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강아지 풀이 살고 있어요

[현장] 새만금 갯벌을 다시 찾다

등록 2006.08.17 13:55수정 2006.08.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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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해창 갯벌에 있는 장승 앞에는 조개들의 무덤이 생겼다.

해창 갯벌에 있는 장승 앞에는 조개들의 무덤이 생겼다. ⓒ 김교진

2006년 8월 초, 나는 짧은 여름휴가를 맞아 생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만금 갯벌의 변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새만금 갯벌을 찾았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에선 거북이걸음으로 가야만 했다. 전라북도 부안군의 새만금 갯벌에 도착하고 보니 갯벌은 방조제가 준공되기 전보다 물이 많이 빠져 있었고 갯벌이 말라 표면이 허옇게 일어나서 메마른 사막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먼저 새만금 방조제 기념관 밑에 있는 해창 갯벌 앞에 차를 세워놓고 갯벌로 들어가 보았다. 해창 갯벌에는 각 사회 환경단체에서 새만금 갯벌을 지키자는 마음을 담아 세운 장승들이 있다.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의 상징적인 곳이다. 그러나 장승이 서있는 갯벌은 오랫동안 바닷물을 만나지 못해서인지 갯벌이 말라 자갈이 드러나 있었고 여기저기 죽은 조개들이 많이 보였다.

장승 앞에는 누군가가 죽은 조개들을 모아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역사시간에 배운 조개들의 무덤인 패총이 생각났다. 그러나 패총은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들의 껍데기들이 쌓인 것이고 조개껍데기가 많은 것은 그만큼 바다의 생산성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란 뜻이다. 하지만 지금 장승 앞에 만들어진 조개무덤은 사람들이 땅 한 평을 만들기 위해서 수만 년간 살아온 갯벌과 그 속에 사는 생명들을 일부러 죽인 학살의 현장임에 다름이 아니었다.

새만금 갯벌에 육지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하다

a 육지 식물들이 갯벌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육지 식물들이 갯벌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 김교진

장승을 지나 더 걸어 들어가니 파란 풀밭이 보였다. 예전에는 칠면초, 퉁퉁마디, 나문재 등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이 살던 곳인데 이제는 강아지풀 등 육지에서 사는 식물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명력이 강한 육지의 풀들은 바닷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산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고이는 육지와 가까운 갯벌에서부터 살기 시작하고 있다. 육지 식물들이 갯벌을 육지로 만드는 선봉에 서고 있었다.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는 해가 갈수록 육지 식물이 들어와 푸른 초원을 만들게 될 것이다.


갯벌에 사는 식물인 퉁퉁마디, 나문재, 칠면초는 짠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서 바닷물의 성분인 소금, 마그네슘, 칼륨, 칼슘, 미네랄 등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퉁퉁마디는 함초라고 불리며 건강식품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나문재의 어린 순도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무쳐서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그래서 예전부터 갯벌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는 나물을 캐러 산에 가는 게 아니라 갯벌로 간다고 했다. 이러한 염생식물들은 가을이면 단풍 든 것처럼 색깔이 변해 갯벌을 빨갛게 물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염생식물들이 살던 곳에 육상의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아쉬웠다. 갯벌에 논을 만들어 쌀농사를 짓는 것 보다 갯벌을 그대로 놔두어 이곳에서 조개나 게 등 해산물을 잡아서 올리는 편이 생산성에 좋을 텐데 무엇 하러 많은 돈을 들여 갯벌을 메우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죽음의 행렬

a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 갯벌에 살던 조개, 게 등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갯벌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 갯벌에 살던 조개, 게 등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갯벌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 김교진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죽은 도요새 한 마리가 보였다. 도요새는 새만금 갯벌의 새를 대표하는 새이다. 이 도요새는 새만금 갯벌이 막히자 먹이가 부족하여 죽었을 것이다.

갯벌에는 죽은 조개들이 끝없이 나뒹굴어 갯벌을 하얗게 보이게 했다. 예전에는 갯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발에 밟히는 갯벌의 물렁물렁한 느낌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갯벌이 말라버려 신발을 벗을 일은 없다. 하지만 맨발로 다녔다가는 죽은 조개를 밟아 발에 상처를 남길 것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죽음의 행렬만 이어졌다. 나와 새만금 갯벌을 처음 찾은 일행들은 한낮의 땡볕에 입을 벌리고 죽은 조개들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고 이러한 대학살을 만든 주범인 새만금 방조제위로 차를 몰고갔다.

새만금 방조제는 아직도 공사 중이었고 일반인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이 만든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인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갯벌의 생명들이 죽고 갯벌에 생계를 의지하는 어민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방조제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a 새만금 방조제. 방조제 바깥쪽으로 들어 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았다.

