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도 공기도 좋은데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파르티잔의 지리산 도보여행 4] 상죽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등록 2006.08.03 12:14수정 2006.08.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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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죽마을 첫 집,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
상죽마을 첫 집,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조태용

여수에서 이사와 상죽마을에서 15년을 살았다는 심두영할머니
여수에서 이사와 상죽마을에서 15년을 살았다는 심두영할머니조태용
윗대내를 겨우 넘어서 밤나무 밭을 지나 대나무 숲을 헤치고 나오니 드디어 상죽마을 첫 집이 눈에 들어온다. 겉에서 보기에도 전망 좋은 곳에 지어진 집으로 봐서 이 마을 원주민이기보다는 외지 사람인 듯 싶었다.


"아니 왜 거기서 나와 거기 길도 없는데…."

산길을 뚫고 나오는 나에게 말은 건 것은 그 집주인 심두영(75) 할머니였다. 심 할머니는 15년 전에 여수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자리를 잡고 사신다고 하신다. "시원한 냉수라도 먹고 가요" 하면서 냉수 한 사발을 권한다.

"할머니 여기 사시니까 좋아요?"
"경치 좋고 공기 좋아서 좋은데 차비가 비싸."

문수골은 버스가 들어오지 않고 가게가 없어서 1000원 짜리 물건을 하나 사려고 해도 택시비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인 토지면 오미리도 하루에 들어오는 버스가 딱 3대라고 하니 차가 없는 사람은 살기 불편하단다. 하지만 마을에는 대부분 돈 있는 사람들이 큰집을 짓고 잘 살고 있다며 이 마을에는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둘러보니 할머니 말씀처럼 동네에는 산골에 어울리지 않은 큰집들이 여러 채 있었다.

이 동네에 원주민이 살았던 것 같은 소박한 스레트 지붕을 올린 집도 보긴 했지만 그 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스산해 보였다. 마을에서 도로까지는 고작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문수골에는 상죽마을 위쪽에는 영암촌이라고 불리는 중대 마을이 있고, 그 위쪽으로도 밤재마을이 있다. 또한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곰을 키우는 문수사가 있다. 하지만 문수사까지 들어갔다 오려면 한참을 가야 한다.

문수골로 흐르는 계곡이름은 문수골 골짜기가 아니라 덕은내라고 되어 있다.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계곡도 계곡이름은 피아골 계곡이 아니라 연곡천이다.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과 행정관청에서 정해준 이름에는 이처럼 차이가 있다. 흔하게 밤다리라는 마을은 율교가 되고, 상죽마을 건너편 영암촌이 중대가 된 것도 그런 이유다.


덕은내를 건너기 위해서는 영암촌까지 올라가서 다리를 건너가는 방법이 있고, 밑으로 내려와서 문수재를 넘어 가는 방법이 있다. 산 속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해 문수재 저수지를 넘는다.

오미리에서만 평생을 사셨다는 정병열 할아버지(78)
오미리에서만 평생을 사셨다는 정병열 할아버지(78)조태용
길을 내려가는 도중 밤나무 밭에서 일하고 내려오시는 장병열(78)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이곳에서 사신 토박이다. 젖을 때로 젖은 신발에 온몸에 가시투성이다 보니 행색이 처량해 보였는지 어디 산을 헤매다가 내려왔냐고 하신다.

윗등재를 너머 상죽마을로 가다가 그렇게 됐다고 하니, 요즘에 그 길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힘들 것이라고 한다. 또 예전에는 그 길로 구례군 마산면에 살던 사람들이 문수골 동산이라는 산에서 나무를 해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거기로 모두 지게 지고 다녔지만 지금은 없어. 누가 나무를 때야지 그런 산에 잘못 들어가면 큰일 나 조심해."

할아버지는 하죽마을로 내려가고 저수지를 둑을 건너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가 왕시루봉의 끝 능선이다. 다시 잘 포장된 임도가 나온다. 험한 산길을 걸어서일까? 포장된 임도를 걷는 것이 편안하고 좋다.

문수재를 너머 임도 가는 길목에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가 거처하고 있다. 그도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에서 살고 있다.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옮겨본다.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시인은 도시의 삶을 견디지 못해 지리산으로 온 모양이다. 임도에 접어드니 할머니와 며느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산중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길로 가면 파도리가 나오냐"고 물었더니 "큰길로 내려가다가 집이 보이면 그 길로 내려가라"고 하신다.

문수재 뚝방길을 건너면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가 살고 있다.
문수재 뚝방길을 건너면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가 살고 있다.조태용
할머니와 헤어져 고갯길을 넘어가니 산신당이 나온다. 산신당 주차장이라는 푯말을 따라 산신당에 내려가 보니 작은 산신당이 있고, 4명쯤 되는 젊은 사람들이 산을 일구고 있다. 그 집에 잠시 기도하러온 사람들인데 산에 채소라도 키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산신당을 40년째 지키고 있다는 할머니에게 "지리산 자락에는 이런 산신당이 몇 개가 있냐"고 했더니 "모르긴 몰라도 꽤 많을 것"이라고만 대답해준다. 이 산신당에는 무속인과 병든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간다고 한다.

산신당을 빠져 나오는데 좀 전에 며느리와 함께 가던 할머니가 산신당으로 들어온다. 산신당 할머니는 그 할머니에게 문 밖에 내어놓은 사탕이랑 먹을 것을 가져가라고 소리친다. 산신당 입구에 보니 사탕 몇 봉지가 검은 봉투에 담겨 있다.

지리산 길마다 항상 이야기가 넘쳐난다. 단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토지면 파도리에 도착했다.

덧붙이는 글 | 친환경 우리 농산물 직거래 센타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리니다. 

지리산 도보여행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www.farmmate.com에 커뮤니티에 질문하셔도 됩니다.

덧붙이는 글 친환경 우리 농산물 직거래 센타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리니다. 

지리산 도보여행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www.farmmate.com에 커뮤니티에 질문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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