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은 '사도세자 참배 길'에 목숨 걸었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기행40]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 ①

등록 2006.08.14 13:57수정 2006.08.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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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계천에 도자 타일로 재현된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 길이가 192m에 이른다.

청계천에 도자 타일로 재현된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 길이가 192m에 이른다. ⓒ 이정근

조선왕국 500년 도읍지의 숨결이 살아있는 청계천 곳곳에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이 광통교와 수표교, 그리고 오간수문이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과정에서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새로운 볼거리가 등장했으니 '정조대왕 반차도' 도자 벽화다. 반차도와 청계천이 무슨 연관이 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조선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행차 인원이 광통교를 통과했으니까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궁중화가 김홍도가 그린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는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그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성 현륭원을 참배하는 기록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벽화다. 가로 세로 30cm, 세라믹 타일 5120장을 이어 붙인 길이 192m의 세계 최대 도자벽화다. 원본은 원본으로써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고, 청계천에 재현된 벽화는 역사적인 행차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a 행차에 동원된 군마와 인력

행차에 동원된 군마와 인력 ⓒ 이정근

원본 그림 반차도는 '반열도' 또는 '노부도'라고 불리는 의궤도의 일종으로써 풍속적인 성격을 띤 기록화다.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다.

정조대왕 반차도는 '화성행차도'라고도 불리며, 당대의 궁중화원 김홍도와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이 정조의 어명에 의하여 2년여에 걸쳐 완성한 가로 15m, 세로 18m에 이르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흑백 목판본으로 남아있던 정조 반차도는 1994년 채색되어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존하고 있다. 조선개국 이래 최대의 국가적인 행사로 평가받는 정조대왕의 화성행차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 참배가 그 목적이 있었지만, 어머니 혜경궁홍씨 환갑과 사갑(死甲)을 맞는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사부곡(思父曲)이 스며 있다.


a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타고 가는 자궁가교.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타고 가는 자궁가교. ⓒ 이정근

화성행차는 수구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대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었다. 신진세력으로 급부상한 정약용으로 하여금 화성에 행궁 이상의 견고한 궁을 짓도록 밀명을 내린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사직단을 짓고, 임금의 별동부대인 장용영 군영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벽파세력의 근거지인 한양을 버리고 화성으로 천도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정조대왕과 노론 벽파세력과의 갈등은 깊어지고...


이러한 대왕의 숨은 뜻을 간파한 수구세력은 방해공작에 혈안이 되었다. 특히 병조판서는 개인적으로 영 기분이 나빴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부하 병조참지 정약용을 왕이 총애하고 있으니 벌레 씹는 심정이었다. 병판으로서 시기의 대상 정약용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다. 그가 속한 수구세력 노론으로서 정조대왕이 임금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 왕이지만, 한편으로 제거해야 할 정적이었다.

a 정조 임금이 타고 가는 좌마. 철통같은 경호다.

정조 임금이 타고 가는 좌마. 철통같은 경호다. ⓒ 이정근

왕세자로서 기량과 도량이 넓어 백성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노론에게 정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두려운 존재였다. 폐비 윤씨의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이 휘두른 갑자사화의 피바람이 유령처럼 따라 다녔다. 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정조 즉위 초, 자신의 왕위 승계를 방해한 홍인한과 정후겸을 사사케 한 정조의 단호함에 수구세력은 떨고 있었다.

정조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산군은 뒤늦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았지만, 정조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영조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만큼 인간적인 괴로움이 컸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정치적인 행보를 펼칠 수도 없었다. 조정을 노론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감 마마 황공 하옵나이다"라며 자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노론세력 대신들이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a 맨 앞에서 행차를 선도하는 경기감사

맨 앞에서 행차를 선도하는 경기감사 ⓒ 이정근

정조19년. 그러니까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치러진 행사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창덕궁에서 현륭원까지 62.2km. 지금이야 현륭원이 있는 경기도 화성까지 승용차로 1시간 코스이지만, 그 당시 6000여 명(도자 타일에는 1779명의 사람과 779필의 말 재현)이 동원된 임금의 행차는 장관이었다. 한마디로 국력을 총 동원한 국가적인 행사였다.

