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반드시 국민이어야 하나요

싱가포르 독립기념일과 한국의 광복절을 비교하며

등록 2006.08.15 14:45수정 2006.08.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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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국기가 한 달 째 내걸려 있습니다. 국기를 내 건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싱가포르 국기가 한 달 째 내걸려 있습니다. 국기를 내 건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이봉렬

박 형.
지난 달 말 처음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때 맨 처음 저를 반겨 맞아 준 것은 싱가포르 국기였습니다. 공항에도, 거리에도, 각 가정에도 어김없이 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도착한 날이 특별한 기념일이라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8월 9일이 싱가포르 독립기념일이라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내 건 것이라더군요. 이 곳 사람들 이야기로는 독립기념일 한 달 전부터 집집마다 국기를 내 건다고 합니다.


국기 내 거는 것만으로 짐작이 되겠지만 이 곳 사람들에게 독립기념일은 참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날이 되면 낮엔 운동장에서 기념식과 함께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하늘에선 비행기가 축하 비행을 합니다. 곳곳에서 공연과 파티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고 즐깁니다.

독립기념일을 국가 기념일로 정해서 성대한 기념식을 치르고, 온 국민이 축제로 즐기는 것에 대해 이방인의 입장에서 제가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지는 한국의 광복절 행사와 비교하면서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을 전후하여 집집마다 내 건 국기를 보면서는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15일)은 광복절입니다. 거리에는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나온 직원들이 태극기를 내 걸겠지요.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태극기 달기를 권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태극기가 많이 내 걸리는가요? 매번 국가 기념일마다 약방의 감초마냥 나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태극기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아파트 단지를 사진으로 찍은 후, 태극기 하나 내 걸지 않는 '국민'들 의식을 나무라는 기사 말입니다. 가끔은 강남 강북 아파트의 태극기 게양 여부를 비교해서 특정 지역 사람들의 '개인주의'를 부각시키기도 하더군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때 지어진 건물인 서울시청 본관 건물이 태극기로 뒤덮여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때 지어진 건물인 서울시청 본관 건물이 태극기로 뒤덮여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박 형.
전 국가 기념일을 맞아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 과연 당연히 해야 할 국민 된 도리인가 하는 것에 한번도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국가 기념일마다 국기를 달긴 해야겠는데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마땅히 국기를 달 만한 곳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 갔을 뿐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싱가포르에 와서 집집마다 내 걸린 국기를 보면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싱가포르 국민들은 한 집도 빠지지 않고 국기를 내 걸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국기 게양은 과연 독립을 기념하는 것 외에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게 궁금했습니다. 제가 듣기론 국기 게양을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외국인이 주로 사는 콘도에는 도리어 국기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강제하지 않아도 대다수 국민들이 국기를 내 거는 싱가포르의 모습이 박 형 보기에는 어떤가요? 국민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기념일에 함께 동참하는 모습이 부러운가요? 광복절임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네 아파트와 비교하면서 반성을 하게 되는가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외운 탓에 이 곳 싱가포르에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쉽게 떠오릅니다. 그 정도 다짐을 했으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살아야 마땅한데 지금 제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을 국가 단위로 나누는 것을 반대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를 내걸려고 하다가도 어쩐지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 둔 적이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 역시 '국민교육헌장'처럼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지 오래구요. 오랜 독재시절 동안 세뇌되고 강요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불러 온 역효과는 아닐까요?

광복절을 맞아 국기 게양과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 박 형과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국민 된 도리로서 국기 게양에 동참하는 것이 옳은 일 일인지,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 게 곧 '국민의식의 결여'이며 '개인주의의 폐해'로 지적당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 형에게 꼭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우리는 모두가 반드시 '국민'이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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