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찔하고 억압이 느껴지는 서대문형무소

[포토에세이] 광복절을 앞두고 찾아가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록 2006.08.14 17:13수정 2006.08.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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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휴일, 며칠 있으면 8·15 광복절이 돌아와서 서울 서대문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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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망루, 담장에서 억압감이 전해진다. ⓒ 박하용

역사관 앞에 도착하니 높은 담장과 망루가 나를 억압하고 있다. 들어가기 위하여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고 하니, 그곳도 철창으로 되어 있다. 들어가는 쪽문도 철대문으로 모든 것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우선 서대문 형무소 역사전시관을 들어가 보았다. 역사전시관 1층에 들어가니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독립 운동가들의 주민등록증과 이력 등도 볼 수가 있고, 독립 운동가를 호송할 때 머리에 씌운 두건, 수갑, 형틀 등도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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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채우고 씌워서 어디로 갈려고. ⓒ 박하용

2층에 올라가 보니 서대문형무소의 설립 배경과 일제의 침략 기반 조성, 국권 피탈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지하층으로 가보니 유관순 누나의 울부짖는 모습도 재현되어 있으며, 독방을 바라다보니 한숨이 나온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조그만 마루방에 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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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 독방. 저곳에서 어떻게 지내란 말이냐! ⓒ 박하용

일제가 우리 독립운동가에게 얼마나 가혹한 행위를 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다리를 천장에다 묶어놓고 주전자로 물을 먹이는 모습, 욕조에 머리를 뒤로 담그는 모습, 사지를 묶어놓고 때리고 고문하는 모습, 일본 형사가 억지로 지문을 찍는 모습, 손을 뒤로 묶고서 채찍질하는 모습, 전기 고문하는 모습 등을 보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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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있다. ⓒ 박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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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고문도 일삼고 있다. ⓒ 박하용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강우규 선생님께서 순직하기 전 남기신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 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이 감회가 없으리오.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로 가보았다. 가본 건물은 공작사 건물로 13옥사였다. 이 건물은 1923년에 지은 건물로 투옥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일을 시켰던 작업장이다. 이곳은 형무소, 군부대, 관공서 등에서 필요한 관용물품을 만들어 공급한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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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모습. 지금은 역사관이라 그런지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다. ⓒ 박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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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내부 복도 모습. 겨울에는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여 본다. ⓒ 박하용

이곳에 가보니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다. 독방과 여럿이 사용하는 감방. 그리고 둥그런 유리 너머로 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전기고문실, 손톱 찌르기 등의 모습은 섬뜩하다.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열려있는 옥사도 있고, 개방하지 않은 공간도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느낀 것은 무엇일까? 직접 물어보니 "죄를 짓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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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 전경. ⓒ 박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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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옥사 모습. ⓒ 박하용

일제 강점기가 원폭으로 인하여 끝났다. 36년간의 고통을 끝으로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다.

해방으로 독립 운동가들의 가슴에 새겨진 응어리는 조금이나마 풀렸지만, 엉망진창이 된 그들의 몸과 마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으리라.

덧붙이는 글 | 코리아넷, e조은뉴스, 국정불로그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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