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된장녀를 위한 변명

'된장녀'들에게 고하노라

등록 2006.08.09 13:16수정 2006.08.0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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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된장녀'와 '고추장남'일 것이다. 세상 이치에 어둡다 보니, 나는 왜 '된장녀'가 인터넷 포탈 사이트 검색어 1위로 올라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된장녀'가 된장처럼 구수하고 펑퍼짐한, 그야말로 옷에서 된장냄새가 팍팍 풍기는 아줌마들을 빗대어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아직 미혼인 내가 그 아줌마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궁금해 할 필요는 없어서 일부러 클릭해 읽어보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니, 이번에는 '고추장남'이 등장했다. 된장녀의 하루? 고추장남의 하루? 대체 이게 뭘까나? 나는 그때서야 서서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해서 나는 검색을 통해 그 두 남녀의 하루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재미있었다. 된장녀의 하루는 내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고추장남의 하루는 학창시절, 문학도들이었던 내 선후배들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완전 된장녀가 아님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퓨전 된장녀 정도라 할까? 내 눈에는 된장녀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된장녀이지도, 된장녀처럼 사치스럽게 살고 싶은 꿈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된장녀의 하루'를 보며 그걸 만든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1천원짜리 김밥 한 줄을 점심으로 먹고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마시면 된장녀가 되는 걸까? 찍통이라도 명품을 좋아하고, 그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에, 다국적 커피전문점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그야말로 돈 무서운 줄 모르는 허영덩어리한테 어쩌자고 '된장'이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정말 '젠장'하다가 '된장'으로 진화해 버렸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된장녀로 오해받을 만 하다. 밥은 그럭저럭 대충 먹어도 커피는 스타벅스 같은 좀 고급스러운 데로 저절로 가게 된다. 커피의 맛보다는, 그 분위기에 이끌리는 듯 하다.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도 적고, 담배 냄새도 안 나고. 일단은 조용하니까 책이라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되니까. 뉴요커의 삶을 동경해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없더라도 말이다.

나도 케이블 티비로 <섹스 앤 시티>를 즐겨 보긴 하지만, 그녀들의 삶이 완전해 보이진 않는다. 솔직히 너무 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듯 해 비위에 거슬린다. 돈 벌기도 어렵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곳곳에 숨어있어 언제 우리들의 뒤통수를 내리칠지 모르는데, 그네들은 마냥 사랑놀음이나 하며 놀고먹는 여자들처럼 보여 같은 여자로서 자존심 상할 때도 있다. 그네들의 관심사는 온통 사랑과 섹스에 집중되어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아주 잠깐 스쳐갈 뿐이다. 가끔 자판이나 두들기는 게 고작인 칼럼니스트 케리? 글 써서 그렇게 여유 부리며 산다는 건 불로소득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네들의 수입원이 궁금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혹시 애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그렇게 품위 있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학창시절에는 돈에 궁했다. 내가 스타벅스를 처음으로 간 게 2001년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방에서 유학 온 가난한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사오천원씩 하는 커피를 사먹겠는가. 솔직히 그 돈이면 식빵을 네 봉지정도 살 수 있었다. 우리 집이 그렇게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지만 부모님한테 미안해 점심비를 아끼려고 식빵에 딸기쨈 발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때가 나한테도 있었다. 행여 빈 강의실에서 먹다가 친구들한테 보이기라도 하면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전형적인 '고추장녀'였던 샘이다.

그때 스타벅스 앞을 지나다니며 유리창 너머로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흠칫 바라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우아하게 커피 한잔 먹어볼까? 돈 많아 좋겠다. 등등.

