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싫어하는 건 하지 말란 얘기냐"

고이즈미 일본 총리, 8·15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할 듯

등록 2006.08.03 11:53수정 2006.08.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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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 2004년 10월 17일 도쿄에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 2004년 10월 17일 도쿄에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REUTERS/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올해는 아무래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것 같다.

고이즈미 총리는 3일 발송된 <고이즈미 내각 메일매거진>에 기고한 '전몰자와 위령'이란 글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일본 매스컴과 지식인들, 중국 등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참배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했다.

그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한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쇼와(昭和.1901~1989) 천황의 육성이 담긴 메모가 지난달 공개된 이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이에 쐐기를 박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면서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국내외 반대 여론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취하기 위해 매년 8월 15일은 피해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어 외교적 부담이 덜한데다, '약속을 지킨 총리'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욕망에 8월 15일 참배를 강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날 발송된 메일매거진은 이를 위한 정치작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대는 중국 싫어하는 일 하지 말라는 것"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을 한마디로 "중국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단순논리로 몰아붙였다. 양심과 평화사상에 입각한 일본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대 의견을 일방적으로 '대중국 추종주의'로 매도해 버림으로써 교묘하게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아래 요약문 참조)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사상 및 양심의 자유'라는 새로운 논거를 끌어온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전제하고, 헌법에 규정된 '사상 및 양심의 자유'에 입각해서 "어떤 형태로 추도의 뜻을 표시하는가는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내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비판하면서 나라간에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비판을 받아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스쿠니신사를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모두 무시하고 단지 '나라간 생각이 다른 것'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쇼와 천황 육성메모의 파장

"어느 때 A급전범이 합사되고, 게다가 마쓰오카(松岡), 시라토리(白取)까지… 그래서 나는 그 이후 참배하지 않았다. 그게 내 마음이다."

쇼와 천황이 1978년 이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이유가 A급 전범 합사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었음을 보여주는 1988년 당시 쇼와 천황의 육성을 담은 궁내청 장관의 메모가 지난달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해 공개됐다. 이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를 둘러싼 일본 내 여론은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참배반대 여론이 급등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공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반대가 54%로 찬성(33%)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1월 같은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동일한 47%로 의견이 갈렸었다.

그러나 우익진영의 반격도 필사적이다. <산케이신문>과 우익계열의 잡지들은 연일 논객들을 지면에 등장시켜 메모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론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메모 내용이 평소 쇼와 천황이 한 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 ▲메모 작성이나 공개 과정에서 조작이 있을 수 있다 ▲노쇠한 쇼와 천황의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다 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논거로 들이대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천황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궁내청 장관의 메모인 만큼 사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고이즈미 총리는 이 메모에 대한 코멘트을 요구받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마음의 문제이며 누구라도 자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자신의 참배는 천황의 뜻과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일본 중견언론인은 "총리가 천황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게 왜 하필 국가신도를 신봉하는 일에만 적용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야스쿠니신사는 '천황을 위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예외 없이 합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천황은 A급 전범들의 합사를 불쾌하게 생각했고, 총리는 그런 천황의 생각과 자신의 참배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8월15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면 한·중 등 이웃나라들과의 마찰보다도 먼저 이런 국내적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다음달로 예정된 자민당의 차기 총재선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이즈미 총리 기고문 '전몰자와 위령' 요약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일본 헌법 29조에는 '사상 및 양심의 자유는 침해돼선 안된다'라고 돼있습니다.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 추도의 뜻을 표시하는가는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총리대신 취임 이래 부득이하게 전쟁으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분들을 애도하기 위해 매년 한번씩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생각에 따른 것으로, 나는 누구에게도 야스쿠니 참배를 강요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강요해서 참배할 일도 아닙니다.

매스컴과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일부 국가가 나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비판하는 매스컴과 지식인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중국이 반대하고 있으니까 야스쿠니 참배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 중국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매스컴과 지식인들은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전몰자에 대해서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나는 일·중 우호론자입니다. 내가 총리대신에 취임한 이래 일본과 중국의 무역액은 2배 이상 증가하고, 이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에 있어서 최대의 무역상대국이 되었습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사람의 왕래는 약 1.5배 늘었습니다.

나는 언제든 중국의 정상과 만날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2005년 4월 인도네시아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회담을 마지막으로 내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면 일·중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어떤 나라와 생각이 달라서, 혹은 일본의 생각과 다르니까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상대를 비판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를 비판하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나라의 국민은 나를 비판하겠죠.

두 번 다시 비참한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들의 귀중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생각은 정치가로서 나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생각을 간직하면서 올해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그리고 8월 15일에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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