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기술'을 알려주마!

[서평] 여행에 대한 독특한 노하우로 똘똘 뭉친 <여행의 기술>

등록 2006.08.14 08:53수정 2006.08.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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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행의 기술> 겉표지

<여행의 기술> 겉표지 ⓒ 이레

여행을 하다보면 놀라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누군가의 여행기나 여행지 광고를 보고 떠날 때면 더욱 그렇다. 바로 이것, "이게 뭐야?"하는 실망감이 경험의 주인공이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 위해 동쪽 땅 끝까지 갔는데 쓰레기 구린내가 동네 주인인양 잠시도 멈추지 않고 풍겨올 때, 마음을 안정시킬 겸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로 떠났는데 2박3일이 지나기도 전에 슬슬 그것들이 지겨워지면 어쩔 수 없이 실망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떨까? 큰마음 먹고 이탈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디카로 찍었고 귀국한 뒤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서 현상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타당하지가 않다. 도대체 뭐 하러 갔다왔나 하는 허전감만 느껴진다. 사진 수백 장 찍어왔지만 결국 "뭐 하고 왔나?"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도대체 왜 일까? 며칠 밤 잠 못 이룰 정도로 기대하며 떠났고, 디카로 마음에 드는 것을 보이는 족족 모두 찍었건만 실망감과 허전감이 교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 알랭 드 보통에게 물어보자.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전문가 뺨치는 인생 상담을 해줬던 그의 여행기 아닌 여행기인 <여행의 기술>이라면 이 질문에 답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행이 허전하다? 알랭 드 보통에게 물어보라!

<여행의 기술>은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등의 주제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각 장에서는 파트너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보면 출발에서는 보들레르가 있고 동기는 홈볼트, 풍경은 워즈워스, 예술은 고흐, 귀환은 메스트르 등이 있다. 뭔가 심상치 않게 여겨지지 않는가? <여행의 기술>은 다른 여행책들과 달리 저자의 여행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다.

대신 먼저 살아갔던 예술가들로부터 배울 만한 기술들을 모아 놨다. 그렇기에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됐고 그곳에서 무엇을 봤다'는 천편일률적인 여행담과는 거리가 멀다. 시대를 넘나들며, 제목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간단하게 그 기술들을 엿보기로 하자. 먼저 플로베르와 홈볼트의 이야기가 담긴 '동기'부터 봐야 할 텐데 그것을 살펴보기 전에 하나의 질문에 답해보자. 여행은 왜 하는가?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는 왜일까? 이국적인 것을 알고 싶은, 이곳과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때로는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담보로 잡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플로베르와 홈볼트도 그랬다. 그들은 이국적인 것을 굉장히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좀 다른 것이 있다. 먼저 플로베르다. 플로베르가 관심을 갖는 건, 우리가 흔히 관심을 갖듯 아주 유명한 그런 건물이 아니었다.


플로베르는 플러그 소켓, 욕실의 수도꼭지, 잼을 닦는 병, 공항의 안내판 따위야 말로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며 또한 그것이 그것을 만든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호기심 대상은 '유명한' 것들이 아니다

흥미롭지 않은가? 프랑스로 여행 간다는 말을 루브르 박물관 방문과 동일시하고, 동남아로 여행 간다는 말을 유명 해변가에서 바다 바라보는 것과 동일시하던 생각에 변화를 줄만큼 의미심장하다.

호기심 때문에 떠난 홈볼트에 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홈볼트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와 같은 것들이 홈볼트가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생뚱'맞은 것 같은가? 요즘 시대에 여행지에서 이런 질문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기야 출발 전에 인터넷으로 웬만한 정보를 다 습득한 뒤에, 마치 또 한 명의 내국인인 것처럼 준비해서 떠나는 와중에 어찌 당황스러운 생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홈볼트처럼 여행으로써 '충만'할 수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뭐가 이래?"라는 실망감보다 나쁠 건 없을 테니 말이다.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해 러스킨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그렇듯 러스킨도 황홀한 풍경을 보면 소유하고 싶어 했다.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언제까지라도 기억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사진'을 찍는다. 과정이 간단하며 관리만 잘 한다면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스킨도 처음에는 사진을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돌렸다고 하는데 이유인즉 '적극적이며 의식적으로 보기 위한 보조 장치'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대체하는 물건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진을 찍는데 열중하다보니 정작 봐야 할 것을 놓친다는 말이다.

'사진 찍기' 대신 '데생'을 한 러스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러스킨은 데생을 했다. 데생을 함으로써 세밀하게 풍경을 관찰했다. 덕분에 러스킨은 풀밭을 누워 자라는 풀잎을 그릴 때면, 이끼 낀 강둑까지 초원의 구석구석을 관찰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소유'할 수 있었다. 러스킨은 믿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을 기억 속에서 오래 남게 하는 것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이것 또한 의미심장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행을 가겠다고 데생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대신 '말로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말 그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데생만큼이나 의도적으로 그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 제안이다. 사진 찍을 자리를 잡기 전에 말 그림을 시도해본다면 상당한 부피의 허전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그 외에도 <여행의 기술>에는 배와 비행기를 특별하게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 집에서 여행하기 등과 같이 여행자들을 위한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 때문에 여행의 로망이나 실용적인 정보가 없을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행 갔다 온 뒤의 허전함을 줄이는 여행 방법은 무엇인가?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있다면 알랭 드 보통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혹시 아는가? 앞서 살다간 예술가들처럼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게 될는지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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