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54회

희망을 찾아서

등록 2006.08.08 19:30수정 2006.08.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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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네가 상처를 입고 있었기에 어렵게 기회가 생긴 것이고 그렇기에 대 자연에 감사드린다.

솟은 ‘대자연에 감사드린다.’는 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연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솟은 그냥 이를 이용하는 것이 순리라고 여길 뿐이었다.


-이곳은 위험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아야 하지만 아직 방법이 없다.
-그들이라니? 우리라니?

솟은 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키가 이상하게만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분명한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솟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웅웅 칵칵 웅웅’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평소 쓰는 언어로서 분명하게 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왔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저 멀리서 왔고 난 저 산 너머에 살았고......
-그런 의미가 아니다.

키는 불속에서 따끈따끈하게 익은 덩이 식물을 꺼내어 솟에게 굴려 주었다. 솟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입으로 불며 약간 뜯어 먹어 보았다. 워낙 굶주린 탓인지는 몰라도 그 덩이식물의 맛은 솟에게 기가 막히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였다.


키는 느닷없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솟은 그런 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채 덩이 식물의 맛만을 탐닉하고 있었다.

-네가 맛보는 자연의 모든 것들...... 이 모든 것이 하나였다. 우리 종족의 일부는 그것을 언젠가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키의 말은 상당히 진지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던 솟은 그 말에 엉뚱하게도 순간적으로 수이가 떠올랐다. 자신은 당장 배를 채우고 있지만 이상한 짐승에게 잡혀간 수이는 맛난 과실은커녕 맑은 물조차 못 마신 채 허덕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솟은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신이 정신없이 탐닉하던 덩이식물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왜 맛이 없는가?
-아니

솟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당장 할 수만 있다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수이를 잡아간 그 괴이한 짐승들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수이의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다.

-걱정하고 있군.

키는 덩이식물을 꿀꺽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솟은 자신의 마음을 읽는 키를 의식하지 않은 채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보였다.

-그들은 당장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우리 종족과 너희 종족을 다 모아서 덤벼도 안 될 일이다.

키의 말에 솟은 상처가 자극받지 않도록 불 옆에 조심스럽게 누우며 웅얼거렸다.

-난 당장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들도 이겨왔어.
-그들은 다르다.

키도 불 옆에 몸을 누이며 웅얼거렸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상처가 나은 후 그 여자를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난 그 여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의 말에 솟은 상처의 아픔도 잊은 채 벌떡 허리를 곧추세웠다.

-정말인가?
-비록 그들이 이곳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더라도 그 소리는 막을 수 없다. 내게는 들린다.

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전해오는 생명의 목소리를......

순간 산들바람이 조용히 불꽃을 흔들었고 키를 바라보는 솟의 눈은 불빛에 번득였다. 솟은 이제 네드족인 키가 더 이상 반드시 죽여야 할 저주받은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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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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