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트로이카>의 표지사회평론
나는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주말 드라마 <서울 1945>를 열렬하게 시청하고 있다. 주말엔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밤 9시 30분을 중심으로 시곗바늘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헌영·김삼룡·여운형 등 실존했던 혁명가들을 탤런트들이 버젓이 연기하고 있으니, 시대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해방공간의 '왼쪽' 사람들을 그린 드라마가 한국방송공사에서 만들어지리라고 꿈에라도 기대했겠는가.
극중 인물 최운혁은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이었던 이강국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일본강점기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출중한 이론가였는데, 남한에서는 혁명가 이강국보다는 '여간첩' 김수임의 연인 이강국으로 더 잘 알려졌다. 김수임은 이강국을 숨겨주고 월북을 도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이승만 정권 때 사형당했다. 원로 수필가 전숙희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소설로 그리기도 했다(<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2002, 정우사).
이강국과 김수임처럼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1930년대 식민지 서울 거리를 활보하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만큼이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이들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던 그들, 바로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
이재유. 이름은 아주 오래전에 들어봤다. 대학 2학년 때니까 1993년이던가. 학술서 형식의 <이재유 연구>(김경일, 창비, 1993)가 단행본으로 출간됐을 때, 학생조직에 있던 나의 동기가 그 책을 읽는 걸 보았다. 나도 읽어 봐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다. 그 후 책이 절판돼 이재유를 만날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운 좋게도 소설 <경성 트로이카>로 이재유를 만날 수 있었다.
소설 <경성트로이카>는 어떻게 나왔나
나는 짧지 않은 서문을 읽고 '열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열정'에 꽁꽁 묶인 건 작가 안재성씨였고 난 그 열정에 감염됐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게다.
작가의 이력도 눈에 띈다. 그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과 동시에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20년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낙향하여 경기도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한기엔 굴착기 운전을 하며 가계를 꾸리는 가난한 소설가다.
그를 '열정'의 바다로 이끈 것은 인사동 작은 화랑의 조각 작품이었다.
사실적이면서도 애끓는 비통함을 주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여인상을 보면서 그는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작가는 그 조각상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잊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경성 트로이카를 건져내게 된다.
작가는 경성 트로이카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조각상의 주인공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면서 그 때의 진실을 복원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산에 살고 있는 이효정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이재유 연구>를 쓴 김경일 교수를 찾아가고,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본강점기 사상범들의 재판 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퍼즐을 맞추듯 경성 트로이카 조직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명예도 사라져버린 '유령'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 '유령'들과의 약속의 소산이 바로 이 소설, <경성 트로이카>다.
이야기는 개마고원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유가 집을 떠나 삼수갑산의 고산준령을 넘고 넘어 경성으로 오는 긴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재유는 당시 사람들보다 키가 크고, 갸름한 얼굴형에 미소가 환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가수 비와 조금 닮은 것도 같다.
이재유가 서울에 와 정착한 곳은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빈민가가 형성된 토막촌이다. 토막은 건축 자재가 없어 땅을 파서 벽을 대신하고 지붕은 거적이나 짚으로 대충 덮은 집을 말한다. 어린 이재유는 그 토막에서 혼자 살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70번이나 경찰에 체포되는 기록을 세운다. 일제는 그를 관부연락선에 태워 조선으로 압송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이재유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함께 할 운명적 동지를 만난다. 훗날 그와 함께 경성 트로이카의 지도력이 된 이현상과 김삼룡이 그들이다.
식자층 위주로 구성되었다가 하릴없이 무너진 조선공산당을 이재유는 노동자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재건하려는 꿈을 품는다. 그리하여 그 전위조직으로 1933년 경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1933년 경성에서 만난 젊은 혁명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