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얼음조끼를 사주었습니다

등록 2006.08.09 11:08수정 2006.08.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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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걸 보니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열대야 까지 겹쳐 밤잠까지 설친답니다.


다들 휴가 다녀온 아야기로 분주한 이때에 저는 또 푸념을 늘어놓으려 이렇게 글을 씁니다. 남들은 휴가다 뭐다해서 기분이 들떠 있지만 우리가족은 올해도 여름휴가는 계획에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갈수가 없습니다.

어느 방송에서 그러더군요. 집값 땅값 학원비 기름값 의료보험료 하물며 불쾌지수까지 다 오르는데 안 오르는 건 딱 한 가지. 바로 근로자들의 월급만은 안 오른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남편 회사도 그래도 작게나마 매년 5월중에 임금 인상이 되었는데 올해는 아직 노사간에 임금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도 않았다는군요.

다들 불경기 불경기 하니까 매주 일요일마다 출근해서 일할만큼 일이 넘쳐나는 우리 남편회사 조차도 월급을 올려줄 생각을 않으니 이 불경기가 참으로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힘없는 자는 그저 시키는 일이나 죽도록 하고 주는데로 받아야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픕니다.

바라만 보는 제 입장에서도 이렇게 서러운데 현장에서 비지땀을 일하는 남편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동안은 저도 이웃동네 아파트 계단 청소라도 하여 작게나마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 그 아파트 부녀회장으로부터 그만 두라는 말을 통보 받았습니다. 자기네 아파트 사람이 일을 하게 되었다구요. 어쩌겠습니까. 자기 아파트 사람이 일을 하겠다는데 다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 제가 양보를 해야지.

하찮은 아파트계단 청소도 우선 순위가 있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남편은 더운 여름에 오히려 잘됐다며 쉬라고 하지만 제가 계단 청소를 하고 받은 돈으로 아이 영어학원비 내는데 보탰는데 남편 월급에서 그 돈을 내고나면 그만큼 또 쪼들리는 생활을 하겠지요.


그러니 저는 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일할 곳이 없습니다. 엊그제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더더욱 제가 쉬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몸집이 좀 있는 남편은 무더운 여름이면 맥을 못 춥니다. 퇴근하여 들어온 남편은 완전 파김치가 되다시피 온몸이 땀으로 푹 절여져 있더군요.

그래서 큰 맘 먹고 요즘 요행하는 얼음 조끼라는 걸 구입 해줬더니 오늘 퇴근한 남편이 일할 때 얼음조끼를 입으니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참 시원 하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일하는 현장은 바깥 온도보다 더 높아서 40도가 넘는다더군요. 그러니 뚱뚱한 남편이 매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수밖에요.


얼음 조끼의 효과가 보통 현장에서 4시간이라면 남편이 일하는 현장은 두 시간 밖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비록 2시간의 효과밖에 없는 얼음 조끼지만 제 마음은 한결 편합니다. 여유로 가지고 아이스팩을 아이스박스에 담아가지고 가면 교대로 4시간의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그나마 조금은 시원하게 일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이라는 자리가 사우나 같은 찜통 현장 속에서도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하는 자리이기에 저는 요즘 남편에게 여름 휴가의 ‘휴’자라는 말도 꺼내지 않습니다. 다만 다들 휴가 떠난 텅 빈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아야할 우리 두 아이를 위해 다음 주말저녁때쯤 영화관이나 한번 가보려 합니다.

작년에도 여름휴가를 공짜 연극공연 관람과 어린이 영화 한편씩 보여주고 스파게티를 사줬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올해는 꼭 자동차를 사서 시원한 계곡으로 여름 휴가를 가자고 약속 했는데 언제쯤 이 약속이 지켜질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적 아름다운 여름 휴가추억을 영영 못 남기게 해줄 것만 같아서 불안 합니다.

하지만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언제쯤 이 불경기를 웃으며 지난날의 추억처럼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부지런히 산다면 그런 날이 올까요.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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