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탄생한 전자밥통!!주경심
"이것이 아무래도 지 밥벌이를 못 헐랑가보다!! 쯧쯧 아까버서 갖다 버릴 수도 없고…."
"뭔데요?"
"이 놈!"
친정엄마의 혀끝에서 몇 번이나 아쉬움을 토로하게 했던 그 물건은 바로 '전기밥통'이었습니다.
"왜요?"
"갈 데가 됐는가, 밥을 앉히 놔도 김을 푹푹 뱉어 불기만 허지 밥이 되아야 말이지! 날도 뜨거분디 해필이믄 시방 고장이 나 갖고는 사람을 이리 쌩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겄다."
가스레인지 위에 밥을 올려놓으신 채로 도통 전기밥통이 고장난 원인을 모르겠다는 듯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전기밥통에 대한 미련이 영 가시지를 않는지, 투정이 난 아이처럼 몇 번이고 밥통을 저만치 밀었다가는 도로 당겨서는 이리저리 뒤집어서 살펴보기를 반복하셨습니다.
"서비스 받으면 되잖아요!"
"무신 서비스?"
"밥통에 있는 서비스 전화번호 있잖아요. 거기 전화해서 서비스 해달라고 하면 와서 해주잖아요!"
"아이고 말 말어라, 전 번에 냉장고가 비실비실 허니 시원한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전화를 했드만은 사람이 고치러 왔는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드라. 고치는 돈은 이만원인디 출장비가 이만오천원이라는디…. 나가 맥없는 짓을 했는갑다 싶드라. 십년 넘게 쓴 냉장고가 갈 데가 돼서 간 거를 억지로 살릴라고 드니께 애먼 돈만 더 들어가는 것이…. 그려서 다시는 서비스 안 받기로 했다. 앗싸리 새것으로 사부리고 말지…."
하기는 섬이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내 고향에서는 직접 고쳐서 쓸 수 없는 농기구나 그물 등을 제외하고는 '서비스'라는 말이 쓰일 곳이 없었습니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수비리 외에 출장비를 따로 지불해야 하는데, 섬이라는 특성상 기본 출장비 외에도 배 삯이며, 섬마을 택시비까지 듭니다. 추가 비용은 서비스를 신청한 쪽에서 다 부담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엄마 말처럼 비싼 출장비에 수리비까지 부담을 하느니, 차라리 새 상품을 사고 말겠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새 상품을 사는 과정 역시 서비스를 받는 것만큼이나 만만찮은 과정입니다. 육지로 직접 나가서 물건을 구입하고, 배 삯을 따로 지불하고, 설치 또한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 하거든요.
요즘엔 단위농협에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주문배달형식으로 필요한 가전 제품을 공급한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의 서비스만큼은 어쩔 수 없는 불편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정엄마는 냉장고는 물론이고 텔레비전 리모컨까지 서비스를 받는 딸이 부러움을 넘어 무슨 특혜라도 받는 줄 알고 계십니다.
"엄마 그럼 밥통 버릴 거예요?"
"아까버도 밸 수 있냐? 밥벌이도 못 허는 걸 집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인께…. 버리야지…."
전기밥통이 없어서 겨울에 식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면, 가끔은 나도 불을 끌 필요도 없이 알아서 김까지 빼주고, 사시사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신 밥을 제공하는 전기밥통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몇 번을 사볼까 생각했지만, 엄마처럼 밭으로 바다로 뛰어 다니느라 뜸들일 새도 없는, 모래알 같은 밥알을 씹을 만큼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지 않기에 굳이 사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여름이면 좁은 집안이 밥하는 열기로 푹푹 찌는 열기에서 하루라도 해방되고픈 욕심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 밥통 내가 가져가도 돼요?"
"다 고장난 거를 뭣허게."
"가져가서 고쳐보게요. 비싸면 안 고치고 버리면 되지."
딸이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 엄마는 애먼 손톱달만 만지작거립니다. 부모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결혼 당시 혼수랍시고 수저 한 벌도 해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여기저기 잔칫집이며, 개업식에 다니시며 모아놓으신 예닐곱 장의 수건이 혼수의 전부였죠. 그래선지 엄마는 그렇게 하지 마시라 해도 언제나 제 앞에서는 스스로 죄인이 되셨습니다.
"아니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직 멀쩡한데 버리기는 아깝잖아요!"
"그려?"
"진짜야. 필요했으면 내가 진즉에 샀지. 진짜로 버리기 아까워서 그래요."
"그러믄 가져가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