그리고 나는 2001년 어느 여름날, 확 일을 저질렀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날이다. 지갑에 달랑 남은 5천원. 나는 그 5천원을 들고 무작정 스타벅스 카운터 앞으로 질주했다. 어느 때를 바라보자고 이렇게 인내하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지금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타벅스의 카페라테가 심히 땡기는 이유도 아마 그 때 그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생이라는 호칭을 벗어 던진 이후로 나는 내 수입에서 적지 않은 돈을 스타벅스에 갖다 바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심 한복판에서 스타벅스 말고는 마땅히 갈 데도 없다. 전통차는 더 비싸고, 일반 커피숍에서도 커피가 스타벅스와 비슷한 가격대이지 않는가? 게다가 자리를 오래 잡고 있으면 눈치까지 받는다. 온갖 세균의 온상지인 자판기커피는 솔직히 별로 입안에 넣고 싶지 않다. 물론 스타벅스 커피가 무조건 위생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게 내가 스타벅스를 애용하는 이유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면 나는 스타벅스를 더 이상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보다, 일본보다 한국 스타벅스가 유독 비싼 건 대단히 유감이지만, 스타벅스가 그렇게 고급화된 이미지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으면 지금쯤 가판 테이크아웃 커피로 파리만 빨아먹고 있을 것이다. 이래도 스타벅스가 온 여성의 사치와 허영의 분출구처럼 보이는가? 나는 고추장남들에게 묻고 싶다. 스타벅스는 그저 남자들이 밥은 굶어도 말보르 담배와 위스키에 환장을 하는 것처럼 여자들의 가호에 지나지 않는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왜냐? 나는 지금까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내 돈을 지불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가거나, 무료쿠폰이 생기면 쿠폰이 아까워서라도 가줘야 할 것 같아서 가끔 한번씩 가는 것뿐이다. 즉, 내게 그건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것이다.

본래 여성들한테는 자기를 남한테 과시하고픈 욕망이 있다. 화장술이 발달한 이유도 이런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자긍심이 없으면 없을수록 외적 치장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명품치장을 하고, 온갖 보석을 달고, 성형수술까지도 불사하는…….

그래야 그녀들은 자기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외적으로 과시하고 드러내고픈 욕망은 우리 사회의 골빈 외모 지상주의도 한 몫 거들었다고 본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쭉쭉빵빵한 몸매의 여자들이 지나가면 딴짓하다가도 눈길부터 주는 게 남자들이 아닌가? 같은 여자로서 자존심 상하지만, 그런 남자들의 은밀한 눈길이 사치와 허영으로 똘똘 뭉쳐진 럭셔리 된장녀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뭔가 있어 보이고 싶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점 역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솔직히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그렇게 철부지 된장녀로 사는 건 절대적으로 반대다.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잣집 왕자님을 물기 위해, 천구들에게 멋지고 예쁘다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외모에 과잉 신경 쓰는 아직 어린 친구들을 보면 정말로 짜증스럽고 얄밉다. 쟤들이 세상에 대해 뭘 알까? 언제까지 세상이 쟤들한테 만만하게 굴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쟤들은 어쩌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된장녀의 하루'를 보며 새삼 놀란 건 바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의 고정관념에 대해서다. 같은 여자 입장으로서 매우 자존심 상하고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동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를 바라봐야 진정한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지, 남자는 무조건 돈이나 펑펑 써주는 사람이고 여자는 무조건 얻어먹어야 하는 사람인가? 여성들이여.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왜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나는 이 점에 대해서 그런 여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가 좋아서 사귀면서 왜 무조건 데이트 비용을 남자한테 부담시키는지, 그렇게 주종관계에서 무슨 동등한 대우를 받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양 없이 얌체 같은 그런 여자들이 많을수록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인식은 왜곡되어 갈 것이다. 싫은데 억지로 만나는 게 아니라면, 씀씀이를 줄여서라도 데이트 비용쯤은 공동부담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래야 남자들한테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고, 남자가 내 은행 청구이고, 남자만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그 생각을 버려야 자기 인생이 비로소 당당히 펼쳐질 것이다. 신데렐라는 없다.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가 평생 행복했다고 그 어느 책에서도 나와 있지 않다.

이 땅의 된장녀들이여! 진정한 된장녀가 되어라. 된장처럼 아무 맛에도 섞이지 않고 흡수되지도 않는, 자기만의 고유한 맛을 지닌 자기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자가 진정 아름다운 인생의 승자이다.

덧붙이는 글 | 홍지회 기자는 현재  프리랜서 작가와 소설가로 활동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홍지회 기자는 현재  프리랜서 작가와 소설가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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