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근성만으론 부족하다?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에서 만난 김성모 만화의 비밀

등록 2006.07.31 09:39수정 2006.07.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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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키

김성모 만화를 만나게 된 건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였다. 지방 출방을 갔다가 약속 시간이 늦춰져 방황하다가 옛날식 만화방을 발견하고 '옳다구나'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인아저씨의 강력 추천으로 김성모 만화를 펼쳐 들었는데 그림체도 거칠고 스토리들도 비슷비슷했지만, 이상하게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느끼면서 내리 3시간을 김성모 만화만 봤다.

서울로 돌아와 김성모 만화를 마저 보기 시작했는데 자기 자신도 몇 편을 그렸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책을 쏟아내고 있는 작가였다. 특히 <태극기 펄럭이며>같은 만화 앞에선 김성모식 표현대로 '대략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이미 곳곳에 김성모 만화 폐인들이 암약하고 있었고 김성모 만화 특유의 대사들은 어록을 이루며 이른바 '근성체'로 통하고 있었다.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는 출판사 부키에서 펴내고 있는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중 하나다. 그동안 기자, 수의사, 디자이너,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다뤄왔다. 이 시리즈는 그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밀착 취재해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가를 일러주고 있다. 꼭 그 직업을 가질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분야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생생한 기회를 주는 것은 덤이다.

책은 한마디로 알차다. 전통적인 만화가들부터 인터넷 만화가나 학습만화 전문가들까지 다양한 흐름을 살펴보고 있다. 스토리 작가나 만화 편집자 등 관련 직종도 다뤘고 인터넷 시대를 맞아 뉴미디어와 만화는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 해외 진출은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가 같은 최신 주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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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구역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에서는 김성모를 '성인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 다루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그쪽으로 건너뛰었다. 김성모 만화는 과거 대본소 시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공장식 만화의 마지막 계승자라 할 것이다. 마치 충무로 시스템의 마지막 계승자인 강우석 감독을 연상시키는데. 주로 도서 대여점을 목표로 수십 권을 동시에 쏟아내는 생산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되풀이 되고 흔히 '그리는 게 아니라 도장으로 찍는다'는 농담을 듣는 것처럼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만화 산업에 대한 요란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만화계는 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은 일본 만화가 지배하고 있고 대여점이 만화를 죽인다고 비판했지만 그나마 그 대여점들마저 무너져 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잡지 시장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고 몇몇 작가들이 해외 진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말 그대로 '몇몇' 작가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가 김성모가 택한 길은 '선택과 집중'이다. 그는 '성인만화'라는 장르를 골라 주로 조직이나 범죄관련 내용들을 주된 내용으로 잡아 파고들었다. 한 권 한 권 공들여 그리는 다른 만화들에 비하면 확실히 김성모 만화 한 권의 함량은 떨어진다, 하지만 애초에 그가 그리는 만화들은 DVD로 소장하는 감동의 명화가 아니라 바로 그날 선택되어 소비될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에로 비디오에 가깝다고 할 것이니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장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무너지고 문화 산업도 따라 무너지는 세상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덕이다. 김성모 본인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밀착 취재를 통해 리얼리티를 높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만화들을 '르뽀 만화'라 설명하고 직접 조직들을 만나고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조직들이 술 마실 때 자리 배치는 어떻게 하는지, 털이범들은 몇 대 몇으로 나누는지를 취재했기에 자기 만화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a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어 김성모의 대표작이 된 <대털>. <쉬리>의 포스터를 모방한 표지처럼 그의 만화를 키치로 이해하는 김성모 폐인들도 있다.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어 김성모의 대표작이 된 <대털>. <쉬리>의 포스터를 모방한 표지처럼 그의 만화를 키치로 이해하는 김성모 폐인들도 있다. ⓒ 대명종·강재규필름

김성모 만화들은 남자 어른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만화지만 내 자식이 본다면 당장 말려야 할 그런 만화다. 선택과 집중을 이루고 시장에 맞는 생산 방식을 구축한 것이나 밀착 취재와 독자 취향을 고려해서 '재미있는 만화'를 추구하는 것은 주목할 일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만화를 그려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김성모 만화가 시장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김성모 방식이 아닌 다른 대안으로도 내수 시장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수출도 하는 다른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있다.


김성모 만화가 언제까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 만화 시장은 어느 정도에서 바닥을 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만화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이 길을 가라고 권할 수 있을까?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에서 김성모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만화가도 변화의 흐름을 타야한다. 그러나 외적인 변화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 만화가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나예리 외 지음,
부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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