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데 놔두고 왜 저 고생이지?"

왕릉에 가면 알뜰 피서가 보인다

등록 2006.08.09 11:46수정 2006.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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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덥다, 아아, 덥다…. '덥다'는 말로 부족하다. 끈끈한 땀이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며 전신이 뜨겁다. 이 더위를 피해서 탈출하고픈 욕망은 나 하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


지난 일요일(6일)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 영릉 답사를 마치고 남양주의 광릉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경춘가도에서 피서를 다녀오는 차량에 밀려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저 고생을 하면서 피서를 하느니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 동구릉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동구릉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 한성희

그 날 교통방송은 종일 서해안, 영동, 경춘가도, 경부 등 고속도로 정체현상을 중계했고 전국이 불볕더위로 피서차량에 치인다는 호들갑을 떨었다. 국도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가지도 못하고 빙빙 돌아간 길 역시 막혀버려 8시간이나 차에 갇혀 있자니 한심해졌다.

결국 밀리는 도로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광릉 답사를 포기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가평에서 저녁 10시에 늦은 저녁을 먹고 차가 웬만큼 빠진 뒤에 아예 천천히 서울로 출발하기로 일행과 합의를 봤다. 피서차량에 밀리는 일요일에 왕릉 답사를 잡은 내가 잘못이지.

저녁을 먹고 출발한 시간이 밤 11시. 다시 교통방송을 틀자 여전히 정체 중이었고 흘러나오는 아나운서 말이 걸작이다. 경춘가도를 지나는 운전자는 마음 느긋하게 먹는 게 좋겠다고.

월요일 출근할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도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도로는 밀린다. 정체된 길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짜증내다가, 휴식을 즐기고 돌아오는 즐거운 기분은 저만치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지친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잠들고 운전대를 잡은 아빠들의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연인들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아무리 마주 보고만 있어도 좋은 젊은이들이라도 운전대 잡고 거북이 운행에 몇 시간 시달린다면 사랑이고 뭐고 다 달아나버릴 터.

a 동구릉 피서

동구릉 피서 ⓒ 한성희

해마다 이 고생을 하면서도 더위가 닥치면 피서를 떠난다. 이 모습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왜 사람들이 좋은 데 놔두고 길바닥에서 저 고생이지? 가까운 왕릉으로 피서 가면 저런 고생 안 해도 될 걸."
"그러게 말야."

돈? 거의 안 든다. 고생 거의 없다. 가는 길을 모른다면 인터넷에 들어가 왕릉 이름만 치면 쉽게 알 수 있고 전화문의를 해도 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되고 돗자리와 도시락만 가볍게 준비하면 끝. 아참, 아이들이 물놀이에 젖은 옷을 갈아입혀야 하니 여벌의 옷을 준비하자.

도시락 준비가 귀찮다면 피자 한 판과 아이스박스에 과일과 냉커피, 얼음을 넣고 떠나도 된다. 왕릉은 고기를 굽거나 취사를 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어 피서 가서도 고기 굽고 식구들 먹이느라 음식 준비 고생하는 여자들에게도 좋다. 피서 갈 돈 1/10이면 매일 먹을 것을 푸짐하게 준비해서 한 가족이 실컷 먹고 시원하게 쉴 수 있다.

이름 좀 있다 하는 계곡엔 어김없이 음식점이 자리 잡고 음식을 주문하기를 강요한다. 그 즐비한 식당에서 나오는 폐수들이 물을 오염시키는 게 뻔한데 거기서 첨벙거리고 놀기도 꺼림칙하다. 게다가 그런 곳의 식당이 좀 비싼가.

한 가족이 가서 종일 즐기려면 최소한 10만원 어치 음식을 팔아줘야 한다. 거기에 차 기름 값을 더하면 비용은 상승한다.

반면 왕릉은 승용차로 가도 서울 근처라 가깝기 때문에 시간과 기름이 절약된다. 왕릉마다 마련된 주차장 요금도 1천원이나 2천원이면 종일 주차해도 되고 입장료라야 어른 1천원, 어린이 500원이면 해결된다.

우거진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며 아이들이 물장구를 쳐도 물놀이 사고 위험도 전혀 없다. 거기에 깨끗한 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돼 있고 식수대까지 마련돼 있으니 불편함도 없다.

a 동구릉 곳곳에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동구릉 곳곳에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 한성희

사람이 우글거리는 유원지나 해수욕장처럼 바가지 요금도 없고 한적하면서도 쾌적한 피서를 알뜰살뜰 즐길 수 있다. 피서지에서 흔히 보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없으니 건전하고 안전하기도 그만이다.

