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벗들, 그 마음에 물들다

[물들임10] 오묘한 염색의 세계, 동료에게 한 수 배우다

등록 2006.08.12 12:38수정 2006.08.1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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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봄, 여름, 가을에 칡잎으로 염색한 실크스카프의 다양한 색상.

봄, 여름, 가을에 칡잎으로 염색한 실크스카프의 다양한 색상. ⓒ 한지숙

부산으로 염색 공부를 하러 다닌다고 했을 때, 이웃의 동생이 이렇게 물었다.


"언니 같이 잘하는 사람도 더 배울 게 있어요...?"

아, 얼마나 낯뜨거운 말인가.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려니, 내가 염색한 의류들로 속옷부터 겉옷까지 구입해 요즘도 잘 입고 다니는 동생이기에 후한 점수에 어여쁘게 봐준 것이겠지. 그때 내가 민망해하며 말했다.

"막상 공부해 보니 아직 한참 멀었더라."

a 칡꽃

칡꽃 ⓒ 한지숙

얼마 전 전북 장수에서는 이론과 실습을 겸한 부산 염색아카데미의 야외 수업이 열렸다. <규합총서>의 전통염색법을 현대적으로 풀이한 책(조경래 풀이)으로 옛어른들의 물들이는 시간도 더듬었다. 또 회원들이 각자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동안 연구하고 공부한 사례를 발표하는 순서도 있었으니 알토란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과제를 미룬 채 시간만 보내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회원들은 무엇을 연구했을까. 이론을 뒷받침하는 시료(試料)는 어떤 걸 마련했을까, 한두 가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a 면, 옥사, 명주에 물들인 '환삼덩굴'

면, 옥사, 명주에 물들인 '환삼덩굴' ⓒ 한지숙

태풍과 장마로 물들이는 때를 많이 놓쳐 모두 부족한 자료일 거라는 나의 게으름까지 슬쩍 얹어 위안을 삼았지만 조마조마 날짜는 다가오고야 말았다. 결국 마음에 뿌듯한 내용은커녕 겨우 황토 염색에 관한 프린트만 몇 장 뽑아 들고 장수로 향했다.

회원들의 발표를 보며 입이 딱 벌어졌다. 유인물이며 결과물, 발표하는 자세며 몸놀림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었고, 스스로 노력하고 쌓아온 노하우를 우리들과 나누기 위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 닥나무잎 염색

닥나무잎 염색 ⓒ 한지숙

나중에 염색 공방을 운영하려는 회원은 염색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초 자료를 준비했다. 물과 불에 대해, 염료를 추출하고 염색을 하기 위한 용기, 정확한 테이터를 위한 계량기기, 온도계 등 아주 세심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 좋은 평을 받았다.

규방공예를 하는 대구의 회원은 '닥나무잎'을 염료로 실험해 고온과 저온에서 물들였을 때, 매염제에 따른, 시간차를 두었을 때의 차이 등을 발표했다. 한지로 꾸미기를 즐기는 나로선 닥나무로 염색한 시료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꽃집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바탕으로, 아깝게 버려지는 흰 백합의 노란 수술을 모아 냉동실에 얼려가며 염료로 사용한 회원도 있었고, 경기도의 한 폐교에서 체험학습장을 운영하는 회원은 염색 공업과 환경 문제를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a 개모시풀

개모시풀 ⓒ 한지숙

'오간색(五間色)과 오방색(五方色)'으로 색(色)을 통한 천지만물의 조화를 연결시킨 두 회원의 주제는, 나로 하여금 '빛깔'에 대해 좀더 가까이 들여다 보게 하는 공부였다. 특히 검은 색을 내는 염료로 신나무와 오배자만 이해하고 있던 나로선 다양한 염료에서 검은 색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생쪽염색만 해봤을 뿐 전통 발효쪽 만들기는 아직 온전히 익히지도 못했으니 '청대'로 물들여 시료와 함께 준비한 회원의 연구는 자꾸만 들여다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a 면직물에 청대염색. 시간, 온도, 반복횟수, 염착률 등을 보여주는 시료.

면직물에 청대염색. 시간, 온도, 반복횟수, 염착률 등을 보여주는 시료. ⓒ 한지숙

칡잎과 개모시풀, 환삼덩굴로 실험 연구한 발표는, 시골길 길섶에서 흔하게 만나는 자연의 염료를 주제로 다룬 것이기에 반드시 해봐야 할 목록에 꼭꼭 여며 저장했다. 특히 개모시풀로 면에 물들인 빛깔에는 흠뻑 매료되었다. 마침 좀깨잎나무와 혼동하던 개모시풀이기에 그 쓸모와 가치를 발견한 것이 기뻤다.

새삼 각오를 새롭게 한 날, 나의 곳간에 빼곡한 알곡으로 갈무리하여 곶감 빼먹듯 하나씩 소화시킬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물들이는 작업에 이론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많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실습과 더불어 이론 공부를 함께하는 요즘, '경험과 이론'으로 더욱 깊게 다져가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물들이는 작업에 이론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많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실습과 더불어 이론 공부를 함께하는 요즘, '경험과 이론'으로 더욱 깊게 다져가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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