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도사격장 반대운동, '반미' 아니다

[기고] 군산 시민들 "제2의 매향리 아니냐"... 정부 '갈등조정' 능력 부재

등록 2006.08.17 14:44수정 2006.08.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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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매향리 주민들이 사격장 집중포화지역인 농섬 인근에서 수거한 포탄더미.

매향리 주민들이 사격장 집중포화지역인 농섬 인근에서 수거한 포탄더미.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자동채점장비(WISS)를 설치해도 직도사격장에서의 전체 훈련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국방부 관계자)
"직도를 미 공군의 대체 사격장으로 제공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직도사격장 백지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군산발전비상대책위원회)


WISS를 설치해도 직도 사격장의 훈련량이 현재보다 늘어나지 않는데, 군산발전비상대책위원회(군산비대위)는 '미 공군의 대체 사격장 사용'을 반대한다? 분명 논리적으로 덜컥거린다.

군산 시민들의 반대에는 '감정'과 '의혹'이 개입되어 있다. 정부의 '갈등조정 실패'가 이런 심리를 부추겼다. 미리 말하건대 군산 시민들이 갖고 있는 '감정'과 '의혹'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반미'가 아니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한국민'과 '미국' 모두를 화나게 하는 짓이다. 그만 하자.

군산의 '서운한 감정'은 누구 탓?

a 지난해 10월 충남 서천군 주민들이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방폐장 주민투표가 금권, 관권 선거라고 주장하며 군산 핵폐기장 건설 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충남 서천군 주민들이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방폐장 주민투표가 금권, 관권 선거라고 주장하며 군산 핵폐기장 건설 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먼저 군산의 '감정'을 정확히 들여다보자.

2005년 11월 2일 경주, 부안·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를 위한 주민투표가 있었다. 가장 많은 찬성 비율을 얻은 경주시에 방폐장이 들어서면서 경주시는 특별지원금 3천억원을 얻었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이전 등의 혜택을 받았다.

반면 경주와 경합을 벌인 군산 시민들은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군산시과 경주시의 캠페인이 '지역감정'으로 비화됐고, 경주시의 주민투표에 시와 공무원들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관권선거 의혹 또한 들끓었다.


애초 전북 부안 시민들이 방폐장 유치를 반대했던 당시, 정부는 고준위 수거물까지 방폐장에서 처리한다고 했고, 특별법을 통한 물질적 지원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반대 시위를 하는 부안 시민들을 고립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초의 반대가 무색할 정도의 매력적 '조건'이 걸린 실제 방폐장 유치에 전북은 실패했다. 서운한 생각과 허탈한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허탈함은 중앙정부에 대한 '감정'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방폐장 유치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주겠다는 정부의 부추김이 탈락지역 주민들에게는 상처가 되고 만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상처는 깊어진다. 상처가 깊으면 이에 대한 보상심리도 당연히 커진다. 지금 군산 시민들의 '감정'은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는 보상심리이다. 대책위가 '어민 생존권 보장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기대를 키워놓았기 때문에 협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 부재도 문제

두 번째로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이 문제다. '갈등조정' 능력 부재가 군산 시민들의 불신을 고양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갈등'이 외부에 대한 투쟁보다 더 오래가며 더 철저하며 심지어 더 고통스럽다."

간디의 말이다. 민선 4기를 맞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커질수록 '우리 내부의 갈등'을 조절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8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시·도지사 초청 국정현안 토론회'에서 '지역발전·갈등과제의 공동관리시스템 구축'이 국정현안과제로 제시됐지만 구체적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로드맵과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정부가 구체적 실현에는 약한 모습이 다시금 나타났다.

정부는 갈등조정을 위해 '법적 기구에 의한 조정'과 '민주적 조정' 방안을 통해 '절차'를 분명히 해야 한다. 통합조정기구의 설치가 전자이고, 네덜란드처럼 의사결정 전단계에서 공공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이 후자이다. 기대와 상처, 보상심리와 더 큰 기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제 '의혹'의 내용을 정직하게 얘기할 차례다. 게리 트랙슬러 미 7공군 사령관은 "올해 초엔 A-10기가 태국까지 가서 훈련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실제 한국에 배치된 20대의 A-10기 중 6기가 훈련장을 태국으로 옮겼다. 주한미군이 직도 사격장 사용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이유는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된 이후, 산악지역에서는 훈련이 곤란한 A-10기를 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2의 매향리'에 대한 오해 없애야

a PAC-2 미사일 발사대와 이륙을 준비하는 A-10기.

PAC-2 미사일 발사대와 이륙을 준비하는 A-10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고도 공격기인 A-10기는 대전차 공격용으로 30㎜ 열화우라늄탄을 장착한다.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처음 쓰인 열화우라늄탄은 폭발 시 방사성 물질이 수 킬로미터까지 퍼지고, 지하수와 표층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걸프전 증후군'이라 불리는 참전 미군들이 앓고 있는 만성적 질병, 이라크 주민에게 발생한 백혈병과 기형아 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게 열화우라늄탄이다. UN도 '사용금지 대상무기'로 분류해 놓고 있다.

그런데 모든 보수 언론들은 시민단체가 사격장을 반대하는 이유를 'WISS 설치'라고 호도한다. 실제 폭탄과 소형 모의탄 투하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WISS 설치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리 없다. 주민들이 갖는 의혹의 핵심은 직도가 '제2의 매향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 어떤 '오해'가 깔려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폐쇄된 매향리 사격장에서도 A-10기의 훈련이 있었고, 열화우라늄탄 사용 의혹이 국회와 시민단체에서 제기했으며, 미군은 극구 부인했다. 다행히 2000년 현지 조사 결과 방사선은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의 수빅만이나 아시아 일부 국가 내 미군기지에서 우라늄 유출로 추정되는 백혈병을 앓는 등 후유증이 있다는 보고를 보면,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국가 안보와 안보동맹의 엄중함을 생각할 때, 직도 사격장은 대체 사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조속히 군산시민들의 '감정'을 풀고 '의혹'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후속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직도사격장에 열화우라늄탄 폭격과 같은 재앙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단순히 WISS 설치를 반대한다는 식의 보도로 군산시민들의 '감정'과 '의혹'을 '반미'로 몰아가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에 정부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정공법'을 펼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최재천 기자는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서울 성북갑, 열린우리당)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최재천 기자는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서울 성북갑, 열린우리당)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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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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