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치 친위대원이었다"

[해외리포트] '독일의 양심' 귄터 그라스의 '나치 전력' 고백 파문

등록 2006.08.16 13:43수정 2006.08.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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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귄터 그라스. 하지만 때아닌 나치 친위대 전력 고백으로 독일 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귄터 그라스. 하지만 때아닌 나치 친위대 전력 고백으로 독일 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연합뉴스 / AP

"나는 나치 친위대원이었다!"

지난 주말, 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 최고의 지성 귄터 그라스(78)의 이같은 갑작스런 '고백'으로 독일 사회가 한바탕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받은 노벨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어 논란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소설 <양철북>의 저자이며 독일 전후 세대 중 가장 영향력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으며 '독일의 양심'이라 불리는 귄터 그라스. 도대체 그는 나치와 무슨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복무 당시엔 거리낌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웠다"

귄터 그라스는 최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 8월 12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9월에 출간될 그의 유년시절과 전쟁시기를 다룬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에 대해 소개하던 중 이 책에서 소개될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자신이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잠수함부대의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 뒤 17세 때인 1944년 드레스덴에 위치한 무장나치친위대 제 10기갑사단으로 발령받고 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반년간 나치 친위대원으로 복무했다는 것.

지금까지 그라스는 나치친위대가 아닌 방공부대에서 근무했다고 말해왔다. 나치친위대는 1938년 나치정권의 군사조직으로 창설되었으며, 전쟁포로·강제노동자·집시· 다른 인종을 대상으로 한 대량 살상을 저지른 것으로 악명높다. 특히 유태인 집단수용소에서의 대학살을 조직적으로 진두지휘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라스는 "나치친위대 복무 당시엔 전혀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었다"면서도 "복무하는 동안 한 발의 총도 쏘지 않았고 어떤 범죄행위에도 가담하지 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백, 왜 60년이 지난 지금?


사실 귄터 그라스의 동료 문인들은 그라스로부터 "나는 어릴 적 멋모르는 나치 추종자였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나치친위대에 얽힌 구체적인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라스는 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겼을까. 사실 대중의 실망과 당혹스러움은 그가 나치친위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각인된 그라스는 평소 독일의 철저한 과거청산을 외치며 "현재의 독일은 늘 아우슈비츠와 함께 생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높은 역사의식을 설파하던 '독일의 양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왜 전쟁이 끝난 60년이 지난 지금인가.

이 질문에 대해 그라스는 "그것은 내 인생의 오점이다, 이로 인해 괴로웠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며 "그동안 힘든 시간이었다, 그 동안의 나의 침묵이 이 책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를 쓰도록 했으며 그러나 이제는 고백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라스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라고 강요한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강요"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귄터 그라스를 둘러싼 논란을 다루고 있는 독일 공영방송 ARD 홈페이지.
귄터 그라스를 둘러싼 논란을 다루고 있는 독일 공영방송 ARD 홈페이지.
"도덕적 권위의 상실, 노벨상도 반납하라"

귄터 그라스의 충격 고백이 불러온 국내외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유태인중앙협회 샤를로테 크노블로는 "그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엄격한 도덕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오랫동안의 침묵은 그가 지금까지 해온 많은 말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한편, 그라스의 충격고백이 새 책의 홍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가운데 기민당(CDU) 의원 볼프강 뵈른젠이 "지금까지 그는 정치인들을 향해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해왔다. 그런 그가 이제는 그 도덕성의 잣대로 자신의 도덕성을 돌아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벨상을 포함해 그가 받은 모든 상을 받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폴란드의 전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는 그라스에게 93년 수여한 단찌히 명예시민증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이러한 과거를 알았더라면 노벨상은 못 받지 않았겠냐며 "스스로 명예시민증을 포기하는게 가장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팬클럽 체코본부 또한 실망을 나타내며 귄터 그라스에게 94년 수여한 카를 차페크 문학상을 철회하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스웨덴 노벨재단의 대표 마이클 솔먼은 지난 15일, 스톡홀름의 일간지를 통해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상을 반납한 선례가 없다며 "그라스의 노벨상 반납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뒤늦은 고백은 존경받을 만하다"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으로 그에게 199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양철북>.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으로 그에게 199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양철북>.
뒤늦은 커밍아웃으로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이미지에 일정부분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 또한 점점 더해가고 있다.

나치 연구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아눌프 바링과 노버트 프라이 교수는 그라스의 고백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역사 이해에 한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라스의 동료 문인들은 대체로 늦은 감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그가 진실을 밝힌 것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작가협회 P.E.N의 회장 요하노 슈트라서는 "엄청난 죄를 짓고도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라며 "그라스가 지금이라도 스스로 과거를 밝힌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의 도덕적 신뢰성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예술아카데미의 회장 클라우스 슈텍 또한 "그의 늦은 고백에 존경을 표한다, 일단 (대중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그라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연방하원부의장 볼프강 티어제는 "나 역시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일부 사람들처럼 그라스를 '버림받은 자'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그의 생애와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변함없으며 그라스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는 독일의 과거청산을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부총리 프란츠 뮌터페링 역시 그라스가 지금까지 독일민주주의에 기여한 업적을 강조하며 "그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언급했다.

대체로 그라스의 '늦은 고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동시에 외부의 그 어떤 압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오명으로 남을 수 있는 과거를 스스로 들춰낸 그라스의 용기는 존경받을 만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그라스가 노벨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일간지 <디 벨트>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귄터 그라스는 노벨상을 반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6일 현재 응답자(2287명)의 67.7%는 "아니오", 32.3% 는 "예"라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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