새만금 방조제. 방조제 바깥쪽으로 들어 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았다. ⓒ 김교진

새만금 방조제를 나와서 계화도로 향했다. 계화도의 갯벌 배움터인 그레에선 고은식씨가 여전히 큰 웃음으로 우릴 반겨줬다. 하지만 지난 7월 갯벌에서 조개를 잡던 아내를 사고로 잃은 슬픔은 감출 수가 없나보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나는 '아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내가 왜 갯벌 살리기 운동에 그토록 열심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어요. 홀로 남은 내가 할 일은 앞으로 더 열심히 갯벌 살리기 운동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임무를 말하는 고은식씨의 말을 들으니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이 커 그가 다른 일을 할 의욕을 잃진 않았을까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평상심을 찾았고 좋아했던 술마저 끊고 갯벌 살리기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을 보여줬다.

나에게는 고은식씨의 아내인 유기화씨의 죽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더 갯벌을 사랑하여 갯벌 살리기 운동에 열심이었던 그녀를 갯벌이 하늘나라로 데려갔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더 오래 살아서 갯벌 살리기 운동을 열심히 하게 했어야 하는 것인데 갯벌도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남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운동해주는 것이 그녀의 뜻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

어민들은 언제까지 조개를 잡을 수 있을까...

a 죽은 백합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 오고 있다

죽은 백합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 오고 있다 ⓒ 김교진

a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들어가는 어민들.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들어가는 어민들. ⓒ 김교진

다음날 아침, 밤새 더위에 시달리고 모기에 물려서 잠은 제대로 못 잤지만 우리 일행은 계화도 어민들이 갯벌에 들어가는 새벽 6시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갯벌에 들어갔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힌 이후로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물때가 없어져서 물때에 맞추어서 갯벌에 들어갈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어민들은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서 햇살이 약한 오전과 저녁에 갯벌에 나간다고 한다.

해가 뜨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햇빛은 부드러웠고 햇빛을 받은 갯벌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곳곳에 바닷물이 만들어 놓은 물결무늬가 신기함을 더해줬고 육지의 지렁이보다는 길고 다리가 많이 달린 갯지렁이를 여러 마리 볼 수 있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놈이 있나 기대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보다는 죽은 생명체의 잔해가 더 많았다. 갯벌을 밟았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없었고 죽은 조개를 밟았을 때 나는 부스러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 가슴이 아팠다.

갯벌 위를 40여분을 걸어서야 그레를 사용해서 조개를 잡는 어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어민들은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갯벌 어느 곳에서나 백합을 비롯한 조개를 잡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물이 고여 있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조개를 잡을 수 있다. 더군다나 잡히는 양도 많이 줄었으며 조개가 싱싱하지 않은 것도 있어서 언제까지 조개를 잡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라고 한다.

새만금 부활 위해선 포기 말고 희망 가져야

a 백합을 잡는 계화도 어민들.

백합을 잡는 계화도 어민들. ⓒ 김교진

a 갯벌에는 죽은 조개가 널려 있다

갯벌에는 죽은 조개가 널려 있다 ⓒ 김교진

어민들이 조개를 잡는 부근의 사방에는 죽은 조개와 게들이 널려 있었다. 죽은 조개들의 공동묘지 가운데서 얼마 남지 않은 살아있는 조개를 찾아 갯벌을 뒤지는 계화도 사람들의 마음은 죽어가는 자식을 보는 마음일 것이다. 갯벌은 하루가 다르게 썩어가고 잡히는 조개는 줄어들고 있지만 어민들은 하루라도 조개를 잡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우리 일행은 그런 어민들의 한 숨소리를 뒤로 하고 갯벌을 걸어 나왔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기 전인,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갯벌에서 놀던 칠게, 장뚱어, 민챙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갯벌은 딱딱한 껍질을 갖은 게와 조개들이 입을 벌린 채 죽어 있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a 갯벌위에 무리를 지어 죽은 게들.

갯벌위에 무리를 지어 죽은 게들. ⓒ 김교진

a 새만금의 생명체가  장미꽃처럼 생긴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새만금의 생명체가 장미꽃처럼 생긴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 김교진

갯벌에 육상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하자 어떤 사람은 '채소라도 심어서 먹을 수는 없을까'하고 씨를 뿌려보기도 하였지만 아직 채소는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방조제를 막고도 십여 년 이상은 지나야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동안 새만금 갯벌은 소금기가 들어나서 허옇게 된 사막이나 잡초만 자라는 풀밭의 모습을 지닌 채로 있게 될 것이다. 조개가 잡히지 않기 시작하면 어민들은 갯벌을 떠날 것이고 새만금 갯벌에서 조개를 잡던 일은 전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침에 갯벌에 들어가면서 갯벌 위에 갯벌 생명체가 만들어 놓은 장미꽃 모양을 보았다. 장미꽃과 많이 닮아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는 마치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새만금 갯벌 생명들의 부활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직은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농발게(http://nongbalge.or.kr) 홈페이지에 가면 새만금 갯벌에 관한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농발게(http://nongbalge.or.kr) 홈페이지에 가면 새만금 갯벌에 관한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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