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홍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한미FTA 반대 여론은 갈 수록 늘어가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압도적인 국민여론의 변화 추이를 정부는 여론의 왜곡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놀라운 화술을 빌리자면 여론의 왜곡된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범국본을 포함한 한미FTA 저지운동 진영은 국민 반대 여론의 70% 이상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를테면 '한미FTA 바로 알기 시민학교' 운영 등 배전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민여론의 70%가 반대해도 정부가 협정 체결을 강행할 것임이 현재로서는 명백하다. 그 대표적 징후를 노 대통령의 '4대 선결조건을 미국에게 내주었다'가 아니라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을 수용하겠다"는 언어 마술로부터 읽어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한국 경제에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단지 '표현'의 문제로 슬쩍 바꿔치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쇠고기·스크린쿼터·약값·자동차배기량'으로 요약되는 4대 선결조건 수용은 사실상 협상의 절반 이상을 끝내고 들어 간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어떤 굴욕적 협상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아니 정확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각서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한미FTA 협상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할 것인가는 고사하고 한미FTA 그 자체가 현 정권의 목표가 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위 여론조사에서 자그만치 74.9%가 '정부가 협상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끝으로 신문기사들이 한결 같이 내 글의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고 있기에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명백히 그 글에서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리고 같은 글에서 명백히 적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공화국으로 이해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적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영어 표기 또한 'Republic of Korea'가 아닌가?
모 신문의 수준 낮은 사설은 단지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친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촌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대단히 불순한 의도다. 필자는 북한의 주장 내지 그러한 체제에 비판적이며 북한을 공화국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공화국'에 색깔론 들먹이는 보수신문들
요컨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필자는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를 공화국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역사로 이해한다. 이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대로 3·1운동, 임시정부, 4·19 시민혁명을 승인하는 것이며, 여기에 5·18 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세계사에 유래 없는 민주주의의 보고로 간주하고 있는 필자의 정치적 관점에서 연유한다.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북한보다 더 북한적인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한미FTA를 찬성하면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다는 단순논법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대단히 창피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논쟁이 없다. 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사실 개념계보학적 입장에서도 우파 담론이지 좌파 담론이 아니다. 일례로 프랑스의 집권 우익정당이 공화국 연합이 아닌가?
이는 다른 말로 '공화국=민족주권'으로 등치되는 정치적 문제 설정이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서 정치적 우파의 관심사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반증하는 셈이다. 이러한 정황을 잘 알기에 필자는 '공화국'이 아니라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이론적 장치를 차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는 정말이지 약간의 개념 있는 우익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논란을 통해 스스로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진정 반성해야 할 집단이 누구인지는 명백해졌다.
바라건대 한미FTA 논란을 기화로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현실과 또 무엇보다 한국 헌법의 정치학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하고 진지한 학문적 논쟁이 있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이지 색깔론은 정말 아니다. 보수신문들이 국민보고서에서 단 세편의 글을 읽고 행간에 담겨진 수많은 내용은 망각한 채 '공화국'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을 놓고 '친북반미'라고 아우성 칠 일이 아니다.
보수신문들이 아우성 칠 때 필자는 그러한 개념을 쓰기 위해 구한말의 <독립신문>을 포함한 수백 권의 책을 일독했다. 정중히 부탁하건대 제발 선수들이 나와 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최형익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 부단장,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교수학술공대위 정책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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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유감, <한미FTA 국민보고서> 색깔 논쟁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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