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죽음, 순직소방관 위령탑을

파리 소방청의 석조 위령비

등록 2006.08.03 14:22수정 2006.08.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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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한 상가건물의 화재를 진화하던 소방관 4명이 변압기의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이외에도 소방관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은 경우는 태반이다.

지난 1999년 5월25일 새벽 2시께 여수시 교동 400번지 중앙시장 화재현장에서 서형진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 현장에 선착대로 투입된 그는 3층 유리창의 방범용 쇠창살을 도끼로 찍어내고 창틀에 매달려있던 16명을 굴절사다리로 내려 보내고 자신은 유독가스에 의해 숨졌다.

그는 보증금 1800만 원짜리 전세아파트에 당시 26세의 젊은 아내, 젖먹이 아들, 노부모를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의로운 죽음의 서 소방관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잊혀져버린 사람이 된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소방관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의사, 간호사, 소방관을 꼽는다. 살아서는 존경을 받고 죽어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소방관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곧 잊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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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소방청 전경 ⓒ 이상율

2년 전 파리의 소방청을 찾은 일이 있다. 위기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들의 활동상과 파리의 재난 구조 체계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파리소방대는 1811년 나폴레옹 1세의 지시로 전문소방관과 군인으로 혼성된 군대조직으로 편성되어 파리시 전역과 인근 3개시를 관할하고 있다. 파리소방대는 7천명의 인력이 81개의 소방서 또는 파출소에 배치되어 화재 및 구조구급업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거의 모든 대원들이 연간 100시간 이상의 구급교육을 통하여 의료 서비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소방구급서비스는 18번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되며 신고접수와 함께 상황에 따라 구조대와 구급대가 출동하게 된다. 프랑스의 소방구급차는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전문 구급차를 배치해 두고 있으며 구급차는 화재출동과 동시에 출동하여 화재 진압 시 활용하는 구급차와 응급환자 신고 시 활용하는 2종류의 구급차가 있다.

응급환자 신고 시에는 구급요원 3명과 의사 1명이 탑승하여 이송도중 구급차 내에서 응급처치를 시행하면서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한다. 파리시 소방여단 사령부의 경우 종합상황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종합상황실내에 코디네이터(統制醫師) 2인을 배치하여 구급차 출동과 사고현장에서의 상황보고에 따라 적절한 병원을 지정해 준다. 테러로 인한 재난은 1차적인 담당은 경찰이다. 경찰이 판단하여 군 동원 또는 소방서의 출동이 필요 할 때 요청하면 이에 응하고 있다.

파리 소방청 안 광장에는 희생소방관의 게시판형 석조위령비가 있었다. 1827년 ‘보나드’ 등 지금까지 희생된 280여명의 영웅들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있어 후배 소방관들에게 귀감은 물론 자긍심을 갖도록 했다. 이 같은 위령탑은 소방청 마다 마련돼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에미츠버그의 전국소방학교 캠퍼스에는 1981년 건설된 뒤 90년 국립기념관으로 격상된 전국순직소방관기념관이 있다. 소방관들의 상징인 청동 ‘몰타 십자가’와 꺼지지 않는 불꽃, 그리고 순직 소방관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매년 수천 명이 이곳을 찾아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유가족에겐 삶의 보장과 자긍심을 심어준다. 소방 유가족 네트워크를 운영, 외상증후군 등 정신적인 상처 극복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신축건물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잔불 확인 작업을 하던 중 순직한 허재경(43) 소방관.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중 반대편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사고를 당해 숨진 오종수(37) 소방관. 소방방재청은 이들을 일계급 특진시키고 국립묘지에 안장 했다. 남을 위해 살다 간 허재경, 오종수 소방관. 두 의인의 이름이 시민들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장마전선이 우리나라를 온통 휩쓸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지만 소방관들의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화재만 진압하던 소방관이 구조 활동을 병행하면서 그 만큼 위험에 노출되고는 있지만 소방관에 의한 처우나 사회적 관심은 매우 열악하다. 약 180년 전부터 세워진 파리 소방청 뒤뜰의 게시판형 석조위령비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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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형 석조 위령비. 소방 영웅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 이상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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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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