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자료사진)공희정
"37만 원이래…."
자동차 정기검사와 배출가스 정밀검사를 받으러 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오늘 아침이었다.
"합격은 했는데, 타임벨트랑 브레이크등은 점검 해야 한대."
"그래요? 그럼 고쳐야지."
차가 단순히 이동수단이었다면 순순히 고치라는 대답이 안 나왔겠지만 물건을 싣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장사를 해야 하는 남편과 우리에게 있어 자동차는 이동수단보다 생계수단에 더 가까우니 어떤 문제보다 시급하고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남편은 물건을 정리하자마자 근처 카센터에 들러 타임벨트에 대한 금액을 알아보고 전화를 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 금액이 너무나 비싸서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중고 경차를 승합차로 바꾸면서 덜컥 계약했는데...
남편은 올해 2월에 장사를 시작하면서 4년여를 타던 경차를 승합차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중고로 구입한 경차였지만 단 한 번도 잔고장이 없던 차였다. 웬만하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타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서라니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2월 2일. 마지막 드라이브 삼아 아이들을 태우고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돈 다음 가까운 중고차 매매센터를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손짓을 하는 남자 분에게 이끌려 우리는 지금의 승합차를 보았고, 맞바꾸자는 제안에 잠깐의 시운전을 끝으로 계약을 하고 말았다.
번갯불에 콩 튀겨먹는 계약일지라도 확인할 건 다 확인을 했다. 주행 거리와 기계음, 그리고 교통안전공단에서 발급한 '중고자동차성능점검상태기록부(이하 기록부)'까지 말이다. 그곳에는 사고경력과 차량의 상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약간의 오일 누유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기록부의 유효기간은 2006년 9월 1일까지였다.
계약서를 작성한 남편은 자동차 등록을 위해 직원과 같이 등록소로 갔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복사를 해놓고 간 기록부를 꼼꼼히 살펴보다 차량검사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검사해줄 것을 요구했다.
확인하지 못했다면 자비를 들여 검사를 했거나 귀한 시간을 쪼개 또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을 문제를 찾아냈으니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차의 유효기간 등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보통 중고차의 경우에는 30일이 보증기간이다. 그 기간 내에도 고장이 나면 판매자와 연락을 취한 다음, 판매자가 지정해준 곳에서 수리를 받으면 최고 300만 원까지의 수리를 10만 원의 자비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중고차 판매직원의 말만 믿었다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등록을 마친 남편이 돌아왔다. 10년 이상 차와 함께 한 남편은 기록부를 다시 확인하며 자세한 걸 물어봤다.
"삼발이는 언제 갈았어요? 타임벨트 같은 건 금액이 비싸서 갈아주셔야 하는데…."
"다 갈았지요. 방금 시운전할 때 조금 뻑뻑하다고 하셨죠? 삼발이가 새 거라 아직 길이 들지 않아서 그렇죠. 여기 보세요! 상태 양호라고 되어 있죠?"
"그럼 타임벨트는요? 여기에는 타임벨트 교환에 대해서는 안 적혀 있는데?"
"타임벨트도 당연히 교환했죠."
직원의 설명에도 남편이 미심쩍은 눈짓을 보내자 직원은 전화기를 꺼내들고는 확인을 시켜주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매매센터 내에 있는 수리센터가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말이 타임벨트는 교환시기가 남아서 교환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타임벨트는 금액이 만만찮아서 교환시기가 남았어도 교환해 주셔야겠는데요."
다 된 밥에 코가 빠지면 저런 표정일까? 판매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거 교환하려면 시간도 굉장히 많이 걸리는데 괜찮겠어요? 기계를 다 들어내야 하는데… 그러면 오늘 내일은 못 찾아갈지도 몰라요."
"아니 그래도 그냥 갈아주세요! 기다리면 되죠."
남편의 느긋한 성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남편과는 달리 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까지 갈 일이 걱정이었다. 그때 판매직원이 다시 말을 건네 왔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타임벨트가 아직 쓸만한데 굳이 간다는 건 자원낭비 아닙니까? 그러니까 타임벨트가 10만원 정도 하니까 제가 5만원을 드릴 테니 타시다가 바꾸게 되면 그때 바꾸시면 되잖아요. 그러면 차를 바로 타고 갈 수 있으니까 사장님도 편하고요."
당장이라도 물건을 떼서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입장만 아니었다면 남편 역시 판매직원의 감언이설보다는 확실한 거래를 위해 이틀이고 사흘이고 기다렸을지 모른다.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판매직원의 말만 믿고 10만 원이면 새 것으로 교체가 가능하다기에 우리는 5만 원을 받아들고 차를 몰아 매매센터를 빠져나왔다.
돈을 더 들이지 않고, 필요한 차로 바꿨으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그런지 불빛이 다른 브레이크등, 뒤로 넘어가지 않는 보조의자, 작동이 멈춘 실내등, 제 맘대로 움직이는 가스량 표시판 등은 무시해 버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10만 원이면 교체 가능할 것이라던 타임벨트가 무려 37만 원이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길이 들지 않아 뻑뻑하다던 삼발이도 지난달 여름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도착한 뒤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서 카센터에 문의를 했더니 다 닳아서 교환을 해야 한다며 금액은 26만 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교통안전공단에서 제공한 기록부였다. 유효기간이 9월 1일이었으니 어쩌면 보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판매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무지함만 깨우칠 뿐이었다.
교통안전공단에서 제공한 기록부의 유효기간이 9월 1일까지이더라도 중고차 보증기간은 판매일로부터 30일, 주행거리로는 2000㎞ 미만이고 특히 소모성인 타임벨트나 삼발이는 보증내용에서도 제외되는 품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고쳐서 타든지 내다 버리든지 맘대로 하라는 식이었다.