내시와 궁중 나인도 말 타고 행차에 참가

문무 관리에서부터 마부에 이르기까지 동원된 사람들의 성분도 각계각층이다. 우의정과 판서를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 도승지를 비롯한 승정원 승지와 장용원 제조, 경연관 등 왕의 측근과 병을 치료하는 내의원 제조와 의관, 수라간 장금이와 열쇠를 담당하는 사략과 등불과 촛불을 담당하는 등촉방 중관도 동행했다.

뿐만 아니다. 내시도 말을 타고 행차에 참가했으며, 궁중나인도 여자의 몸으로 너울을 쓰고 말을 타고 가고 있다. 또 도성에서 현륭원이 있는 화성까지 오가는 임금님의 행차 길에 행패를 부리는 백성을 치죄할 곤장을 멘 군뢰까지 동원하였으니 대단한 규모다. 대궐 전체가 움직이는 행사나 다름없었다.

a 너울을 쓰고 남자 마부가 끄는 말을 타고 가는 궁중 여인들. 내의원 의녀, 악공, 장금이 들이다. 기생이 아닌 정숙한 아녀자가 남자 마부가 끄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은 당시로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너울을 쓰고 남자 마부가 끄는 말을 타고 가는 궁중 여인들. 내의원 의녀, 악공, 장금이 들이다. 기생이 아닌 정숙한 아녀자가 남자 마부가 끄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은 당시로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 이정근

a 등촉방 중관. 요즈음으로 말하면 조명기사이다.

등촉방 중관. 요즈음으로 말하면 조명기사이다. ⓒ 이정근

"행차 시작부터 끝까지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엄명 아래 정리소를 임시로 설치하고, 대내의 음식물 공급에서부터 수행한 관원들의 식량과 노자, 그리고 동원된 군마의 사료비까지 궁에서 내린 10만 궤미의 돈으로 충당했다.

이 행차의 모든 과정을 기록할 요원으로 승정원 주서와 예문관 한림을 대동하였고, 기록화를 남기기 위하여 궁중 화원을 참여시켰다.

출발 당일에 화성 도착이 어려웠으므로 시흥에 임금이 하룻밤 묵어갈 행궁을 마련해야 했으며, 한강 노량진에 배다리(舟橋)를 건설해야 했다. 배다리,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6·25 한국전쟁 시에도 한강철교가 끊어져 부교를 가설하고 병력과 장비가 도하작전을 벌렸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차 하면 모두가 수장되는 올인 작전이 배다리 건너기다.

a 완전무장한 장용대장과 군졸들. 말 타고 행진하면서 좌우를 살피는 눈초리가 매섭다.

완전무장한 장용대장과 군졸들. 말 타고 행진하면서 좌우를 살피는 눈초리가 매섭다. ⓒ 이정근

한강에 교량이 없던 그 시절. 왕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체통에도 어울리지 않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다. 더더욱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두 누이동생, 그리고 수많은 인원이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한강에 배다리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배다리 역시 안전에 무리가 있었다. 또한 얼마 전부터 도성에 괴소문이 나돌았다.

"임금이 한강에 수장될는지 모른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었지만 급속히 도성에 퍼져 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있듯이 발 없는 말이 '대궐 담장'쯤이야 못 넘을 소냐. 정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내가 한강에 빠져 죽는다면, 나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라 종묘사직이 무너지고 왕권이 무너진다."

이렇게 생각해서 일까? 배다리의 설계를 정조가 직접 챙겼다.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강구했다. 하지만 배다리를 건설하는 주교사(舟橋司)의 모든 관원들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연속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연속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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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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