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현대인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 인터넷, 핸드폰, 컵라면 자동판매기 등

등록 2006.08.14 17:28수정 2006.08.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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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끓인 라면 자동판매기.

끓인 라면 자동판매기. ⓒ 재미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오늘의 세상이 우리들로 하여금 기다릴 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이야기겠지요.


끓는 물을 붓고 3분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도 모자라서 이제는 동전을 넣으면 바로 끓인 라면이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이제는 모든 사람의 기다리지 못하는 병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기다리지 못 하는 심각한 병에 걸리는 데에는 '인터넷'이라는 것도 한 몫을 담당하지 않았나 합니다. 우표를 붙일 필요도 없고, 우체통까지 걸어가서 편지를 부칠 필요도 없어졌으며, 그 편지가 받는 이에게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런 시간들도 없어졌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을 받아 볼 수 있는 전자우편이 바로 우리들로 하여금 짧은 시간에도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부터 국제 우편의 경우에는 보름까지 기다려야 겨우 받을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하면 바로 몇 줄을 써서 보내고 얼마 안 되어서 배달되었다는 알림 메모까지 받아볼 수 있습니다.

a 일반 편지 봉투.

일반 편지 봉투. ⓒ 구은희

오늘날은 '기다린다'는 말조차 쑥스러울 정도인데,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기다림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됨을 느낍니다.

우리 옛 선조들에게 기다림이란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바로 '은근과 끈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그런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우리 민족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피고 지고 또 피는 무궁화처럼 수많은 외세 속에서도 꿋꿋이 우리 민족을 지켜온 것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장장 세 시간 동안 바깥에서 기다렸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휴대전화가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딱히 연락할 길도 없는 차라 약속한 곳에서 그냥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친구는 나하고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시간 반이 지난 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전화하니 그 친구가 집에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약속에 대한 착오가 있었음을 깨닫고 미안한 그 친구는 그제야 약속장소로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오겠다는 친구에게 차마 '내가 30분을 더 기다려야 하니 다음에 만나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30분을 더 기다려서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것은 내 생애에 있어 최장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a 현대인이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 핸드폰.

현대인이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 핸드폰. ⓒ 구은희

사실, 그와 같은 일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나는 바로 상대방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지 모릅니다. 그것이 좀 더 합리적이고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기에 그 시간도 무척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그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달았고, 내가 그 친구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의 순간은 때로 아주 로맨틱한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도 좋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순간에 느끼는 떨림과 행복감은 소중한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 '나의 모습을 보고 그이는 뭐라고 할까?' 등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 준 것이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라는 한국 가요일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도 때로는 행복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아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순간 또한 당신의 행복의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은근과 끈기'로 행복의 시간들을 만끽하며 다가올 희망의 그 시간들을 위하여 기다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코리아나뉴스>에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코리아나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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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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