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잡풀 뽑기를 했습니다.황순택
진부면사무소의 아침 풍경은 흡사 시골의 장터였습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온 단체 자원봉사팀들, 개인적으로 차를 가지고 온 자원봉사자들, 자원봉사자들을 배당해달라는 주민들, 또 자원 봉사자와 현지 주민들을 연결하는 분들….
제가 가기로 한 곳은 하진부 6리의 최 선생님 댁이었습니다. 그 집은 수해로 방바닥 장판을 모두 걷어내고 습기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급한 집안 정리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는 어느 정도 복구가 된 듯 했고, 이제 우리가 할 일들은 말하자면 수해지역 주민들을 위한 농촌 봉사활동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젊은 군인들의 말없는 수고가 절대적으로 큰 힘이 되었겠지요. 그들에게도 정말로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최 선생님이 저에게 요청한 일은 집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밭에서 토사에 파묻혀버린 검은 폐비닐을 걷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바로 옆 양파밭에서 잡풀을 뽑는 일을 맡았습니다.
밭에 도착하니 마산에서 온 서로 친척들로 구성된 대학생들 몇 명이 이미 폐비닐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뒷산에서부터 비가 '일어서서' 내려 왔다고 합니다. 비가 쓸고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흙더미이고 밭 이랑과 고랑의 구분도 없어졌습니다. 간간히 검은 비닐의 파편만이 이 곳이 밭이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대충 어물쩍 일할 수 없었습니다
얕게는 5㎝에서 깊은 곳은 20㎝가 넘게 파묻힌 폐비닐을 고구마 줄기 걷어내듯 잡아올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임하는 저의 마음자세가 스스로 기특했습니다.
저도 자의반 타의반 '차출'되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는 솔직히 '대충 이 정도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내 발로 걸어와 도움이 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그 주인이 다시 와서 일을 하게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가까이 있는 이모부댁에 가기로 했다며 오후 5시에 먼저 밭을 떠났습니다. 내가 맡은 구역을 마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