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아빠' '개엄마'가 많은 미국

개똥 치우는 에티켓은 기본... 견공들의 나라

등록 2006.08.08 14:47수정 2006.08.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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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외면하는 말리와 '개 할머니' 팻
카메라를 외면하는 말리와 '개 할머니' 팻한나영
소설가 김형경이 쓴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 풍경>의 '분리' 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저마다 자의적인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 동년배의 한 평론가가 "나의 이분법은 인간을 댄서와 화가로 나눈다"고 쓴 글을 본 일이 있다. 그의 친구 한 사람은 인간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나눈다고 했다. 나의 친구 한 사람은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세상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밤바다를 지켜보면서 울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듯 자의적인 기준의 이분법으로 미국 사람을 나눠본다면 미국은 '개 있는 사람'과 '개 없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미국에서 개의 위치는 사람을 분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일 아침 우리집 앞에서 나는 '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의 이름은 팻. 패션모델같이 곱게 단장한 할머니는 오전 7시경이면 그의 친구 '말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다.

팻의 산책은 아침 뿐만이 아니다. 저녁 해질 무렵에도 팻과 말리의 아름다운 동행은 계속된다. 언젠가 팻을 만나 '개 산책'에 대해 물어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차례씩 말리를 데리고 나온다고 했다.

이렇게 날마다 지극 정성으로 개 산책을 하는 팻에 대해 나는 언젠가 때가 되면 팻과 말리의 산책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다. 그래서 팻을 만나면 말리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 팻은 자신과 말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나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중인 팻을 만나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말리였다. 카메라를 내밀고 '원, 투, 쓰리'를 외쳐 보았지만 말리는 내 카메라를 완전히 외면했다. 팻의 이야기로는 말리가 너무 수줍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를 돌리고 딴전을 피우는 말리. 그의 얼굴을 카메라쪽으로 돌리기 위해 나는 말리 발 앞에 앉아 말리의 등을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하지만 말리는 여전히 나를 외면했다. 그러자 팻이 말리에게 사정하듯 이렇게 말했다.


"말리, 네가 예쁘다고 지금 쓰다듬어 주는 거야. 아줌마 얼굴을 한 번 봐. 고개를 돌려보라고."

남이 들으면 마치 자식에게 말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였다. 사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기는 커녕 오히려 겁을 내고 무서워하는 편이다. 그러니 말리의 등을 쓰다듬어준 건 나로서는 큰맘 먹고 선심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매정한(?) 말리는 끝내 내 카메라를 외면했다.

이렇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은 팻만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는 몸집이 호랑이만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아저씨도 있고, 인형같이 생긴 작은 개와 걸음을 맞춰 나란히 걷는 아가씨도 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개가 동물이기보다는 살가운 가족으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미국인들이 개를 얼마나 끔찍히 여기는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가족 나들이에 어김없이 따라온 또 다른 가족. 이들이 바로 대접받는 견공들이다.

미국 독립기념일, 야외콘서트에 나온 견공들
미국 독립기념일, 야외콘서트에 나온 견공들한나영
개도 우리 가족! 식구들 나들이에도 빠지지 않는다.
개도 우리 가족! 식구들 나들이에도 빠지지 않는다.한나영
루레이동굴 앞에서 만난 가족들
루레이동굴 앞에서 만난 가족들한나영
이들은 제 주인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옷 입은 때깔도 제각각이다. 이들은 주인 곁에 앉아 교태(?)를 부리기도 하고 이것저것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개팔자가 상팔자'인 모습으로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이런 견공들의 모습도 자세히 살피고 분석해 보면 흥미롭다. 개의 종류나 몸짓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말이다. 하지만 개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두루뭉실 '개'라는 이름으로만 해석할 뿐이다.

그런데 '개 엄마''개 아빠'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아기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서로의 아기를 이리저리 봐가며 개월 수를 묻기도 하고, 아기의 동작에 대해 하나하나 궁금해 하는 것처럼 이들 역시 '자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한 애완견 매장이 미국에는 널려 있다. 그리고 그 규모도 엄청나다. 대형 매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애완동물 코너'가 있고 많은 애완동물 애호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돈을 쓴다. 뿐만 아니라 집 우편함에도 애완동물 광고전단이 심심찮게 배달되기도 한다.

대형할인매장의 애완동물 코너와 집으로 배달된 애완견 메일 광고
대형할인매장의 애완동물 코너와 집으로 배달된 애완견 메일 광고한나영
아예 독립된 건물로 되어 있는 애완동물 전용몰인 PETCO
아예 독립된 건물로 되어 있는 애완동물 전용몰인 PETCO한나영
개가 먹는 쿠키를 'Dog Bar'에서 판다.
개가 먹는 쿠키를 'Dog Bar'에서 판다.한나영
그리고 애완동물 전용 매장이 아예 독립된 큰 건물로 되어 있기도 한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PETCO''PETSMART' 따위의 애완동물 전용매장이 있는데 둘러보면 신기한 것들이 많다.

이곳에는 개 뿐 아니라 고양이, 새, 열대어, 햄스터, 기니피그 등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들이 많이 있다. 애완동물들도 사람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이 필요하고, 이들 역시 '밥'만 먹는 게 아니고 비스킷 따위의 간식도 먹는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이곳 애완동물 매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시 개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가족이라고 여기는 견공들을 위해 적잖은 돈을 쓴다. 물론 자식이니 만큼 아낌없이 쓰는 것 같다.

미국사람들의 개 사랑과 더불어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의 '개 에티켓'이다. 이들은 개를 끔찍히 사랑하는 만큼 개에 대한 에티켓도 철저하다. 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오물을 받기 위해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었던 이른바 '지하철 개똥녀 사건'이나 '해수욕장 개똥녀 사건'은 이들이 자신의 개를 끔찍히 사랑하는 만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가 입는 옷도 사이즈가 있다. XS에서 XL까지.
개가 입는 옷도 사이즈가 있다. XS에서 XL까지.한나영
노스캐롤라이나의 Outer Banks 해변에서 만난 개와 아이들.
노스캐롤라이나의 Outer Banks 해변에서 만난 개와 아이들.한나영
'무빙세일'을 하는 동네의 어느 집. 주인을 대신하여 빈 거실을 지키고 있는 개.
'무빙세일'을 하는 동네의 어느 집. 주인을 대신하여 빈 거실을 지키고 있는 개.한나영
집밖으로 한 발짝만 옮기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견공들. 개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몸집마저 큰 견공들이 겁나는 존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이 친구로, 가족으로 '왕대접'을 받고 있는데 나도 그렇게 대접해줘야지.

말복 아침, 친정 앞마당에 있는 어머니의 다정한 벗 '얼룩이'를 떠올리며 나도 이참에 견공들과 친구가 되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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