쉬고 싶어도 가족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나선 아빠들에게는 피서가 의무사항이자 고역이 될 수 있지만, 왕릉 피서는 아이들 맘대로 놀게 두고 돗자리에 누워 낮잠도 편하게 잘 수 있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휴식을 푹 취하고 가족들에게는 피서의 의무도 편안하게 다해가면서 말이다.

이제 피서를 가는 비용과 차량 밀리는 장거리 부담에서 벗어나서 서울과 근교에 있는 조선 왕릉으로 초록빛 숲과 차가운 시냇물을 즐기며 피서를 떠나보자.

a 동구릉 간이 수영장은 물이 얕아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다,

동구릉 간이 수영장은 물이 얕아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다, ⓒ 한성희

왕릉 피서가 역시 최고!

지난 토요일(5일) 답사 차 찾은 구리시 동구릉에 들어서자 냇가에 아이들 물장구와 환호성 소리가 즐겁게 울려 퍼졌다. 동구릉은 넓은 숲과 9개의 왕릉이 자리 잡고 있어 곳곳에 시냇물이 흘러내린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막아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 무더운 여름에 어린이들이 즐기게 했다. 여름을 맞아 폐장시간을 30분 늦춰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조선왕릉은 거의 모두 골짜기마다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린다. 더욱이 이 시내는 오염되지 않은 일급자연수들이고 물이 차갑다. 아이들이 들어가서 아무리 뛰놀아도 깊어야 어른 무릎 정도이기에 물에 빠져 위험에 처할 염려도 없다. 텀벙거리는 아이들 발길에 흙탕물이 일어나지만 이내 가라앉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발에 물을 담그거나 돗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더위를 피한다. 잘 다듬어진 푸른 잔디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왕릉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하며 역사탐방도 겸할 수 있다. 동구릉은 왕릉 해설사들이 관람객들에게 왕릉 해설을 해주고 있다. 놀다가 싫증나면 해설사들에게 조선 왕릉과 역사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시 무료다.

숲으로 둘러싸여 오염되지 않았기에 거의 모든 조선 왕릉에서 식수 역시 천연수를 뽑아 공급한다. 왕릉 약수를 뜨러 인근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오는 일은 흔하다. 지하 깊은 곳에 퍼 올린 천연수라 물도 차갑고 맛있다. 물론 정기적인 수질 검사를 거친다.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시원한 음료수, 과일을 준비해서 왕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먼 곳 다니며 돈 쓰고 고생하기 싫은 사람들이 편하게 왕릉을 찾아 휴식과 피서를 즐기는 알뜰 지혜다. 대신 나무가 우거져 모기가 물 염려가 있으니 모기향 하나쯤 준비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조선 왕릉에서 한 번 피서를 맛보면 쉽사리 떨치지 못하는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조용한 곳을 찾는 연인들에게도 왕릉은 안성맞춤이다. 동구릉 곳곳에 한적한 숲길이 있고 시냇물도 흘러내린다. 연인 둘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한적한 왕릉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연인들도 보인다.

a 공릉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수채화를 그리는 교사들. 보기만 해도 더위가 싹 가신다.

공릉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수채화를 그리는 교사들. 보기만 해도 더위가 싹 가신다. ⓒ 한성희

경기도 파주시 공·순·영릉도 서울과 고양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조선왕릉은 넓은 숲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해도 북적대는 일이 거의 없다. 이쪽 냇가에 사람이 많으면 다른 냇가로 찾아가면 그만이다. 사람이 싫다면 혼자 있을 공간도 얼마든지 있다.

전국교원연수를 받으러 온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공릉을 찾아와 환호성을 올렸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수채화 그리기가 안 좋다면 정상이 아니다.

a 발 밑에서 시원한 냇물이 흐르니 그림도 절로 그려질 듯.

발 밑에서 시원한 냇물이 흐르니 그림도 절로 그려질 듯. ⓒ 한성희

"말만 들었지 이렇게 공릉이 좋을 줄 몰랐어요. 괜히 먼 곳 찾아 피서 갈 필요가 없었네요. 가족들하고 여기 와야겠어요."
"먹을 것만 싸오면 돈도 안 들고 너무 시원하게 지내고요. 정갈한 분위기도 너무 좋아요."
"웰빙이 따로 있나요? 여기가 웰빙이고 기가 좋다니 금상첨화죠. 또 무료로 재미있는 산 역사공부도 하니 너무 좋아요."

서울과 고양시에서 찾은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서 오겠다고 말했다. 한 번 왕릉에 맛들이면 싼 비용 대비 120% 만족에 금방 중독된다. 게다가 국가에서 이렇게 멋지게 관리하는 왕릉을 국민이 적극 이용하지 않는다면 낸 세금이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 [기사공모] 2006 이 여름을 시원하게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 2006 이 여름을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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