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귄터 그라스. 하지만 때아닌 나치 친위대 전력 고백으로 독일 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연합뉴스 / AP
"나는 나치 친위대원이었다!"
지난 주말, 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 최고의 지성 귄터 그라스(78)의 이같은 갑작스런 '고백'으로 독일 사회가 한바탕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받은 노벨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어 논란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소설 <양철북>의 저자이며 독일 전후 세대 중 가장 영향력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으며 '독일의 양심'이라 불리는 귄터 그라스. 도대체 그는 나치와 무슨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복무 당시엔 거리낌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웠다"
귄터 그라스는 최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 8월 12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9월에 출간될 그의 유년시절과 전쟁시기를 다룬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에 대해 소개하던 중 이 책에서 소개될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자신이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잠수함부대의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 뒤 17세 때인 1944년 드레스덴에 위치한 무장나치친위대 제 10기갑사단으로 발령받고 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반년간 나치 친위대원으로 복무했다는 것.
지금까지 그라스는 나치친위대가 아닌 방공부대에서 근무했다고 말해왔다. 나치친위대는 1938년 나치정권의 군사조직으로 창설되었으며, 전쟁포로·강제노동자·집시· 다른 인종을 대상으로 한 대량 살상을 저지른 것으로 악명높다. 특히 유태인 집단수용소에서의 대학살을 조직적으로 진두지휘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라스는 "나치친위대 복무 당시엔 전혀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었다"면서도 "복무하는 동안 한 발의 총도 쏘지 않았고 어떤 범죄행위에도 가담하지 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백, 왜 60년이 지난 지금?
사실 귄터 그라스의 동료 문인들은 그라스로부터 "나는 어릴 적 멋모르는 나치 추종자였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나치친위대에 얽힌 구체적인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라스는 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겼을까. 사실 대중의 실망과 당혹스러움은 그가 나치친위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각인된 그라스는 평소 독일의 철저한 과거청산을 외치며 "현재의 독일은 늘 아우슈비츠와 함께 생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높은 역사의식을 설파하던 '독일의 양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왜 전쟁이 끝난 60년이 지난 지금인가.
이 질문에 대해 그라스는 "그것은 내 인생의 오점이다, 이로 인해 괴로웠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며 "그동안 힘든 시간이었다, 그 동안의 나의 침묵이 이 책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를 쓰도록 했으며 그러나 이제는 고백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라스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라고 강요한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강요"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