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잡초를 제거하는 시간들

어머님의 자식사랑은 잡초 가득한 잔디밭까지 아름답게 가꿔냅니다

등록 2006.08.16 15:19수정 2006.08.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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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립니다. 매미도 더욱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며칠간의 삶이지만 매미는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세월이 지겨운지 매일 매일 힘차게 울어 젖힙니다.


10여년의 고단한 땅속 생활을 접고 고작 일주일 정도의 이승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매미의 울음소리는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선풍기 같기만 합니다.

노곤한 몸을 누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곧바로 꿈 세계로 몰아넣습니다. 여름날에만 즐길 수 있는 오수의 맛! 독서삼매경에라도 빠질라치면 어김없이 오수는 몰려 와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줍니다.

그런 연후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햇살이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면 무심코 향하여 행하는 일이 있으니 요즘 습관처럼 되어 버린 마당의 풀 뽑기가 그것입니다.

a 잔디밭 가득히 이 보다 더 많은 잡초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잡초반, 잔디반 하는 식이었죠.

잔디밭 가득히 이 보다 더 많은 잡초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잡초반, 잔디반 하는 식이었죠. ⓒ 이규현

처음 잔디를 심을 때는 잘 가꿔놓은 남의 집 잔디밭이 부러워 심었는데 심고 보니 이만저만한 일이 아닙니다. 풀과의 지루한 전쟁이 시작되고서부터 야생화나 심어 버릴걸 하는 후회도 들고 저 풀들을 어떻게 다 뽑지? 어느 세월에… 저걸 다 하지 하는 후회가 막심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도 천성이 게으른 탓에 매일 피농사나 짓게 되고 주위의 눈총을 받아 왔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마음 속 한쪽에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풀과의 싸움에서 이겨보질 못해 왔기에 지레 겁을 먹게 되기 마련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용기를 내어 잔디밭을 조성한다고 하였는데 다시 상황이 이러니 암담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마침 장모께서 오셔서 호미를 들고 나서시는데 어찌할 수 없이 같이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시원치 않더라도 몇 몫은 한다는데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죠.

하여 시작된 풀매기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이틀이나 진행되고 저희는 포기하고 있는데 노인 양반은 혼자서 새벽처럼 일어나 풀을 뽑으십니다. 미안한 마음에 우리가 할 터이니 그냥 두시라고 인사치레로 말씀을 드려봅니다. 역시 답이야… 뻔한 것이고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서 밭을 매시는 어머님의 모습만이 우리 앞에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그런 덕택인지 지금은 잔디밭의 풀을 뽑는 게 무척이나 쉬어졌고 재미도 있어졌습니다. 어머님의 지극정성에 감복한 탓인지 잔디밭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잔디 속에는 많은 풀들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a 잔디 속에 자리한 풀들은 저렇게 잔디인지 아닌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보호색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잔디 속에 자리한 풀들은 저렇게 잔디인지 아닌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보호색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 이규현

요즘은 잔디 속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잡초들을 뽑아냅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꼭 보호색을 하고 있는 곤충들처럼 정말 잔디와의 구분이 무척 힘들게 합니다. 집사람도 처음엔 잡초와 잔디를 구분하지 못하더니만 이제는 쉽게 구분합니다.

a 잔디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잡초의 모습…. 자세히 봐야 잔디가 아니구나 느끼게 됩니다. 저렇게 다른 풀들이 잔디를 옥죄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답답해집니다.

잔디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잡초의 모습…. 자세히 봐야 잔디가 아니구나 느끼게 됩니다. 저렇게 다른 풀들이 잔디를 옥죄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답답해집니다. ⓒ 이규현


a 잔디 속의 잡초를 뽑을 때의 그 기분! 그 맛이란 정말 앓던 이가 쏙 빠지는 것 이상일 것입니다.

잔디 속의 잡초를 뽑을 때의 그 기분! 그 맛이란 정말 앓던 이가 쏙 빠지는 것 이상일 것입니다. ⓒ 이규현

잔디 속에서 자리하며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노라면 꼭 새치머리를 뽑을 때의 시원함 같은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뭔가 가슴 한쪽에 차 있던 안 좋은 기억들을 쏴~악 뽑아내듯이 상큼함을 맛보게 되기에 이젠 습관처럼 조석으로 잔디밭을 헤매 다닙니다.

처음엔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쳐다보며 이를 어찌할거나 하다가 이젠 신이 나 돌아다니는 제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슬며시 혼자서 미소 짓기도 합니다. 이제 잔디밭의 잡초만 뽑을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깊이 여러 가지 보호색으로 침잠해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도 하나씩 둘씩 뽑아 낼 일입니다.

저 푸르른 잔디밭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곱게 가꿔 볼 일입니다. 잔디밭처럼 푸르른 여름하늘은 작렬하는 태양을 마음속에 두고 그렇게 자신을 달궈가며 계절을 가득 안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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