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토굴에 앉아 먹는 그 옛날 고향의 맛

<음식사냥 맛사냥 81> 시원하게 아삭아삭 씹히는 깊은 맛 '토굴김치'

등록 2006.08.03 15:30수정 2006.08.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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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토굴에서 숙성되고 있는 김치 ⓒ 이종찬

덥다. 정말 짜증나도록 무덥다. 징그럽도록 긴 장마가 드디어 끝이 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찜통더위가 몰려와 이 세상을 푹푹 찐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절로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이들이 냉장고 문을 자주 열어서 그런지 냉장고 안에 넣어둔 음식도 어쩐지 그리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찬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입맛조차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끼니를 거를 수도 없다. 찬 물에 밥을 말아서 김치를 척척 걸쳐 한 끼 떼우려 해도 김치맛도 예전과 같지 않다. 이럴 땐 어릴 때 어머니께서 뒷뜰에 파묻은 장독대에서 꺼내주시던 그 감칠맛 나는 묵은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런 김치는 없을까. 시원하게 아삭아삭 씹히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묵은지, 어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밴 그런 김치를 파는 곳. 김치찌개에 넣어도 제 맛이 나고, 삼겹살과 함께 구우면 감칠맛이 나는 그런 김치. 있다. 경기도 오산에 가면 무더위도 한꺼번에 날리고, 그 옛날 김치의 맛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그런 김치토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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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부선 터널을 이용, 김치를 숙성시키고 있는 경기도 오산의 토굴김치 들머리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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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 속에는 20톤의 김치가 익어가고 있다 ⓒ 이종찬


"옛날 시골에서 먹던 제대로 된 그런 김치맛을 보고 싶은 분들은 모두 저희 김치토굴로 오시라고 해요. 저희 김치토굴에 오시면 무더위도 피할 수가 있고, 토굴에서 숙성킨 고향의 맛이 나는 김치는 물론 김치의 숙성과정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피서지가 따로 없지요."

요즈음 들어 옛 철로가 지나다니던 버려진 터널이나 인공토굴을 만들어 버섯을 키우거나 김치, 젓갈 등을 숙성시키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의 옛맛을 찾아내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 인암유통(대표 홍두선·51)은 몇 해 전부터 옛 경부선 철로가 지나다니던 버려진 터널을 이용, 김치가 익어도 물러터지거나 국물이 많이 생기지 않으면서도 시원하게 아삭아삭 씹히는 '토굴김치' 만들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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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골의 맛이 배인 토굴김치가 소비자에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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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씹히는 시원한 감찰맛 ⓒ 이종찬

옛 경부선 터널 길이 240m 중 50m를 가로막아 숙성시키고 있는 이곳 토굴김치는 터널 바닥에 황토와 숯을 깐 뒤 늘 영상1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김치를 숙성시키고 있다. 한번에 20톤 가량의 김치를 숙성시키고 있는 이곳은 생김치를 15일 동안 숙성시켜 소비자들에게 내놓는다.

홍두선 대표는 보름 동안 숙성시킨 반쯤 익힌 김치를 소비자들에게 내놓는 이유에 대해 "토굴에서 김치를 너무 익혀버리면 유통과정에서 다시 김치가 숙성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김치가 물러터지거나 김칫국물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토굴에서 반쯤 익힌 김치를 냉장고에서 완전히 익혀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고 귀띔한다.

홍 대표는 "터널 바닥에 황토와 숯을 깔았기 때문에 늘 터널 안은 영상1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터널에서 숙성시킨 김치가 일반 냉장김치와 다른 점은 옛날 시골김치 맛이 나면서도 사시사철 그 맛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되뇐다.

강원도 고냉지에서 재배하는 배추를 재료로 사용하는 이곳 김치의 특징은 서해안의 천일염을 이용해 배추를 절인 뒤 이 토굴에서 숙성시킨 저염도 젓갈에 여러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다는 점. 또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기 위해 멸치액젓, 새우액젓 등으로 담근 여러 가지 김치를 만든다. 묵은지는 1년 동안 숙성시킨 뒤 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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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 끝난 토굴김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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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김치를 닮은 사내 홍두선 대표 ⓒ 이종찬

홍 대표는 "토굴김치를 한번 맛 본 사람은 보통 1~2박스(10kg 1박스-배추7쪽·2만원)씩 주문한다"며, "요즈음 같이 무더울 때에는 전화로 주문만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오면 무더위도 쫓고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 토굴김치를 토굴 안에서 직접 먹어본 윤재걸(60·언론인) 시인은 "참 맛이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담백하다"며, "시원한 토굴에 앉아 막걸리 한 잔에 그 옛날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드신 그 감칠맛 나는 김치의 맛을 느끼고 있자니 세상만사 시름이 한꺼번에 사라진다"고 말했다.

뜨거운 뙤약볕을 피해 시원한 토굴 속에 앉아 막걸리 한 잔 곁들여가며 먹는 우리 김치의 매콤한 맛. 그 옛날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밴 우리 김치의 기막힌 감칠맛. 그대로 손으로 쭉쭉 찢어 쌀밥 위에 척척 걸쳐 먹고 싶은 묵은지의 깊은 맛. 오산의 컴컴한 토굴에서 익어가고 있는 토굴김치는 바로 그런 고향의 맛이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오산나들목(수원쪽)-세마대 사거리-예비군교육장쪽-인암유통 토굴김치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오산나들목(수원쪽)-세마대 사거리-예비군교육장쪽-인암유통 토굴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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