있다, 하중근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a "하중근을 살려내라" 촛불 든 팔뚝질

"하중근을 살려내라" 촛불 든 팔뚝질 ⓒ 최찬문

a 글씨 불꽃 점화. 글씨 아래 강건너 저 편에는 건설 일용자의 일터인 포항제철소가 야경을 뽐내는 듯하다. 이들은 언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날 노사 교섭에서도 쟁점사항에 대한 서로간의 입장 차이로 타협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글씨 불꽃 점화. 글씨 아래 강건너 저 편에는 건설 일용자의 일터인 포항제철소가 야경을 뽐내는 듯하다. 이들은 언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날 노사 교섭에서도 쟁점사항에 대한 서로간의 입장 차이로 타협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 추연만

게다가 하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시가 낭독되고 '06 투쟁승리'란 글씨에 불꽃이 점화되자, 문화제는 숙연함과 더불어 극적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모습이었다.

다음은 민주노총 포항시협의회 황옥주 수석부의장이 읽은 '일어나라 동지여'란 시.

일어나라 동지여
무심코 눈 뜨던 여느 아침처럼
천연스럽게 눈뜨고
걸어 나오라
여기, 땀에 절고 눈물에 절고 분노에 저는
그러나 그 모든 것 대신 촛불 한 개
오직 그 뿐인 당신의 오랜 동지들 곁으로
어서 오라, 당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나오라.

동지여 하중근 동지여!
억울하고 원통해서
차라리 침묵하는 당신의 뇌수를 깨우라
오랜 노동으로 솟아난 근육
그 힘찬 심장 더불어
여기 모인 동지들의 뜨거운 눈물 더불어
이제 그만 깨어나라.

당신을 밟고 부숴버린 더러운 것들이
흘러내린 그대의 뇌수에 차라리
소금을 뿌리고
누운 그대의 목숨을 모욕하는데
동지여, 일어나 말하라
벌떡 일어나 증언하라
만신창이 인생길, 이렇게 마치지 마라

지금은 비록 절룩거리는
남루한 우리들이지만,
잊지 마라 동지여
우리 걸었던 어깨의 그 뜨거움
사람답게 살아보자 외치던 그 열정
끝내 지켜낼 약속인 것
그대 다시 눈뜨고 함께 걸어가자.
어제는 비 오고 오늘은 해뜨고
그런 인생길에
당신 홀로 눈 감지 마라

일어나라 동지여
상처를 딛고, 모욕을 넘어
우리 함께 당당히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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