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원스러우면 청량산이라 했을까?

푹푹 찌는 무더위 쯤 단숨에 낚아채는 청량산 그리고 청량사

등록 2006.08.15 19:22수정 2006.08.1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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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량한 하늘만큼이나 단아한 청량사 신검당.

청량한 하늘만큼이나 단아한 청량사 신검당. ⓒ 한석종

a 연꽃의 형상을 하고 있는 청량산 청량사에 곱게 핀 연꽃.

연꽃의 형상을 하고 있는 청량산 청량사에 곱게 핀 연꽃. ⓒ 청량사

푹푹 찌는 무더위에 산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세차게 뒤흔드는 한줄기 바람이 휘돌아 내 목덜미에 흐르는 땀방울을 흔적도 없이 휙 낚아챈다. 이 청량함, 청량산 그리고 청량사.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마는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마라 어부가 진정 알까 하노라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은 청량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절절히 담아 이렇게 노래했다. 청량산이 얼마나 좋았으면 남들이 행여 알까 두려워 도화(복숭아꽃)마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올해는 유난히 찌는 무더위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예년에는 8월 중순이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시원스럽기보다는 오싹 찬 느낌이 들어 꺼려지는 시기인데도 올 여름 해수욕장엔 지금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무더위를 단숨에 이길 방도는 없을까? 골똘히 궁리하다가 몇 해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사. 그 때 그 기사를 읽으며 마음속이 얼마나 시원하게 느껴졌던지,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봉화로 발길을 재촉했다.

경북 봉화에서 안동방면 35번 국도를 따라가다 명호면 소재지를 지나면 시퍼런 물줄기가 거침없이 흐르는 낙동강 줄기가 나타나는데, 이 강은 물살이 세고 래프팅하기에 적격이어서 전국에서 모여드는 젊은이의 함성으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청량사에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수행길이었다. 무더위를 피해 계곡물에 발 담그며 희희낙락 데는 그런 장소와는 애시초 거리가 멀었다. 급경사를 이루며 강물처럼 굽이굽이 휘돌아 올라가는 길은 내게 수행을 넘어 고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 여름 소낙비처럼 연신 쏟아지던 땀방울이 온 몸을 적시고 세파에 찌든 탁한 내 마음까지 씻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밝은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또렷하게 맑아졌다. 이런 기운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a 차 한잔의 여유로 오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느끼게 만드는 안심당.

차 한잔의 여유로 오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느끼게 만드는 안심당. ⓒ 한석종

a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봉우리 중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잡았다.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봉우리 중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잡았다. ⓒ 청량사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잠시 쉬어갈까? 발길을 멈추어 서려는데 열 지어 늘어선 나무계단이 가는 길을 재촉한다. 저 멀리에 청량사 안내도가 보이고 그 옆을 지나자 한 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청량사의 도량이 아닌 한 구절의 글귀였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고 쓰여 있는 '안심당'이 그것이다.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곳에 들러 차 한 잔으로 삶의 여유를 찾게 만드는 넉넉한 공간이었다.

급경사를 이룬 나무계단을 따라 법당인 유리보전까지 올라가는 동안 왼쪽 절벽 가득히 웃음을 흠뻑 머금고 피어난 나리꽃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내 마음을 일순 사로잡는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약사여래불은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의왕으로서 신앙되는 부처님을 일컫는다고 한다.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삼각우총의 일직선상에 있는 것으로 고려 공민왕의 친필인 현판이 걸려있다.

구름으로 산문을 지었다는 청정도량 청량사는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 중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았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신비스러움은 더해져만 갔다.

a 이른 아침 운무에 휩싸인 청량산.

이른 아침 운무에 휩싸인 청량산. ⓒ 청량사

a 바위가 층층이 탑을 이뤘다는 금탑봉과 응진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바위가 층층이 탑을 이뤘다는 금탑봉과 응진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 청량사

a 연꽃의 꽃봉우리가 마치 탑의 모양과 흡사하다.

연꽃의 꽃봉우리가 마치 탑의 모양과 흡사하다. ⓒ 청량사

아득한 벼랑 끝에 집 한 채가 달랑 바위병풍에 둘러싸여 걸려있다. 바위가 층층이 탑을 이뤘다는 금탑봉과 응진전이 빚어낸 절묘한 조화는 청량사의 기품을 한층 더해준다.

응진전 뒤에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 바위가 마치 9층 금탑을 이룬 형상을 하고 있고 층층이 소나무가 테를 둘러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중국의 산수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이 응진전은 1300여 년 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청량산으로 피난 왔을 때 노국공주가 불공을 드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풍혈대를 지나자 최치원이 물을 마시고 그 총명함이 배가 됐다는 총명수 자리가 나타났다. 이제 이 샘물은 혼탁해져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최치원의 총명함을 소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몇 걸음 더 옮기면 눈앞에 장쾌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바로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이다. 청량사를 중심으로 청량산 육육봉(12개의 큰 봉우리, 작은 봉을 합하면 36개의 봉우리)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봉우리들은 꽃잎이 돼 청량사를 꽃술 삼아 한데 감싸 안은 연꽃의 형상을 이룬다.

어풍대를 지나 청량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에 퇴계가 어린 시절 숙부 송재 이우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고, 만년에 도산십이곡을 저술했다는 청량정사를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청량산에는 관창폭포와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 김생굴, 공민왕당 등 문화유적들이 즐비하다.

이 때문에 봉화군은 도로를 넓히고 각종 위락시설을 만들어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말에, 무분별한 개발로 행여 이런 청량한 분위기가 훼손되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하산하는 발걸음은 왠지 무거웠다.

a 청량산 절벽 곳곳에  웃음을 흠뻑 머금고 피어난 나리꽃.

청량산 절벽 곳곳에 웃음을 흠뻑 머금고 피어난 나리꽃. ⓒ 한석종

a 청량산에 청량사에 오르니 비어있는 스님의 흰 고무신처럼 내 마음속의 욕심도 비워진 느낌이 든다.

청량산에 청량사에 오르니 비어있는 스님의 흰 고무신처럼 내 마음속의 욕심도 비워진 느낌이 든다. ⓒ 청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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