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신한 언니네 아파트에도 물이 차올라

서울이 물에 잠겼던 십수년 전 그 해 여름

등록 2006.08.05 16:31수정 2006.08.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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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십여 년 전 서울 풍납동에 살고 있던 나는 온 동네가 물에 잠기고, 밤새 차오른 물에 떠다니는 가구를 보며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서울 풍납동은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일반 주택에 살고 있던 우리집(친정)은 밤 사이 차오르는 물에 그만 잠겼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를 보며 무언가 스며드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던 우리 가족은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자정이 가까워오면서 아무래도 밤 사이 물이 차오를 것 같다는 방송을 듣고는 설마 설마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던 마음을 접고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부모님과 나는 부랴부랴 짐을 꾸려 최대한 높은 곳에 올려놓고는 결혼해서 건너 동네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언니집으로 피신했다. 꼬박 잠을 못 이루며 안내방송을 듣는데 새벽 3시가 넘으면서 급기야 아파트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언니네 집은 2층이었는데 1층은 벌써 잠겼고 2층도 불과 몇 십 센티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때의 황당함이란……. 전기도 모두 나가 여기저기 촛불로 밝히며, 그날 밤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그야말로 온통 물난리가 난 동네엔 확성기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그날 이후 우리는 물도 급수차가 오는 것을 기다려 식수를 배급받았다. 물이 빠져 나간 후 집에 가보니 가전제품은 몽땅 물에 잠겨 하나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불 빨래며 세탁물은 줄을 서서 기다려 지원 나온 세탁기에 공동으로 빨아야 하는 등 그날부터 아수라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동사무소에선 당시 돈으로 10만원인가 하는 보상금과 라면 한 박스 등 구호물품이 나왔지만 집도 잠기고 살림살이는 몽땅 못 쓰게 된 사람들에겐 어느 것도 위안이 되어주지 못했다. 기억하기엔 아마 2주일 가까이 긴 시간을 물난리 뒷수습을 하느라 진을 뺐던 것 같다.


그 이듬해 우리 집은 물이 잠겼던 주택을 싼 값에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물난리가 나 동네에 크고 작은 침수를 보면서 그때 기억에 몸서리를 치곤 했다. 벌써 이십수년 전의 일이건만 아직도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나곤 한다.

물난리가 난 사람들에겐 어려운 속에서도 작은 이웃들의 정성이 큰 위로가 되곤 한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걷어붙이고 짐정리를 해주는 것도 고마웠고, 식사 한 끼를 직접 만들어 전해주는 것도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침수지역이 많은 우리나라는 예상치 못한 폭우에 언제나 재난의 위험에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최대한 사전예방을 해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살아가면서 급작스러운 재해가 어디 물난리뿐이겠냐만, 물난리 만큼은 그래도 불가항력적인 재해인만큼 모두의 마음이 합해져야 극복하지 않을까 한다.

☞ [기사공모]"내가 겪은 '물난리'"

덧붙이는 글 살아가면서 급작스러운 재해가 어디 물난리뿐이겠냐만, 물난리 만큼은 그래도 불가항력적인 재해인만큼 모두의 마음이 합해져야 극복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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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로 시작한 글쓰기에 첫발을 내딛으며 여러 매체에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싶어 등록합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인터넷 조선일보'줌마칼럼을 썼었고 국민일보 독자기자를 커쳐 지금은 일산내일신문 리포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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